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물론 리어카조차도 들어오지 않는 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가장 힘든 것이 거름의 확보문제였다. 대체로 노인네들이 소일사마 짓는 농사라 종묘상에서 모종을 사면서 20킬로 포대의 복합을 헐어서 1,2킬로씩 사다 쓰거나 가끔씩 농지원부가 있는 아래쪽 정씨문중사람들이 농협에서 한 팔레트에 50포대씩 적재된 축산부산물퇴비를 단체 구입할 때 그들의 원가보다 두 배쯤 웃돈을 주고 한 집에 열 개 스무 개를 사다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모두들 6,70대가 넘는 노인네들이라 곳곳에 바위가 튀어나오고 칡넝쿨이 기어가는 오솔길로 빈손으로 올라오기도 힘든 판에 운반자체가 힘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에 궁하면 통한다고 마침 일거리가 없어 집에 쉬고 있는 건축공사장의 인부 둘이 한 포대에 2천 원씩 받고 져다주기로 했는데 지게도 없이 그냥 맨 어깨 위에 굵은 밧줄을 걸어 한꺼번에 두 포씩 날라다주는 것이었다.
거름이나 비료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짓는 골짝논의 농사가 열찬씨가 올라가 마늘이니 고추니 제법 돈이 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자 비로소 대량으로 거름이 소요되었다.
열찬씨의 경우는 언양에 갈 걸음이 있으면 진장에서 소를 먹이는 친구 종석씨의 축사에 가서 잘 띄운 소똥을 40킬로 자루에 열 개쯤 담아와 썼다. 그러나 그 일도 친구가 없으면 친구부인한테 이야기를 하고 자루를 얻어 영순씨더러 자루를 벌리게 하고 퍼 담아야 하는 데다 자동차트렁크에서 소똥냄새가 난다고 엄청 구박을 받으며 산복도로에 부린 것을 메다 올리는 일도 여간이 아니었다. 무게가 40킬로 정도면 이미 환갑이 지난 열찬씨로서는 맨몸으로 매고가기가 무리여서 처음 올라갈 때는 매고 가더라도 다음번엔 지게로 져다 나르는데 그것도 중간에 한 번 쉬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또 묘한 게 교장선생과 같은 도가리에 농사를 지으면서 거름 10포를 혼자 쌓아놓을 수도 없어 두 포대정도를 주어야 하고 열찬씨가 밭을 옮기며 기존의 무료경작자들이 두 집이나 물러난 빈터에 놀라왔던 황서방이 자기도 농사를 짓겠다고 나서 6만원을 주고 밭을 얻었는데 그게 또 열찬씨 영순씨에게는 보통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진주 일반성면의 부면장집 둘째아들로 비교적 곱게 자라 왠지 군대에 가기 싫다고 해서 아버지가 갖은 고생을 해서 방위근무를 시키고 치의대를 나와 치과기공사가 된 황서방은 도무지 친구를 사귈지 모르는 내성적인 성격에다 직업인 치과기공사가 혼자 꼼꼼하게 이빨의 본을 뜨고 재료를 녹여 이빨을 만들고 가는 정밀한 작업이라 온 종일 혼자 이빨만 들여다보고 사니 도무지 아웃을 생각하는 주변머리가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밭을 얻어놓고는 주말에 한 번씩 올라오긴 하지만 그 마저 성당에 나가니 열찬씨가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오후시간에 올라와 영순씨나 열찬씨가 차마 그냥 오지를 못 하고 같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저녁 늦게 내려오다 외식을 하면 그마저 손위인 열찬씨네가 돈을 낼 때가 많았다.
그렇게 진짜 재미사마 대충대충 짓는 농사라 삽이나 호미마저 열찬씨네 것을 빌려 쓰는 판에 비료나 농약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막상 열찬씨가 소똥거름을 가지고 올라오니
“형님, 저 소똥 한 두 포대 빌려주세요. 나중에 갚아드릴 게요.”
