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5) -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앗아간 6.25 한국전쟁

소락 승인 2021.01.18 01:16 | 최종 수정 2021.01.18 16:18 의견 0
6․25 전쟁 당시 엄마 또래의 소녀
6․25 전쟁 당시 엄마 또래의 소녀

항일시대 말에 유년기를 보낸 후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하였고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한 와중에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38선으로 나뉜 남북의 대립으로 인해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감은 사그라질 수 없었다. 결국 엄마가 창덕여자중학교 1학년 때인 6월 25일 새벽 4시에 전쟁이 터졌다. 6․25 한국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가장 예민한 사춘기 여중생 3년 세월을 온통 전쟁과 마주쳤던 것이다. 그러니 사춘기 시절의 센티멘털한 감상은 배부른 소리였을 것이며 요즘 아이들이 앓는다는 중2병도 없었을 것이다. 공부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고, 또한 잘 먹고 잘 사느냐가 아니라 늘 포탄 소리에 시달리며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기로에 놓여 하루하루 겨우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엄마는 그 격동의 세월을 어떻게 보냈을까? 전쟁 때 할아버지와 오랜 연고가 있었던 의정부 덕정리로 잠시 피난을 갔고 서울 상왕십리 사이를 왕복하며 억척스럽게 사셨단다. 그 당시 대중교통이 있을 리 없으니 걸어서 다녔단다. 상왕십리-돈암동-미아리-창동-의정부-덕정리의 길을 다녔단다. 아침에 소금, 성냥, 옷가지 등을 가지고 떠나면 늦은 저녁에 도착하였단다. 덕정리에서 곡물과 고구마 등의 먹을거리를 가지고 서울 상왕십리로 되돌아와서 가족들을 먹여 살렸단다. 특히 곡물은 배에 전대를 차며 다녔단다. 논에서 주운 벼낱알을 절구질하여 쌀을 만들고 밥을 지어 먹었단다. 반찬은 무엇이었냐고 여쭸더니 그냥 장독에 담긴 조선간장이나 된장만 가지고 먹었다고 하신다. 사춘기 소녀가 포탄이 떨어지는 중에 백리길을 왕복하며 모진 생명력을 키웠던 고된 사춘기 시절이었다.

갤브레이스(John Galbraith 1908~2006)가 <풍요한 사회>라는 책에서 말했듯이 현대인은 너무나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전쟁 후 1960년대 무렵 이후에 태어난 나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을 겪지도 않았기에 우리 부모 세대의 죽을 고생을 100%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풍요한 사회에 살면서 울 엄마 세대 어르신들의 고난과 역경을 종종 생각하며 검소하게 살아야 하겠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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