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것일까? 일손이 아니라, 일거리가 부복하다는 말이 더 적확하다. 자연감소를 받쳐줄 젊은이들이 일거리를 찾아 떠나므로 인구는 줄어드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인력은 부족하지 않다. 인력이 적더라도 인구가 줄어드니 일감이 자연 감소하여 수급이 안정적이다. 작은 토목공사나 집을 건축하는 데 인력이 모자란다는 불평은 들은 적이 없다. 큰 공사에는 기본 인력이 함께 오니 문제가 될 게 없다.
벼농사는 경지정리와 기계화로 기존 농부들에게 아무런 애로사항이 없다. 일손 부족 문제에 맞닥뜨리는 농부는 대개 비닐하우스로 영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시적으로 일손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수확기에만 간헐적으로 일손이 부족하다. 수확할 때만 일손이 집중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로 재배하는 취나물의 경우, 대체로 1월부터 6월까지 6차례 수확을 한다. 1월 말 첫 수확 후 다시 새싹이 나고 한 달 동안 자라서 2월 말에 또 수확하는 식이다. 수확 후 자라는 한 달 간은 별 일손이 필요 없다. 농부의 가내 노동력으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할 때는 수확할 때이다. 10m×100m짜리 비닐하우스 한 동을 수확하는 데는 9명이 필요하다. 취나물을 베어 소쿠리에 담는 사람 6명, 취나물이 담긴 소쿠리를 비닐포대에 모아 담아서 10kg씩 계량하여 묶는 사람 1명, 그 비닐포대를 비닐하우스 밖으로 운반하여 차에 실고 농협경매장으로 내는 사람 1명, 그리고 일꾼들의 식사와 새참 준비와 그 외의 잡무를 하는 사람 1명 등이다.
친구의 취나물 비닐하우스는 6동이다. 친구 외의 인근 마을에도 비닐하우스가 몇 십 동이 있다. 수확하는 날짜는 다르더라도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수확기가 집중되므로, 인력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하여 노동력이라 할 수 없는 꼬부랑 할머니까지 깡그리 동원되는 것이다. 이도 모자라면 인력회사에서 이주노동자를 부른다.
한 달에 며칠, 시간당 1만 원 정도의 임금, 그것도 1년에 6개월밖에 일거리가 없다. 그러므로 온전한 노동자가 할 일이 아니다. 취나물을 소쿠리에 베어 담는 인력은 70대부터 80대 중반의 할머니들이다. 다만, 소쿠리의 취나물을 비닐포대 모아 담아 10kg로 계량하는 일은 어느 정도 근력이 필요하므로, 젊은 아낙이거나 남자여야 한다.
그 일이 내 몫이 되었다. 비록 공식적으로 ‘노동력 제로(0)’이나, 부탁을 하니 친구도 도울 겸 책값도 벌 겸, ‘한때 지리산을 단독등반한 몸인데’ 하는 오기도 발동한 결과이다. 더구나 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땀을 흘리며 내 몸을 점검하고 싶기도 했다.
일반 노동자들의 작업 강도에는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록 노병(老兵)의 몸이지만 이 정도의 일도 쳐낼 수 없다면, 어찌 사람노릇을 하랴! 이 정도의 일을 몸이 감당하지 못하고 망가질 것이라면, 이 몸뚱아리에 무슨 미련을 가지리오.
책상 앞에서 정신노동만 오로지해 왔는데, 들판에서 땀을 흘리니 느낌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 머릿속은 텅 비운 채 근력만이 필요한 노동을 하면서, 내 한 자아에 대립하는 두 감정(양가감정·ambivalence)이 존재함을 실감했다. 곧, 몸과 마음이 따로 놀 때가 잦다는 것이다.
육체노동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육체적 고통이 심해지면, 마음은 약해져 허물어져 간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육체가 회복되면, 마음이 허물어졌다는 자괴감에 좀은 불편해진다. 이번 친구의 비닐하우스 일에서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이는 ‘생명’ 혹은 ‘생명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와 신작로를 걸은 적이 있다. 지금 헤아려 보면,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25년이나 더 젊은 40대 초반이었구나! 엄마는 일용할 반찬거리가 든 고무 다라이(큰 대야)를 머리에 이고 있었고, 나는 책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손에는 과자 봉지를 쥐고 있었다.
주인 따르는 강아지마냥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깡충깡충 조잘재잘대는 나에게 엄마는 ‘그러다 다칠라’는 주의를 한 번씩 줄 뿐, 묵묵히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가다가 엄마는 멈칫, 다라이를 내려놓고 신작로 한 가운데에 있던 뭔가를 집어 들어서는 길가 사람 발자국이 없는 곳에 가지런히 옮겨놓았다.
“엄마, 뭔데?” “신짝이다.” “그걸 왜?” 나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내 뚱그런 눈을 그윽이 보며 말했다. “비록 버린 헌신짝이라도 길 한가운데 있어, 종일 차 발통(바퀴)이 밟아대면, 저 신을 신었던 사람에게 좋겠느냐.”
엄마의 말을 들은 그때의 내 감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5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한 번씩 추억을 해내는 걸로 미뤄, 부지불식간에 마음속에 깊이 각인돼 있는 모양이다. 평소 일상생활의 일부로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엄마의 그 모습은, 훗날 새벽 정화수로 정성을 들이던 모습과 자주 겹쳐 떠오르곤 한다.
비닐하우스 취나물 수확 일을 하면서 엄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상념이다. 할머니들이 취나물을 소쿠리에 베어 담을 때에도, 내가 그 소쿠리를 모아 비닐포대에 담을 때에도 흘리는 게 자연 있게 마련이다.
이 버려지는 취나물은 과연 한 생명으로서 무슨 의미를 갖는가? 씨를 틔워 애써 커서 ‘존재 목적’의 실현도 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취나물! 버려지는 것과 버려지지 않는 것에는 아무런 우월이 없다. 어떤 의도가 작용한 것도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버려지지 않은 것은 버려진 것의 희생 덕분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쓰임을 받는 사람이 쓰임을 받지 못하는 사람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우연이 여러 개 작용한 결과일 뿐이지는 않을까? 역사는 능력주의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닐포대에 취나물을 잘못 부어, 흘리는 게 생긴다. 버려지지 않게 주워 담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육체가 피곤해지면 허리 한 번 더 굽히는 게 무척 힘들어진다. 몸에 마음이 이기면 허리를 구부린다. 해가 중천에서 설핏 기울면, 몸이 마음을 이기는 경우가 더 많다. ‘버려지는 것들’이 생긴다. 마음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피곤한 몸이 주인행세를 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임마누엘 칸트(1724~1804)의 묘비명-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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