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 일요일 마늘을 뽑는 날이었다. 마늘밭과 밭두렁이 붙어서 지나치며 자주 보는 이호열씨가
“야, 이 국장 마늘이 엄청 커네. 그리고 이렇게 껍질이 빨간 마늘은 또 첨보네. 이게 도대체 무슨 심판이여?”
전부터 탄복을 하는 바람에 통장님과 윤씨, 통장부인과 김 여사까지 구경을 하다
“아이구, 나는 작년에 마늘씨하고 밑천만 수억 들고 마늘은 손톱만한 것 한주먹밖에 못 캤는데 좌우간 나한테 마늘씨나 좀 파소. 그라고 우리 국장님 심을 때 하는 것 보고 꼭 그대로 할 게요.”
하며 졸지에 마늘농사를 잘 짓는 전문가취급을 하는 지라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토양에 석회성분이 좀 있어야 된다고 해서 종묘상에 갔는데 주인이 석회도 석회지만 미리 토양소독을 하라고 해서 소독을 하고...”
“아니 마늘은 씨를 노란 가루약을 풀어 침종하는 것 아니요?”
“예. 물론 침종도 해야 되지만 그건 종자자체를 소독하는 것이고 토양은 토양, 그러니까 흙속의 병해충을 잡아야 하는 거지요. 거기다 정월대보름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 3,4주 간격으로 고자리 약을 처야 하고요”
“무슨 약이 그래도 많소?”
“아까 종자와 토양에 대한 소독을 했는데 이번엔 날아다니는 침입자를 막는 것이지요. 고자리는 쉬파리의 일종인데 어린 마늘에 알을 낳으면 마늘씨를 갉아먹으며 자라는 병충이지요.”
“그래요. 그 정도야 나도 따라하면 되지.”
하곤 했는데 막상 마늘을 뽑기 시작하자
“야, 마늘이 정말 양파만 하네. 구서동 물망골 골짜기에 이렇게 굵은 마늘이 나올 줄이야!”
이호열씨가 감탄을 하는데 어느 새 나타난 교장선생이
“우리 땅이 과연 문전옥답이란 말이지. 김영철씨 부칠 때는 뭐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는데 이국장이 오고 나니 금방 옥토로 바뀌네.”
하는데
“그래 마늘이 몇 접이나 나오겠소?”
등 뒤에 선 부인이 묻는데 오늘도 역시 얼굴이 새파라동동 심술이 가득했다.
“2천 알 심었는데 일부는 죽고 한 천오백 그러니까 열다섯 접은 나오겠지요.”
“그러면 접에 5만 원을 쳐도 75만원이면 소작료 열배도 더 나왔네. 우리 땅세가 너무 헐한 것 아닌가?”
하는 소리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기겁을 하더니 침을 탁 뱉고 원두막으로 돌아가 막걸리추렴을 벌였다.
“보자아, 마늘을 우째 엮더라?”
영순씨와 장모 순란씨까지 셋이 한 골을 뽑고 열찬씨가 빨간 비닐 끈을 가져와 다섯 알을 한 묶음으로 해서 스무 개를 좌우로 묶어 한 접을 완성하는데
“보소. 그걸 일이라고 하능교? 이리저리 뒤틀리고 쏠리고 그 기 어데 오래 붙어있겠능교?”
혀를 끌끌 차며 영순씨가 꼭대기를 들어 올리자 양 사방으로 뒤틀려 흐느적거렸다.
“이 서방, 그라지 말고.”
장모 순란씨가 나서더니
“요새도 옛날식으로 엮어서 파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50개씩 단을 묶어서 시장에 내놓으면 사는 사람들은 비닐봉지에 마늘 알만 똑똑 따서 담아가는 사람이 많지. 마늘 뭉치는 건 내갈 할 테니 힘 좋은 이 서방은 영순이 하고 마늘이나 뽑으소.”
하고 마늘을 50개씩 세어서 묶는데 역시 솜씨가 다른지 단단하고도 맵시가 났다. 열찬씨가 부지런히 마늘을 뽑다 땅이 여물거나 꼭지부분이 약해서 마늘송이가 흩어지면
“아이구, 아까버라! 마늘 한 접에 5만 원이면 그거 한 송이에 500원인데 당신 손에 가시가 붙었는지 마늘 캐는 것 보다 부수는 것이 더 많겠다.”
또 눈을 흘겨 이번엔 쉬 뽑히는 것만 빼고 나머지는 호미를 들고 와서 캐니 시간이 엄청 걸렸다. 아직 마늘은 1/3도 못 뽑았는데 벌써 11시가 훌쩍 넘어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다 초여름 볕이 얼마나 뜨거운지
“마늘농사 잘 지어서 누가 다 먹을지 몰라도 마늘 캔다고 내만 죽는구나!”
