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莊周:장자)는 집이 가난해서, 감하후(監河侯)에게 양식을 빌리려 찾아갔다. 감하후가 말했다. “좋소! 내가 연말에 내 봉읍(封邑)에서 세금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그때 삼백 금을 빌려주겠소. 이제 됐습니까?”
장자는 얼굴이 벌게지며 말했다.
“내가 어제 여기로 오는 길에 나를 부르는 자가 있었소. 내가 뒤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소. 나는 물었소. ‘붕어야,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붕어가 대답하기를, ‘나는 동해의 파도를 담당하는 신하라오. 그대는 물 한 바가지를 끼얹어 나를 살려주지 않겠소?’
그래서 내가 말했소. ‘좋소. 내가 곧 오나라와 월나라 왕에게 유세하려 가는데, 그때 양쯔 강의 물을 서쪽으로 흐르게 하여 그대를 맞이하겠소. 이제 됐소?’
그러자 붕어는 얼굴이 벌게지며 나에게 말했소.
‘나는 지금 있어야 할 물을 잃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라오. 나는 한두 바가지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소! 그런데 그대는 그런 한가한 말을 하고 있으니, 차라리 일찌감치 건어물 가게에서 날 찾는 게 나을 거요!’” -장자/외편/외물-
학철부어(涸轍鮒魚),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에 있는 붕어’란 성어의 출전이다. 그 위급한 처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그러니 우선 한 바가지의 물로써 연명하고, 그런 연후에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한데 큰 공사를 해서 강의 물길을 돌려 구제하겠다는 말은 그냥 말라 죽으라는 말과 진배없다. 2000여 년 전의 우화가 대한민국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민에게 이렇게 적실할 수가 있다니!
자영업자는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의 2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경제주체다. 이들이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한 대가로 짊어진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 올해 3월 말 현재 개인사업자(자영업자) 335만9590명의 금융회사 대출(가계대출+사업자대출) 금액은 1112조7400억 원이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말에 견주면, 대출자는 60%, 대출 금액은 51%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들의 대출 규모와 연체 금액이 늘어나고 부채의 질이 악화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당시에는 방역에 협조하느라 가게 문을 닫아 손실을 감수해야 했고, 코로나19가 끝난 뒤에는 고금리와 고물가에 따른 소비 위축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서 자영업자들이 무너진다면, 국가 경제에 충격은 말할 것도 없고 다음에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닥친다면, 이제 누가 방역에 협조하려 할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은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특별법 입법을 통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하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도 지역 자영업자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최상목 부총리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헌법상 예산편성권은 행정부에 있다고 명시돼 있어서 이를 고려할 때, 위헌적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생지원금을 반대한다는 걸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예산은 국민의 돈이며, 예산의 주인은 국민이다. 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예산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관료와 기획재정부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예산의 편성권, 집행권, 재정, 경제 관련 모든 권한을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 등을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국가적 사회적 폐단이, 기획재정부가 예산과 재정, 경제 정책 등에 모든 권한을 가짐으로써 발생되는 폐단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22년 대선 직전에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민생을 살리기 위해 추경 예산 편성을 국회와 많은 국민들이 요청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바로 60조 원, 역대 최고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또 2023년 제1야당 대표가 민생과 청년을 살리고, 폭우로 인한 수해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추경예산을 편성하자고 수 십 차례 외쳤는데도 기획재정부는 귀를 틀어막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확장재정을 반대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빠르고,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2022년 말 현재 국가채무는 1,067조 원으로 GDP 대비 49.4%(2023년 예산 기준 50.4%)로 여전히 건전하며, 비기축통화국 국가채무비율 평균 52.0%(2022년 기준)보다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제정건전성이 명분이라면, 왜 거의 특혜성에 가깝게 대기업에 세금을 감면해 주는가.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1,000조 원이 넘는다. 따라서 대기업의 곳간은 넘쳐나는 데 반해,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5%로 44개 주요국 평균 56.3%를 훨씬 뛰어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획재정부의 친자본, 반서민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다. 검찰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개혁도 절박한 문제다. 기획재정부 개혁을 위해선,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기획재정부의 예산권을 반드시 분리시켜 정부부처 내에서도 권력독점이 아닌 견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이 기획재정부의 권력 횡포를 막고 국민을 위한 ‘예산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다. 예산의 주인은 기재부가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참고. 조일출/『정부의 예산, 결산 분석과 감시』)
예산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러므로 민생회복지원금을 쓰고 말고는 비선출직인 기재부 관료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의기관이 국회에서 결정함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3월 26일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처를 떼어내고 그 예산을 국회의 통제 하에 둬야 한고”고 주장했다.
“지금은 국민지원금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는 공동의 논의가 필요하고, 그 출발은 제도적으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예산처를 기재부로부터 떼어내서 국민적 통제를 받도록 만들어야 한다”라면서,
“국민적 통제가 이뤄져야만 예산 관련해 국민지원금이건 재난지원금이건 이런 문제를 국회의 논의를 통해 결정하고, 그 대상과 액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생회복지원금은 민생회복지원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민의 안녕에는 별무관심인 기득권 세력과 그 세력에 복무하는 기획재정부의 개혁에 관한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또 민생회복지원금 문제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개혁의지와 그 개혁을 추동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의 문제를 판가름하는 리터머스 시험지이기도 한다. 추이를 예의주시하자.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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