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비로소 정신의 궁핍을 자각하다 ④‘사기꾼 증후군’과 지자(智者)

조송원 승인 2024.07.07 17:03 의견 0
[교보문고]

사마천은 세 가지 형벌 중 하나를 고를 선택권을 받았다. 첫째, 법에 따라 주살(誅殺)될 것. 둘째, 50만 전을 내고 죽음을 면할 것. 셋째, 궁형을 감수할 것. 이 세 가지이다.

사마천은 왜 죄인이 되었는가? 전한(前漢. 기원전202년~기원후8년)의 명장 이광의 손자 이릉이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싸우다가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원전 99년의 일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는 이씨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한 짓일 뿐 아니라, 한나라 조정의 체면을 깎아내린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릉이 어쩔 수 없이 투항했다고 판단하고, 홀로 무제 앞에 나아가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결국 무제의 노여움(요샛말로 ‘격노’)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사마천은 50만 전을 내고 방면되는 두 번째 방법을 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인(中人)에 불과했던 그가 그만한 거액이 있을 턱이 없었다. 사마천은 죽을 수는 없었다. 『사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하여 살아남아야 했기에 죽는 것보다 더 치욕적인 궁형을 감수한 것이다.

앨런 튜링은 종전 후 1950년에 인공지능에 대한 논문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계산기계와 지능>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단어가 생기기도 전에 인공지능을 고안하고, 이의 광범위한 사용을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논문 속에 현재 ‘튜링 테스트’라 불리는 인공지능 실험을 제안하기도 했다.

튜링은 아널드 그레이라는 남자와 우연한 기회로 만나 사귀게 되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도둑이 들었고, 아널드가 이 사건에 연루돼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배신감을 느낀 그는 경찰에 신고했다. 동료 과학자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말했던 것처럼, 경찰에도 아널드와 자신의 관계를 사실대로 진술했다.

그러나 1952년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기 때문에 외설 혐의로 기소됐다. 튜링은 과학자 세계에서 성적 지향보다는 능력과 인간성을 중요시했던 동료들로부터 차별 없는 대우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그는 이 익숙함이 되레 치명적인 비수가 될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튜링은 업적과 평소 방정한 행실과는 상관없이 ‘동성애 금지법’에 의해 사회를 교란하는 범죄자로 낙인 찍혀, 대중과 사법부로부터 파렴치한 악인 취급을 받게 되었다. 결국 법원에서 동성애 혐의에 대해 위법 판결이 내려지고, 수감형 혹은 여성 호르몬 투여에 의한 화학적 거세형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았다.

뼛속까지 학자였던 튜링은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수감을 거부하고, 거세를 택했지만 그 영향으로 신체의 여성화가 진행됐다. 그리고 1954년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그의 죽음에는 사고사 등 여러 설이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선량하고 뛰어난 학자가 그릇된 사회의 냉대 속에서 삶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대중이, 사회가, 권력(법)이 선량하고 뛰어난 사마천에게 궁형을 가하고, 튜링에게 거세형을 부과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사마천을 위대한 역사가라고 칭송하고, 튜링을 위대한 과학자라며 영국의 최고액권인 50파운드 지폐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한다.

‘가면 증후군’(假面 症候群)이란 게 있다. ‘사기꾼 중후군’(Imoster Syndrome)이라고도 하는데, 이쪽이 더 적확한 것 같다. 자신의 성공을 재능이나 노력이 아니라, 운 덕분이라고 여기며 불안해하는 심리를 말한다. 높은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그것을 과대평가된 것으로 치부하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뛰어난 이들이 사기꾼 증후군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201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배리 배리시(Barry Barish)는 스톡홀름에서 시상대에 오른 순간, 과연 자신이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브라이언 키팅/이한음,2024)의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교수가 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실은 학생을 가르칠 때마다 내 머릿속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내가 과연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사람일까? 내게 수학은 늘 어렵고, 물리학 이론도 자연스럽게 터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이 분야를 택한 것은 남달리 머리가 좋은 까닭이 아니라, 열정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회는 천재를 존경하는데,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자리를 내가 어쩌다가 운이 좋아 사기꾼처럼 차지한 게 아닐까? 몇 년 전에야 오랫동안 시달렸던 그 생각이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 불리는 흔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먹물깨나 든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다수와 과소평가하는 소수. 쥐뿔도 모르면서 60분회의 중 59분을 혼자 떠벌리는 작자나 법 기술 좀 배웠다고 세상이치를 꿰뚫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전자이다. 사기꾼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후자에 속한다. 대개 책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보다 책을 딱 한 권 읽은 사람이 세상에 더 위험한 법이다.

도덕적 판단은 제쳐두고, 과대평가하는 자와 과소평가하는 자, 모두 반쪽 지식을 가졌을 뿐이다. 자신은 다 알고 타인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꼴불견을 연출하는 사람이니 무시해도 된다. 자신의 모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만큼 타인의 모름을 몰라도 결코 지혜로워질 수가 없다.

하여 노자는 갈파한다.

知我者希(지아자희) 나를 아는 자가 드물다
則我者貴(즉아자귀) 그러므로 나는 귀하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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