밭 귀퉁이에 놓아둔 막걸리를 마시면서 두 사람에게도 생수통을 들어다주는데 평소에 창백하도록 하얀 영순씨의 얼굴이 술 취한 사람처럼 벌겋게 익어 있었다.
“아따, 날씨 한 번 진짜로 덥네!”
하고 수건으로 땀을 닦던 순란씨가
“참, 황서방은 어데 갔노? 아까 오는 것 같던데.”
그러고 보니 미사에 일을 맡은 처제 영신씨는 나중에 오기로 하고 마늘 뽑는 일을 도우러 보낸 황서방이 먼저 올라왔는데
“형님, 오늘 마늘 뽑는가베? 마늘도 참 잘 됐네.”
한마디 던지고 아래쪽 제 밭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안 보이네. 어데 갔능고?”
열찬씨의 말에
“아까 마다리포대 몇 장 들고 소나무 밑에 들어가더라.”
영순씨의 말에
“소나무 밑에는 와?”
“요새 일이 되서 좀 자러 갔겠지.”
“아니, 처제가 마늘 빼러 보낸 사람이 소나무 밑에서 낮잠이라니?”
하는데
“쉬-”
영순씨가 입술위에 손가락을 가위표를 그리며
“자다가도 듣는다. 들으면 민망하다 아이가?”
“민망한 짓 하면 민망해야지. 내 들으라고 한 번 더 소리칠까?”
“보소. 그 사람이 얼마나 몸이 힘들면 그러겠소? 당신은 명색 손위동서가 되서.”
하고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공무원바닥에서 내일 남의 일 구분 짓기는 하지만 축제나 큰 행사가 있거나 풍수해가 일어나면 임시로 업무분장을 해서 협조 요청된 일부터 우선 처리하는데 익숙한 열찬씨로서는 자기가 직접 해야 될 제 집일이나 처제가 시키는 일이 아니면 남을 돕거나 관심을 가지는 발상조차 안 되는 황서방의 성격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있는 집에서 귀하게 자라고 직업마저 혼자서 본을 뜨고 이빨을 만든다고 깎고 자르고 페퍼 질을 하는 편이라고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영순씨가 강조하는 것이었다.
“암만 그래도 그렇지. 열두 살이나 많은 큰동서가 고생을 하는데 내가 부르러 갈까?”
순란씨의 말에
“저도 저지만 장모님이 이 땡볕에서 고생하는데.”
열찬씨가 나서자
“보소!”
영순씨의 눈꼬리가 무섭게 올라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그래서 혼자만 손해를 보고 골병이 드는 그 모진 결백증이 도진 것이었다.
“허허. 어는 놈은 무시 묵고 어느 놈은 인삼 먹는다 카디마는...”
“우짜겠노? 억지로 편해도 편한 놈이 장땡이지. 그 비잡은 콩지름독에서도 누워서 크는 콩지름이 다 있는데.”
사위와 장모가 마주보며 웃는데
“날씨 더운데 고생이 많네. 우린 인자 내려갈 긴데.”
교장선생이 밭머리에서 말하자
“마늘씨 좀 줄까싶어 기다리다가 사람 목 빠지겠네.”
등 뒤에서 부인이 한 마디를 던졌다.
“아, 예. 그렇지요. 이거 내년에 종자나 하이소.”
열찬씨가 반접짜리 한 뭉치를 건네주자
“이거 종자하면 마늘 맛은 뭐도 보고...”
부인이 들으라고 중얼거리자
“아, 예.”
이번에는 영순씨가 반접짜리 하나를 부인에게 안기자
“그럼 그렇지, 좋은 땅 헐값으로 주었으니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고 신이 나서 내려갔다. 그 때
“야, 마늘대풍이라고 인심 팍팍 쓰네.”
잠시 각자 밭일을 하고 다시 막걸리추렴을 하던 이호열씨가 소리치자
“통장님, 이거 반접인데 내년에 종자로 쓰이소.”
열찬씨가 한 뭉치를 건네주고 돌아서는데
“야, 인심 한번 고약하다. 누구는 인삼 먹고 누구는 무시 먹는다더니 이건 숫제 맹물만 먹으라 하네.”
넉살좋은 이호열씨가 들으라는 듯 말해
다시 밭으로 와서 영순씨를 바라보며
“우짜꼬? 한 20개씩이라도 줘야지.”
하고 20개 세 뭉치를 만들어 이호열씨, 윤병균씨, 김여사 몫을 주고 돌아서니 두 사람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우리가 뭐 이국장 하고 1박2일을 아는 사람이가? 벌써 같이 지낸지 3년짼데.”
이호열씨의 텁텁한 목소리가 뒤를 따라왔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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