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유발 하라리의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를 막는 방법 ①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조송원 승인 2024.06.10 12:42 의견 0
강연하는 유발 하라리 [anbion tv]

①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책을 읽다가 내용이 하도 감명 깊어서 날밤을 하얗게 샌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더러 있다. 동서양의 고전이야 진즉에 기대를 갖고 대했으므로 개안이 되어도 감동은 무덤덤했다.

그러나 신간을 보면서 지적 도약을 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희열을 넘어 법열에 가까운 감동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예전에 기어트 홉스테드의 『세계의 문화와 조직』,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로렌스 크라우스의 『無로부터의 우주』, 대혜 선사의 『書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퍼뜩 떠오른다.

몇 년 전에는 유발 노아 하라리를 만났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지구상의 인류의 역사가 한눈에 잡혔고, 로봇 혹은 AI에 의해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든지 지구상에서 절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진자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섹스도 이성 간이 아닌, 기계와 인간과의 교류로 가름될 수도 있다. 한 차원 높은 ‘눈 뜸’이었다.

<이코노미스트>를 검색하다가 2024년 6월 3일자 하라리의 칼럼을 발견했다. 단숨에 읽었다. 우리의 실생활에 코로나19만큼 영향을 미치는 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 전쟁에 대한 세계사적, 인류사적 함의를 석학 하라리는 명징하게 분석해 보여준다. 이에 하라리의 혜안을 공유하고자 3회로 나눠 번역·연재하기로 한다.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말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를 막는 방법

(이 역사학자는 비서구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무릎이 작동을 멈출 때 비로소 무릎에 대해 고마워하게 된다. 세계질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곧, 세계질서가 붕괴될 때 비로소 이전의 혜택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세계질서가 붕괴되면 일반적으로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이 역사법칙을, 6월 15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를 앞둔 세계지도자들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평화를 회복하지 못하고, 국제규칙에 근거한 질서가 계속해서 흐트러지게 된다면, 그 재앙적 결과는 세계적으로 체감하게 될 것이다.

국제규칙이 무의미해질 때마다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군비와 군사동맹에서 안전을 추구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사건을 고려할 때, 폴란드가 군비와 군사 예산을 거의 두 배로 늘린 것을,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 것을, 사우디가 미국과 국방조약을 추구하는 것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군사예산의 증가는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성원을 희생시키게 된다. 돈이 학교와 진료소에서 탱크와 미사일로 전용되기 때문이다. 군사동맹 역시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군사 보호막 밖에 방치된 약소국가들은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군사블록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무역로가 경색되고 상업이 위축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군사블록들 사이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지구 외딴 구석에서의 작은 불꽃이 세계적인 대화재를 촉발할 가능성도 커진다. 동맹은 신뢰도에 의존하기 때문에, 중요하지도 않은 장소에서의 사소한 도전이라도 제3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인류는 이 모든 사실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2000여 년 전, 순자와 카우틸리야 그리고 투키디데스는, 무법천지에서 안보에 대한 추구가 어떻게 모든 사람을 덜 안전하게 만드는지를 폭로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나 냉전과 같은 과거의 경험은, 세계적인 분쟁에서 불균형적으로 더 고통 받는 사람은 약자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쳐왔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상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오늘날의 인도네시아)였다. 1939면 동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인도네시아 자바의 쌀 재배 농부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폴란드에서 발생한 사건은 연쇄반응을 촉발하여, 약 350만~400만 명의 인도네시아인을 죽였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일본 점령자들에 의한 굶주림과 강제노동 때문이었다.

이는 인도네시아 인구의 5%에 해당하는데, 미국(0.3%), 영국(0.9%), 일본(3.9%) 등 주요 교전국의 사상자율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그로부터 20년 후 인도네시아는 또 다시 유독 큰 대가를 치렀다. 냉전은 베를린에서는 차가웠을지 모르지만, 자카르타는 뜨거운 지옥이었다. 1965~1966년에 인도네시아인 50만~100만 명이 공산주의자와 반공산주의자 사이의 긴장으로 인한 학살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의 상황은 1939년이나 1965년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핵전쟁이 중립국의 수억 명의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만이 아니다. 인류는 또한 기후변화와 통제 불능의 인공지능(AI)이라는 추가적인 실존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

군사예산이 증가함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돈이 오히려 세계적 군비 경쟁하는 데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군사적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합의에 필요한 선의(goodwill)가 증발하게 된다. 또한 군사적 긴장 고조는 인공지능 무기경쟁 제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한 가능성을 망쳐버리게 된다.

특히 드론 전쟁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머지않아 세계는 완전 자율 드론 떼거리가 우크라이나 하늘에서 서로 싸우고, 지상의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킬러 로봇이 오고 있지만, 인간은 의견불일치로 마비된다. 우크라이나에 곧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키이우(우크라이나의 수도-역자)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고 그곳의 전투가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계속>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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