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에게 150만 원짜리 굴비 선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당시 이학수는 내가 직접 전달하라고 했다. 그게 예의라는 게다. 그러나 나는 운전기사를 대신 보냈다. 속으로는 ‘대법관이 설마 삼성이 보낸 굴비를 받겠느냐’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기사에게 들으니, 굴비 잘 먹겠다고 감사 인사를 하면서 받았다고 했다.” -『삼성을 생각한다2』/사회평론 편집부 엮음/2010-
여기서 ‘나’는 김용철 변호사이다. 그는 서울지검 특수부 수석검사를 거쳐,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재무, 법무팀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퇴직 후 2010년에 『삼성을 생각한다』 제목의 책을 내어 우리 사회와 삼성의 어두운 면을 고발했다.
이 책은 정치권력 이상으로 더 치명적인 자본권력의 위험성을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아킬레스건을 알게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는다. 삼성의 ‘떡값’은 각계에 뿌려졌다. 이 떡값은 삼성그룹에 문제가 생길 때, 삼성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특수부 검사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도 대법관은 여느 공직자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뿔싸, 그들도 그냥 장삼이사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가 안동완 검사의 탄핵을 기각했다는 보도를 접하자, 불현듯 김용철 변호사의 이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안 검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 씨를 보복 기소했다. 대법원은 공소권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안 검사를 탄핵소추했다. 한데 헌법재판관 9명 중 보수 성향의 5명이, 안 검사의 행위에 “파면할 사유가 존재하지 않다”고 탄핵을 반대했다. 안 검사의 탄핵이 기각된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일까? 위법한 기소로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 행위보다 더한 파면 사유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공익의 대표자이자 인권옹호기관으로 각종 권한을 부여받은 검사가 공익실현의무를 위반한 것에 엄중한 헌법적 징벌을 가해, 더는 검사에 의한 헌법 위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의 소수의견에 반박할 논거가 어디 있는가.
흔히들 판사들은 일반인보다 더 정의롭고 공정하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서는 차라리 일반인보다 못하다는 혹평도 있다. 대법관이 굴비 선물세트를 받을 정도니 다시 말해 무엇하랴.
문제는 안동완 검사 탄핵 기각에 그치지 않는다. 재판관이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지 않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한다면 바로 닥친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소수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 중에서 임기가 2029년 4월인 정정미를 제외하곤 3명 모두가 내년까지 물러나게 된다. 재판관 교체가 문제가 아니다. 김기영은 임기가 2024년 10월인데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했다. 문형배와 이미선은 임기가 2025년 4월인데,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했다.
이들 진보 성향의 재판관들이 물러나고 윤석열 대통령이 추천한 재판관들로 헌법재판소가 구성된다면, 지금도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기울기가 가팔라질 것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종종 다수의 민심을 위반할 것이다.
검찰 출신 대통령 하에서, 대통령과 이념을 같이하는 헌법재판소 하에서, 검사 탄핵은 어렵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인권옹호자로서 직무에 전념하는 대부분의 검사들에게 오물을 끼얹는 소수의 정치검사들을 탄핵해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누구를 탄핵해야 하겠는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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