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숙박한 ' 엘 부르고 라네로' 공립 알베르게 내부. 필자가 잤던 곳은 왼쪽 첫번째 침대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4년 11월 8일(금요일)이다. ‘엘 부르고 라네로’ 알베르게에서 나오기 전에 동전 있는 걸 돈통에 다 넣었다. 많이 기부하지 못해 미안했다. 기부제 숙소였다. 오전 8시 10분에 밖으로 나왔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 사진= 조해훈

알베르게 입구에서 진행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마을이 제법 길게 이어져 있다. 7, 8분가량 걸으니 도로 오른쪽에 늪지대가 있다. 늪에서 자라는 풀이 누렇게 퇴색되어 있다. 억새는 아닌데 잎은 억새처럼 생겼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또 만났던 대구에서 오신 부부의 남편께서 “오늘 어디까지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오늘 ‘만시아 데 라스 무라스’까지 갑니다.”라고 답했다. 남편분은 “우리도 거기까지 갑니다.”라고 했다. 둥근 얼굴의 사모님은 옆에서 웃기만 하신다.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에 있는 늪지. 사진= 조해훈

어제 하루 묵었던 알베르게 마을이 늪 저쪽으로 보인다. 하루를 묵었더라도 정이 든 모양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곳곳에 마음을 조금씩 주고 다니는 것 같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니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필자도 말은 별로 하지 않으나 정(情)이 많은 편이다.

오늘 순례길은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8시 23분, 자그마한 성당을 지난다. 순례길은 도로 옆으로 나 있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순례길이 도로 옆으로 나 있지만 오솔길이어서 재미가 없지는 않다. 오전 8시 33분, 공동묘지를 만났다. 우리나라의 납골당처럼 생겼다. 하늘나라에 간 영혼들 앞에 꽃이 많이 놓여 있다. 대리석으로 무덤을 만든 공동묘지든, 이처럼 납골당처럼 조성된 공동묘지든 하늘나라로 간 영혼들을 대하면 명복을 빈다.

순례길에 있는 공동묘지. 우리나라의 납골당처럼 만들어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오늘은 하늘이 좀 희멀겋다. 오른쪽은 도로이고 왼쪽이 경작지이다. 오전 8시 55분, 옥수수를 벤 자리 같은데 흙의 색이 황토색이다. 산티아고에서 이렇게 붉은 밭은 처음 봤다. 경작지가 대체로 진한 고동색이었다. 우리나라도 지역에 따라 황토가 많은 곳이 있지 않던가. 전남 해남과 무안이 황토가 많은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이 지역의 밭은 다른 지역과 달리 황토색이다. 사진= 조해훈

황토밭 인근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십자가 아래의 비석처럼 생긴 곳에 산티아고 문양이 있다. 지금은 가톨릭 종교인들만 순례길을 걷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가톨릭 성직자와 교도들이 순례 차원에서 걸었던 길이므로 이처럼 십자가를 세워 두었을 것이다. 걷다가 힘들 때 십자가 앞에서 기도와 묵상을 함으로써 힘을 얻을 것이다.

순례길에 있는 십자가. 사진 = 조해훈

오전 9시 4분, 오솔길에 큰 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다. 길에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만추의 느낌이 충만하다. 숲은 없지만 늦가을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옛 시인들은 이런 만추에 타향에서 가족과 고향을 그리는 시를 많이 지었다. 그래서일까, 필자도 시상이 떠올랐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노트에 적어 놓을 생각이다.

황토밭이 이어진다. 이 지역은 어떤 자연조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황토가 많다. 밀 싹이 제법 올라온 밭도 황토색이다. 아직 햇빛이 나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하늘은 희멀겋다. 오전 9시 34분, 뒤에서 순례자 한 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뷰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한 후 필자를 지나 앞으로 걸어갔다.

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를 오랜만에 봤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40분, 오랜만에 초지를 만나고 풀을 뜯는 소를 봤다. 소는 두 마리뿐이지만 반가웠다. 소를 많이 키울 사람이 없다는 걸 안다. 그리하여 소가 몇 마리 되지 않는다고 아쉬움이 들지 않는다. 두 마리의 소는 녹색의 풀을 뜯어 먹느라고 정신이 없다. 필자가 반가워 자신들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을 바라보다가 필자는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오전 9시 58분, 베지 않은 해바라기들이 시커멓게 서 있는 밭이 있다. 오전 10시 22분, 이제는 베지 않은 옥수수밭이 있다. 옥수수밭은 누렇다. 공리가 주연한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이 생각났다. 필자는 그 영화를 볼 때 수수로 만든 붉은 색의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장면이 아주 인상 깊었다.

