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17) 인류의 미래는 기술 아닌 절제에 달렸다
진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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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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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조심스레 따르면 잔은 함부로 넘치지 않습니다.
물 표면은 수평이 아니라 차라리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다 한 방울이 더 보태지면 물은 쏟아져 내립니다.
그 한 방울은 돌이킬 수 없는 세상 변화의 씨앗입니다.
그 한 방울이 씨앗이 되려면 물 컵의 물들이 채워지고 또 채워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물방울은 범인이 될 수 없습니다.
누명을 쓴 것입니다.
지금 세상 모든 곳에서 탄소라는 기체가 컵을 채우는 물처럼 대기 중에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한 방울은 어느 목장의 암소 한 마리의 방귀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누구의 잘 먹은 점심 이후 나온 트림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암소의 방귀는 범인이 아닙니다.
그냥 누명을 쓴 것입니다.
탄소라는 기체를 대량으로 내뿜고 있는 모든 이들이 범인이자 공범입니다.
값비싼 옻칠의 검은 색을 두고 ‘칠흑’이라고 합니다.
새벽, 칠흑 같은 어둠을 본 사람들은 여명의 밝음을 압니다.
갑자기 밝아져 있습니다.
갑자기 눈부신 아침이 됩니다.
그러다 고개 한번 돌리면 해는 솟아있습니다.
이렇듯 세상은 ‘서서히’ 변하는 듯하지만 ‘성큼 성큼’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해는 다시 떠오르지만 우리는 같은 해를 볼 수가 없을지 모르는 시대에 서있습니다.
기상과 기후가 요동치는 세상으로 이미 진입했습니다.
그 변화는 비가역적입니다.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입니다.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던 결정적 시대입니다.
갈망과 중독 풍요의 시대이자 20만년 호모사피엔스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뇌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고통의 일상화’를 앞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인류는 지구를 희생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이와 정반대의 문명을 추구했습니다.
지구를 자원으로 취급하고 그 자원도 무한하다고 생각하면서 쾌속으로 달려왔습니다.
그것을 눈부신 발전이라고 자화자찬을 하면서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독일의 한 연구기관에서 지구행복지수를 발표했는데 한국이 76위라고 합니다.
기대수명과 행복도는 높지만 탄소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너무 많아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합니다.
뭔가 찜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런 결과를 반박하기가 힘듭니다.
차를 타고 가면 담배 꽁초나 쓰레기를 밖으로 휙 던지는 사람이 간혹 보입니다.
자신의 편리를 위해 하는 습관적 행동이겠지만 마음은 속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늘 찜찜함이 남아있습니다.
이기적 행위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 늘 상처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찜찜함은 흩어져 사라지는 게 아니라 콜타르처럼 마음에 찐득하게 들러붙어 쌓여갑니다.
아침 맨발 산행을 하다보면 버려진 쓰레기들이 밟힙니다.
그래서 비닐봉투를 채워 옵니다.
약간의 수고로움은 있지만 뿌듯한 뭔가가 있습니다. 그 뿌듯함은 생각 이상으로 가볍습니다.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를 향한 뿌듯한 마음을 내기보다 찜찜함을 쌓아갑니다.
그래서 마음들이 무겁습니다.
76위라는 숫자가 그걸 대변합니다.
그것이 집단적 찜찜함입니다.
물 한 방울만을 바라보는 집단적 찜찜함입니다.
<KNN 기획특집국장·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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