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4) - 두부 배달 소녀

소락 승인 2021.01.16 17:25 | 최종 수정 2021.01.16 19:54 의견 0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 후 중앙청 앞 시가행렬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 후 중앙청 앞 시가행렬

우리 역사엔 두 개의 8․15가 있다.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45년 8월15일에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났고, 중학교 1학년 때인 1948년 8월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전자를 해방절이 아니라 광복절이라고 하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후자를 정부수립일보다 건국절이라고 하는 데는 이견이 크다. 커도 너무 크다. 8․15 광복이 있었던 1945년부터 6․25 한국전쟁이 터졌던 1950년 전까지 5년여 기간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탈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총독부라는 엄청난 권력이 빠져나가 버린 한반도에 생긴 권력공백은 엄청난 권력투쟁을 불러왔다. 이른바 해방 후 정국이다. 정치적 혼란이었지만 그야말로 전쟁적 혼란이 있다.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북위 38선이 그어지고 위로 소련군이, 아래로 미군이 들어왔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美英蘇(미국 영국 소련) 삼국 외상이 모인 삼상회의 이후 한반도 신탁통치에 대한 반탁 찬탁의 격렬한 대립을 시작으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제주4․3사건, 여수순천사건처럼 수만 명이 희생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수많은 정당들이 생겼으며, 여운형, 김구와 같은 정치지도자들이 피살되었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 죽고 죽이는 테러가 다반사로 일어나던 광폭한 시기였다. 결국 1948년 8월 15일에 38선 아래 남쪽에서는 이승만에 의해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으며, 한 달도 안 된 9월 9일 북쪽에서는 김일성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남한 북한의 지도자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엄청난 권력의지 소유자들의 반쪽 승리였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집요한 권력의지 덕분에 공산화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권력의지 때문에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갈등의 씨를 안고 태어났다. 그 이념 전쟁은 70여 년이 지난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금도 벌어지는 역사교과서 논쟁은 그 생생한 사례다. 하지만 엄마는 그때 10세 소녀였을 것이다. 학교를 파하고 나서는 왕십리 집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만든 두부를 동네 가게들마다 배달다녔다고 한다. 엄마의 또순이 기질은 혼란한 정국 속에서도 나름 익혀져 갔다.

<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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