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죽고 잡혀가고(6)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에 잠긴 열찬씨가 기왕이면 화단이랑 밭이 깨끗이 정비된 모습을 보였으면 싶어 그간 미뤄놓았던 화단 공사를 시작하는데 우선 눈에 거슬리는 것이 무를 심었던 정면화단의 폭이 너무 넓어 맵시가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화단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나무와 꽃을 많이 심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제발 쫌상 짓 하지 말고 널찍하게 하라는 영순씨의 말대로 길이 10미터에 폭 2.5미터로 만들었는데 김장무를 다섯 줄이나 심을 정도로 넉넉한 건 좋았는데 막상 무를 뽑고 나니 맵시 없이 덩치만 커 허리가 한 발이나 되는 여자처럼 도무지 멋이 없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폭을 줄이기로 하고 마침 앞집에 이사를 오느라 정신이 없는 조카 현주와 유서방을 불러
“봐라. 폭이 이 정도면 좋을까? 아니면 더 넓힐까?”
하고 궁리해서 결정하고 자로 재어보니 160cm정도가 되었다. 앞쪽 잔디밭쪽에 쌓은 돌은 그대로 두고 뒤쪽의 돌을 빼 앞으로 당겨 쌓던 열찬씨가 호동씨가 장비로 대충 밀어붙인 돌들도 동글납작 잘 생긴 놈, 길쭉하고 날씬한 놈, 한쪽 끝이 튀어나온 놈, 구들을 놓았던지 새까맣게 숯 검댕이 묻은 놈 등 각양각색인 것을 발견하고 비슷한 것 끼리 모아보기로 했다. 그러자 조개껍질처럼 한쪽 면이 반듯한 타원형에 불그스름한 줄무늬가 있는 돌, 새파랗고 단단한 청석, 길쭉하면서도 끝이 뭉툭해 어딘가 우울한 옆모습 같은 돌들도 있었다. 밭은 물론 펜스 안팎을 비잉 돌며 그럴 듯한 돌들을 모두 싣고 와 쭉 늘어놓고 분류를 한 뒤 그 중 붉은 빛이 도는 조개껍질처럼 오목한 돌 네 덩이를 한가운데 쌓아놓으니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긴 끈을 늘어뜨리고 춤을 추는 형상이 연상되어
(옳지, 이 구간을 <고구려의 하늘>이라고 이름 붙이자.)
하고 이번엔 길고 끝이 뭉툭한 돌들을 한 줄로 세워놓으니 마치 이스턴섬의 석상 모아이 같아
(그래 이건 <무뚝뚝한 대화>로 이름 붙이자.)
하고 새파란 청석과 단단하고 매끈한 돌을 동쪽 끝에 배열하고
(그래. 이건 <에덴의 동쪽>이야.)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했다. 다시 아래는 넓고 둥글고 끝이 길고 날카롭게 솟은 돌을 대여섯 개 모아 우물 옆의 ㄷ자부분에 놓고
(이건 둥글고 끝이 뾰족한 모스크 같기도 하고 구불구불 이상한 모양의 아라비아 글씨 같기도 하네.)
하다
(오라. 모스크나 코란이 연상되는 이 부분은 <알라신은 위대하다.>로 하자.)
하고 손을 탈탈 털고 방에 들어와 맥주를 한잔 하다가
(그렇지. 큰길에서 부터 들어오는 안내판을 세워야 된다고 생각했지. 단순한 안내판보다 좀 더 운치가 있는 간판으로...)
하고 생각하다 보니 우선 농장의 이름을 짓는 것이 선결요건이었다.
(평화와 안식의 뜨락, 명촌농장, 평리선생움막....)
한참이나 이름을 생각하다
(옳지. 명촌별서(別墅)가 좋겠군. 부를 과시하는 별장(別莊)도 아니고 소일거리를 삼아 조그만 일거리를 찾는 별업(別業)도 아니고 옛날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가 책을 읽고 소일하다 조용히 죽어가는 집...)
