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에

조해훈

지리산 깊은 산중에 살아도 세상 소리 들린다
갈수록 사람살이 요란해져서 일 테이니
차산에서 차나무 헤집어 억새 베어내고
가시 베다 팔목이 긁혀 아야 소리내는데
멧돼지 큰놈 씩씩거리며 빠르게 다가온다
놀라 경사진 차밭 뛰다시피 내려가
원두막으로 올라가니 마음이 놓인다
덕분에 의자에 앉아 맞은편 산을 보니
중턱까지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 있다
날씨는 춥고 바람은 차가워도
저 속에 이미 봄이 와 있을 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입춘이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만 사람들이 알려주곤
자연의 법칙인 절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네
아직 매서운 추위는 남아있지만
어김없이 때가 되면 새 생명이 올라오는
봄, 희망을 주는 봄이 오고 만다네

조해훈 시인

◇ 조해훈 시인

▶1960년생 ▶1987년 『오늘의 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생선상자수리공』·『섬진강』 등 ▶최계락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