비행기 날개처럼 생긴 기구에서 농약인지, 영양제 인지를 분사한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30분, 의아해하던 기구의 용도를 마침내 알게 되었다. 트랙터에 비행기 날개처럼 생긴 것을 양쪽으로 단 기구를 보고 그동안 무슨 용도일까 궁금했다. 순례길 바로 옆 밭에 그 기구가 움직이고 있었다. 농약인지, 영양제인지를 뿌리는 기구였다. 농부가 트랙터를 운전하면서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비행기 날개 모양의 기구에서 액체를 분사했다.

비야마르코 알베르게 안내판이 서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34분, ‘VILLAMARCO’(비야마르코)라는 알베르게 광고판이 서 있다. 길은 계속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오전 11시 20분, 지하차도를 지났다. 길 위에 종(從)으로 또 다른 도로가 있었다. 낮 12시 3분, ‘RELIEGOS’(엘리에고스) 마을 입간판이 있다. 엘리에고스 마을 입구라는 것이다. 저쪽에 마을이 보인다. 2분가량 걸어가니 바(BAR)가 있다. 바 이름은 ‘BAR GIL Ⅱ’이다. 안쪽에 앉아 밀크커피와 크로와상을 주문하여 먹었다. 35분가량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다 일어서 또 걸었다.

하늘이 희말겋다. 사진= 조해훈

오래된 집들이 있지만 마을은 깨끗했다. 이제 마을 건물들 위로 하늘이 엷은 잉크색으로 변하고 있다. 낮 12시 48분, 마을을 빠져나가는 지점쯤에 넓은 정원을 가진 집이 보인다. 이 집 정원에 수령이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올리브나무가 서 있다. 그 집을 지나니 한 집 벽에 각종 농기구를 벽체에 붙여놓고 바닥에도 놓아두고 있다. 아마도 순례자들에게 보여주려고 그렇게 인테리어(?)를 해놓은 것 같다. 트랙터로 농사를 짓기 이전에는 저 농기구들로 농사를 지었으리라.

점심시간에 만난 바에 들어가 밀크커피와 크로와상을 주문해 먹었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9분, 고속도로 위로 길이 연결돼 있다. 길은 다시 도로 옆 오솔길로 이어진다. 오후 1시 47분, 하늘에 뭉게구름이 일어나고 있다. 오후 3시 55분, 마침내 만시아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침대를 배정받아 들어갔다. 입구 침대 1층에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는 순례자가 기침을 심하게 한다. 알베르게 아주머니는 필자에게 “저기 입구의 아저씨는 기침이 심해 앰뷸런스를 불러놨습니다. 당신은 저런 기침 증세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필자는 “예, 저는 기침 증세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혹시 기침 증세가 있으면 이야기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한 집 정원에 수령이 오래된 올리브나무가 있다. 사진= 조해훈
한 집 벽과 바닥에 각종 농기구가 인테리어 돼 있다. 사진= 조해훈

얼마 지나지 않아 앰뷸런스가 와 아저씨를 태우고 갔다. 그러는 와중에 대구에서 두 번째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부부를 또 만났다. 어제 하루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부부이다. “마을에 마트가 있어 다녀왔습니다.”라고 하셨다. 필자도 부부가 알려준 마트로 갔다. 마트에는 산티아고에 와 두 번째로 가보았다. 과일 등을 샀다. 요리할 줄 모르니 다른 건 살 수가 없었다. ‘여자들은 요리할 줄 아니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3시 지나자 하늘에 뭉게구름이 일어나고 있다. 사진= 조해훈

마트에 갔다 오니 작은 부엌에서 부부가 저녁을 먹고 있다. 필자도 그 옆에 앉아 과일로 저녁을 대신했다. 그러는 사이 앰뷸런스가 와 기침을 많이 하는 아저씨를 내려놓고 갔다. 알베르게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코로나 증세는 없다고 합니다. 아마 기침감기인 것 같습니다. 주사를 맞고 왔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아저씨는 밤새도록 기침을 심하게 하셨다. 이렇게 ‘만시아 데 라스 무라스’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내일은 산타이고 순례길에서 유명한 도시인 레온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긴 거리를 걷지 않았다.

오늘은 18.8km를 걸었다. 생장에서 여기까지는 총 443.5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