해서 두 개를 빌려주니 여섯 개가 남는 판이었다. 농사라는 게 들깨나 고구마처럼 거의 거름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봄에 심는 대부분의 채소인 열무와 토마토, 오이, 가지 따위가 상당히 거름을 많이 주어야하고 특히 고추와 감자, 김장채소인 무, 배추, 마늘, 양파는 거름을 많이 주면 줄수록 잘 되고 안 주면 잘 자라지도 않는 곡식이라 거름은 그야말로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그 판에 거름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남이 하니 자기도 해야 되고 눈에 보이니 안 할 수도 없는 두 군식구가 붙어 자신도 이미 환갑이 넘은 열찬씨는 그야말로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꾀를 낸 게 아래쪽에서 농사를 짓는 금정구청출신 박주사에게 청을 넣어 정씨네를 비롯한 골짝사람 전체의 희망을 받아 농협의 축산부산물 거름 200포대를 단체구입하기로 했다. 대부분 노인데들이라 많이 해야 10포대정도인데 열찬씨를 교장선생도 10포, 황서방 10포 등 다른 사람의 합이 160포라 열찬씨가 나머지 마흔 포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거름이 오는 날 아침 새벽에 산복도로에 도착해 여덟 시경에 거름을 받아 제 각기 몫을 받아 따로 쌓고 돈을 거두어 주는데
“언니야!”
어쩌다 총무가 된 것처럼 열찬씨는 거름을 나누고 영순씨는 돈을 받는 그 바쁜 와중에 전화를 걸어와 자기는 성당의 미사에 성경말씀을 낭송하는 임무를 맡아 올 수 없으니 대신 거름 값을 좀 내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럼 황 서방은?”
거름 운반 때문에 성당에도 못 가고 시간나면 저녁에나 갈 요량인 영순씨가 영 기분이 찜찜해서 묻는데
“요새 일이 바빠 어제 밤 열두시 넘어 들어와 여섯 시에 또 기공소에 나갔다.”
“그럼 거름은 누가 옮기노? 너거는 꼭 이럴 때 바쁜 일이 생기나?”
“황 서방은 윤달이라 일이 많아 그렇고 나는 성경말씀 낭송자자매가 갑자기 입원을 해서 대타로 나서서 그렇고.”
“그럼 거름은 우짤라꼬? 환갑진갑 다 지낸 너거 형부가 그것까지 다 져올리란 말이가?”
“오후에 우리가 갈 때까지 한쪽 옆에 동개놓으소.”
“아이구야!”
하고 일단 50포대를 따로 제껴 놓고 열찬씨가 지게에 세 포를 싣고 영순씨가 머리에 하나를 이고 출발하려는데
“이 국장, 보소.”
교장선생이 부르더니
“바쁠 땐 고양이손도 보탠다고 우리도 우리 몫은 우리 내외가 시나브로 져 올릴 테니 걱정을 마소.”
하고 포대를 헐어 반은 플라스틱 광주리에 담아 부인이 이고 반은 교장선생이 메고 일어나려는데
“아이구, 참. 지주 교장선생님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처럼 한 포에 2천 원씩 주고 사람을 쓰면 되지요.”
벌써 돼지국밥집에서 해장술을 마시고 얼굴이 벌건 이호열씨가 혀를 끌끌 차는데
“사람이 있다고 다 쓰면 되나? 아낄 건 아껴야지. 이까짓 거름이 뭐라고 알짱같은 내 돈을 쓰나?”
교장선생이 완강한 어조로 말하자
“설마 저녁까지 다 못 하면 내일 하면 되고.”
부인도 새파라동동한 얼굴로 심청을 부렸다. 그렇게 해서 네 명이 각자 이고 지고 출발을 했는데 골목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아이구, 숨 가빠라.”
평소에 심장이 안 좋아 전에 밭에서 쓰러져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긴 교장선생이 털썩 바위위에 주저앉자 체격이 너무 작아 거름더미에 치일 것만 같은 부인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지라
“내가 먼저 갈게요.”
