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씨의 눈에 눈물이 비치며 목소리가 젖었다.
“이 양반아, 오죽하면 내가 이런 말을 다 하겠나? 뭐 내 한 평생은 공짜로 편하게만 살았나?”
“...”
한참이나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당신은 내가 시를 쓰고 문단에 나가고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 일에 너무나 냉담하다 못 해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는 것 같았어.”
“그야 내게 없는 재주를 당신이 가졌으니 내가 뭘 알아야 말을 하든 말든 하지.”
“그래도 시집을 내어 돈이 조금 들어온 일도 있고 출판기념회니 방송출연이니 당신이 빛나는 자리에 서고 우리 장모님이 신나는 일도 있었잖아?”
“그래 우리 엄마가 신이 난 건 사실이지. 그러나 그건 김해형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오죽하면 가열찬처녀시집의 처녀가 자기처녀 적을 생각하며 쓴 시라고 생각할 정도로.”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고 당신이 내 시를 읽어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내 입에서 시라는 말이 나오는 자체를 싫어한단 말이지.”
“인간아, 그기 와 그런지 모르겠나?”
“모르기는? 당신은 부부간에도 질투를 하는 것 같아. 문학이든 뭐든 내가 당신보다 잘 하는 일이 있으면 그걸 어떻게든지 무시해야만 하는 성질 말이야.”
“택도 없는 소리.”
“택도 없다니?”
“내가 원 동네 부끄럽고 남새시럽어서. 내 이 말은 죽을 때까지 안 할라 캤는데.”
“뭐가 무서워서 못 하는데?”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럽고 치사하고 자존심 상해서.”
“응?”
“무슨 시를 첫사랑 시를 쓴단 말인가? 저 촌놈, 원숭이, 침챈치, 오랑우탄보다도 못 생긴 남편마저 한 눈을 팔고 첫 사랑 운운하는 못난 여자로 만든단 말인가?”
“아니, 그거야 지나간 첫사랑이고 그냥 문학세계지.”
“문학세계 좋아하네. 순영인가 누군가 첫사랑 그 여자가 좋으면 당장이라도 나가서 그 여자랑 살아보지.”
“무슨 소리?”
“당장 나가!”
숨이 가빠진 영순씨가 거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홧김에 아파트를 나가 지하 통술집에서 맥주를 몇 병 마시는데
“아니, 선생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얼마나 표정이 심각한지 곧 죽을 사람 같아 보인다면서 50대의 마담이 동석해 한참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들어와서 이튿날 영순씨가 나갈 때 모르는 척하고 들어올 때 잠든 척했다. 그렇게 이틀이나 보낸 뒤 일요일 아침이 되자
“보소. 당신 밭에 안 갈 끼요?”
아침부터 부산을 떨던 영순씨가 열찬씨를 깨우더니
“어서 아침 먹고 올라갑시다.”
하더니 밭에 나가
“이 양파 좀 보소. 대포알이고 미사일이고 썩으면 무슨 소용이 있노? 장마철에 내가 안 챙겼더니 아예 곤죽이 됐네.”
하더니 교장선생내외가 오기 전에 얼른 치우자며 땅에 묻고 깨끗이 청소를 하더니 마침 교장선생이 올라오자
“안녕하세요?”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커피를 대접하더니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온갖 이야기를 하다 석대다리집에서 보신탕을 대접하고 만두까지 두 도시락을 차에 실어주는 것이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K. T. X예매를 마쳤다면서 전화를 건 며느리 상미씨가 영순씨에게
“할머니 일주일 뒤에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해.”
하자
“함머니, 안녕 계세요.”
18개월이 좀 넘은 큰 손녀 가화가 코맹맹이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그래 알았다.”
전화를 끊은 영순씨가
“당신 또 딸을 낳는다니 섭섭하나? 그래도 며느리한테는 절대 내색하면 안 됩니다.”
“와 이라노? 내가 뭐 한두 살 묵은 알라도 아이고.”
“그래 말하는 당신 표정이 우거지상이라서 그렇지.”
“그런가?”
하면서 둘 다 깊은 상념에 빠졌다. 지난 구정을 쐬고 서울로 가화의 돌잔치를 보러 갔을 때 소식을 듣고
“그래 다행이다. 아들이건 딸이건 그저 순산하도록 해라.”
영순씨가 하는 말에
(설마 이번엔 아들이겠지...)
속으로 기대가 만발해서 돌아오는 내내 열차 안에서 흐뭇한 미소를 띠고 왔는데 하마 연락이 올 것이라고 목을 빼고 기다리던 연락이 두 달이나 지연되더니 어린이날이 지나고 어버이날이 되자 정석씨의 전화가 와서
“아버지, 이번에도 없습니다.”
“없다니? 자세히 찾아보지.”
“예. 아무리 자세히 찾아봐도 없습니다.”
“허허, 참. 재주가 메주인가? 눈이 어둡나? 확실히 나올 때까지 계속 찾아봐.”
“예.”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그런다고 복중태아의 없는 고추가 생길 리 만무했다.
(아, 이럴 수가? 외동아들에 두 손녀. 남의 일 같던 일이 우째 내 일이 되었단 말인가?)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렇다면 우리 김 서방이 딸딸이아빠에 아들도 딸딸이아빠가 되면 나는 딸딸딸딸할아버지, 다 떨어진 슬리퍼 네 딸딸이 할배가 된단 말인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면서
“아직 우리 며느리가 젊으니 설마 그만 낳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옆에서 숨죽이고 듣고 있던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자
“마,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소. 그게 자기들, 특히 직접 낳아기를 며느리의 선택이지 우째 우리가 결정할 일이요?”
하며 혀를 끌끌 차더니
“기대는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며느리도 직장이 있고 친정이 있어 듣는 것도 있고 의논하기도 할 텐데 요즘 세상에 시가에 아들대가 끊긴다고 셋째를 낳을 바보가 어디 있어요?”
하더니
“행여나 며느리에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불편해서 집에도 못 오게.”
신신당부를 하고 다짐을 받았다.
(그래 하는 수 없지. 섭섭한 건 섭섭하더라도 아이이름은 지어주어야지.)
하고 컴퓨터를 켜고 옥편을 뒤적거리다
(왜 이리 신명도 안 나고 생각도 안 날까? 가화동생이니 그냥 또화나 우화로 할까 또 우(又)짜 우화, 아니지 암만 그래도 둘째로 나름 하나의 인격과 자존심을 가지고 태어날 텐데...)
하다 그만 컴퓨터를 꺼버렸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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