울 엄마 이야기(7) - 운명으로 이어진 우연의 만남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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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19:23 | 최종 수정 2021.01.2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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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개봉된 ‘슬라이딩 도어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헨렌(Gwyneth Paltrow 분)의 인생은 지하철을 타느냐 못타느냐라는 간발의 차이로 완전히 다르게 전개된다.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노력과 의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아주 우연하며 사소한 사건에 의해 결정되어진다는 것이다.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는 나비효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영화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이 사뭇 모두 그렇다. 엄마의 인생을 결정짓는 사건도 마찬가지로 아주 사소한 우연에 의해 결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창덕여고 3학년이던 엄마의 인생은 엄마의 의지와 아무 관계없이 나한테 큰 이모인 큰 언니의 전근에 의해 결정되어지게 되었다. 엄마와 열 살 위인 큰 이모는 동덕여고를 졸업하고 의정부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는데 청파동에 있는 청파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수많은 초등학교들 중에서 하필 청파초등학교로 결정되었을까? 이 역시 아주 우연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문교부에 근무하는 어느 공무원의 펜 끝에서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 청파동으로 이사온 이모네 집에 엄마가 가서 살았다. 그것도 참으로 우연하게 아버지가 살던 집과 바로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하여 창덕여고 3학년이던 엄마는 서울고 3학년이던 아버지와 운명적 만남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 청파동 골목길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마주친 우연의 스침은 운명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 어린 나이에 어찌 사랑을 하게 되었을까? 그래도 로미오와 쥴리엣보다는 성숙한 나이였으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엄마와 아버지의 만남이 참으로 신기하며 신비하고 신통하다. 얼마나 가깝게 사귀었으면 아버지의 고등학교 졸업식날 엄마가 왔다. 아주 어려운 자리였을 텐데 활짝 웃고 있는 엄마 모습을 보니 아버지를 꽤 좋아 했나 보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엄마는 절대 아니라고 펄쩍 뛰시지만 사진은 진실을 살며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도 광화문 경희궁터(舊 서울고등학교)에 살아 있는 저 느티나무 고목도 그 당시의 생생한 진실을 알고 계실까?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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