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1. 갑철과 술녀(2)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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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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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용서가 되지 않은 놈들
내가 살던 고향은 오스트레일리아라 불리는 아주 큰 대륙 섬 아래 아주 평화로운 작은 섬이었어. 동양인들은 오스트레일이라의 오를 따서 비슷한 음의 한자를 빌려다 호주(壕州)라 불렀지. 우리한테는 우리가 살던 땅의 이름이 없었어. 그냥 우리가 사는 삶터였으니까… 우리 조상들이 최소 1만 년 넘게 살아오던 삶터였어. 물론 우리끼리 자잘한 분쟁은 있었지만 처참한 전쟁은 없었어. 난 우리 섬에 살던 여러 부족들 중 하나인 마을에서 족장의 딸로 태어났어. 너네들 말로는 공주로 태어난 거지.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얼굴 허연 놈들이 나타나면서 우리는 죽기도 전에 지옥을 경험해야 했어. 허연 놈들은 군인이거나 죄수나 부랑자 같은 놈들이었어. 거의 다 남자들이었어. 식민지 개척자로 불리던 그 그악한 거악한 놈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어. 우리를 마구 약탈하고 살해했어. 지들이 살던 영국이란 나라에서 내가 살던 곳까지 거리는 약 2만 4000km나 된다지. 배 타고 오는데 1년 정도 걸렸을 거야. 여자를 접한 지 아주 오래된 그 놈들은 워낙에 성에 굶주린 미친 놈들이었어.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으면서도 우리 여자들을 마구 강간했어. 나도 당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여자라 죽이지는 않았지. 내 약혼자도 죽고 수많은 나의 가족과 친척들도 죽었어. 물론 우리도 처음엔 저항하며 싸우기도 했어. 한때는 블랙워(Black war)라 불리는 전쟁을 벌였지. 이때 우리 원주민들은 목숨걸며 용감하게 싸웠어. 게릴라전을 펼치는 지도자도 있었어. 그렇게 우리도 그 허연 놈들을 200여이나 죽이기도 했어. 당시 우리 섬에 5000명 정도가 살았으니 그 허연 놈들보다 우리가 쪽수는 훨씬 많았지. 하지만 우린 질 수밖에 없었어. 우리가 가진 돌이나 도끼은 원시적 무기로 저들이 가진 무시무시한 총을 상대로 싸울 수 없었으니까… 결국 그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거의 전멸 몰살 당하다시피 했어. 결국 우리는 저들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저들 중에 우리를 사람으로 보는 인도주의자 목사 덕분에 우리는 사정이 조금은 나아지기는 했어. 그는 좀 괜찮은 허연 사람이긴 했어도 세상이 바뀐 건 아니었어. 그러니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는 건 결코 아니야. 다만 비참하게 먼저 죽은 우리 마을 사람들처럼 잔인하게 학살 당하지 않았다는 거지.
그래도 넌 용케 살아 남았네. 살아 남은 걸 축복이나 행복이라 해야 할 수도 없고… 아무튼 힘들게보다 힘든 처참하게 살았구나.
그렇지. 5000여 명 중 160명 만이 살아 남았어. 우린 싸우다 죽기도 했고 학살당해 죽기도 했고 저들이 지들 나라에서 가져온 몹쓸 전염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기도 했어. 참으로 끔찍한 시절이었지. 결국 저들은 우리를 완전히 제압했어. 우린 힘을 쓸 수도 없었지. 어느 날 허연 놈들은 살아 남은 우리를 자기네 사는 데랑 뚝 떨어져서 살도록 했어. 내가 살던 섬 위쪽에 아주 작은 섬이 있는데 그곳으로 끌고 가더군. 인디언 보호구역처럼 애보리진 보호구역 같은 곳이었어. 보호는 무슨 보호야. 말 장난이지.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는 고래잡이 배에 탄 2명의 백인 남자들을 죽이고 말았어. 우리한테 얼굴 허연 놈들은 다 악마처럼 보였을 때지. 이때 나도 살인 혐의를 받기도 했지만 난 풀려 났어. 2명의 주동자들은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받았지. 그래도 마구 학살 당한 게 아니라 재판을 받고 처형된 것이니 상황이 처음 때와는 달라지기는 했어. 그런데 이제 남은 생존자는 몇명 되지 않았어. 나중에는 5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그중에서 나는 마지막 생존자야. 저 놈들은 내가 살던 섬의 이름을 태즈마니라라고 부르더군. 얼굴 허연 놈들로 우리네 섬에 최초로 발을 디딘 타스만(Tasman)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른다고 들었지. 섬의 주인은 엄연히 우리인데 지들끼리 이 섬을 감히 발견했다고 말하고 또 지들 이름을 따다 붙이고 나중에는 쳐들어와서 우리를 축이고 몰아내며 자기네 땅으로 만들고… 정말이지 내가 보기엔 발광 지랄이었어. 나한테 최고의 지랄은 죽은 나를 해부하며 박제해서 나를 박물관에 100년 동안이나 보관했다는 점이야. 난 저 놈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용서하려 해도 용서가 안 돼. 도저히…
아! 네 심정을 충분히 알겠다. 정말로 비통하겠다. 비통한 삶이고 비통한 죽음이었네. 뭐라 할 말이 없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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