열찬씨 혼자 10여분을 더 올라가 짐을 부리고 내려오니 아까 보다 한 50미터 전진한 자리에 이번에는 영순씨까지 셋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지라
“교장선생님하고 사모님은 도저히 안 되겠네요. 다른 데 아껴 쓰더라도 일꾼을 시키지요. 대신 제가 오늘 점심은 살 게요.”
하자
“내가 어데 돈이 아까워 그라나? 이까짓 거름에 돈을 쓰서 그렇지. 그리고 내가 뭐 밥 굶는 사람도 아니고 점심은 와 사는데?”
여태 수도 없이 국밥을 얻어먹은 부인이 시치미를 딱 떼고 심술을 부렸다. 그러더니
“전에 국장 없을 때는 통장님하고 셋이 잘만 해주었는데.”
묘한 뉘앙스로 말했다.
“당신도 안 되겠다. 올라가서 교장선생님하고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좀 쉬지.”
하고 혼자 부지런히 져 올리는데 혼자 애쓰는 것이 보기 힘든지 이번에는 영순씨가 다라이를 하나 들고 내려와 포대를 헐어 반 포대씩을 이고 나섰다. 열두 시경이 되어 대부분의 거름이 다 밭으로 올라가고 인부들이 운반을 맡은 것 일부와 열찬씨네 거름만 길가에 남았다. 목소리가 우렁우렁한 이호열씨가 인부 둘을 데리고 돼지국밥집으로 들어가자 영순씨가
“보소. 당신 배 고프제? 우리도 밥 먹고 하지.”
하고 교장선생을 바라보며
“같이 식사하시지요.”
하자
“와 이라노? 우리가 어데 밥 못 묵는 사람도 아인데. 마 됐다. 우리는 빵 하고 우유 사왔다.”
하는 걸
“그래도 우째 우리만 밥을 먹습니까?”
떠밀다 시피 같이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며
“당신 정말 힘이 장사네. 우리 셋이 이적지 세 포 올렸는데 당신은 세 포대씩 일곱 번에 스물한 포, 두 포씩 다섯 번에 열 포 해서 모두 서른 네 포 올렸다. 인자 두 집에 남은 것이 열다섯 포고 따로 황서방 게 열다섯 포다.”
하는데
“그럼 점심 먹고 오후에 져 올릴 것이 우리 거란 말이지?”
부인이 묻는 말에 한참을 생각하던 영순씨가
“교장선생님은 점심 먹고 그만 내려가시지요. 어차피 우리가 져 올릴 거면 먼저 올린 것으로 따로 열 포 동개놀 게요.”
“그럼 고맙고. 대신 밥은 내가 사든지.”
하는 순간
“밥은 무슨 밥? 어데 우리가 먼저 묵자 캤나? 가뜩이나 식욕도 없는데 억지로 묵자 캐놓고.”
부인이 또 심청을 부리더니 국밥이 들어오자 말자 두 내외가 마치 며칠 굶기라도 한 듯이 사정없이 퍼먹기 시작했다. 소주를 한 병 반주로 마시고 얼굴이 발개진 열찬씨가 영순씨가 들고 온 자판기커피를 마시는데
“보자, 밥값이 자랠랑가?”
교장선생이 지갑을 열어 지폐를 꺼내 세기 시작하는데
“교장선생님, 제가 먼저 냈습니다.”
하자
“우리 영감이 낸다 캤는데 젊은 사람이 버르장머리가 없네.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국물 한 방울,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말간 뚝배기에서 숟가락을 떼며 또 심청을 부렸다.
“교장선생님, 먼저 들어가시지요. 우리가 알아서 창고 앞에 따로 열 포 쟁여놓을 게요.”
“그래도 될랑가? 이거 일 시키고 밥 얻어먹고 미안해서 말이야.”
주고받던 영순씨가 교장선생의 승용차에 오르는 부인을 보고
“사모님, 조심히 가십시오.”
하는데
“그럼 조심히 안 가고 늙은 사람이 자빠지기라도 하란 말인가?”
심청궂은 말 한 마디를 돌팔매처럼 던지고 자동차가 떠나갔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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