일단 명촌별서로 부르기로 하고 사광리 버스정류소 맞은 편 논길입구에 안내판을 세우되 좀 분위기가 있는 특별한 간판을 세우기로 하고 한참이나 디자인을 구상하다
잠자리 다섯 마리 그림
작가 캐리캐처
어느 시인의 늘그막(幕)
명촌별서(鳴村別墅)
울주군 상북면 명촌길천로 209-25↓
대충 디자인을 마치고 어디에 일을 맡길까 생각하다
(옳지. 금강 김광진 사장이 있었구나!)
쾌재를 불렀다. 축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행사를 주관하는 문화관광과장 열찬씨가 재직당시
“과장님, 안녕하세요?”
얼굴이 새까만 친구하나가 작은 가방을 들고 가끔 사무실에 들어 와 인사를 하면
“아, 예.”
건성으로 인사하고 그가 돌아간 뒤
“뭐하는 사람이야? 내 평생을 살며 내보다 피부가 더 검은 사람은 처음보네.”
“아, 금강이라고 광고사경영하는 분인데 사람 좋고 일 잘 하고 그저 그만인데 출신이 충청도 촌놈이라 얼굴만 보면 숯하고 친구에다 연탄하고 사촌이지요.”
하는 정도로 알고 지냈고 어쩌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만나면
“안녕하세요? 과장님!”
공손히 인사를 하고 동석도 안 하지만 매번 밥값, 술값을 내고 가는 사람이었다. 김모청장에게 찍힌 열찬씨가 기획감사실장에서 신설과 자치생활과장으로 좌천되어 신설부서라 아직 직원도 한 명 없이 빈 사무실에 앉았는데 웬 축하란 하나가 배달되어 구청장비서실장인 박기도씨랑 정병진씨가 남이 보면 구청장귀에 들어가 힐책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평생동지 열찬씨를 보러왔을 때
“혹시 동생들이 보냈나? 말썽 날까 봐 이름도 안 쓰고.”
물어보니 자기들은 외고 펴고 이름을 적어 화분을 시켜 곧 올 거라며 고개를 갸웃하던 정병진씨가 어딘가 전화를 걸어보더니
“금광 김 사장이 보냈답니다. 하도 딱하기도 하지만 영전이든 좌천이든 새 출발은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말입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준 일이 없는데 그 사람이 왜 그럴까?”
“아닙니다. 한 번도 까탈을 부리지 않는 점잔은 거래처의 장이기도 하지만 워낙 과장님의 시를 좋아하는 팬이라서 말입니다.”
“그래? 다음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나 해야겠네.”
하던 생각이나 정병진씨에게 전화번호를 알아 연락하니
“대환영입니다. 영광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주로 행정안내판이나 상업광고만 하다 그런 예술성 높은 작품을 잘 해낼지 모르겠어요.”
“내가 알기로 김사장은 충분히 잘 해낼 거요. 기대가 큽니다.”
하고 문안을 팩스로 보내는데
“어이, 호구선생, 선생이 안 오니 훌라판이 개점 휴업할 판이야.”
산우회 양경석회장의 전화였다.
“우째 귀한 전화를 다 주시고.”
“한번 놀러 오소. 회원들이 얼굴 잊어뿐다고 난리야.”
“예. 그러지요. 뭐.”
“집일은 잘 되고?”
“예. 그럭저럭.”
“어서 끝내고 집들이를 해야 우리 산우회에서도 뭘 하나 해죽 나도 하나 해주고...”
하는 순간 퍼뜩 생각이 미친 열찬씨가
“참, 양 회장님!”
“예.”
“좀 어려운 부탁이기는 한데 내가 지금 도로에서 우리 집까지 찾아오는 안내판을 세우려고 말입니다.”
“그래야지요.”
“그런데 그냥 평범하게 세우는 게 아니라 명촌별서라는 멋진 이름도 짓고 잠자리도 몇 마리 날아가는 구성에 내 얼굴을 캐리캐처해서 넣는 좀 예술적이고 멋진 간판으로...”
“좋지요.”
“그런데 그게 비용이 좀 날 것 같은데 산우회나 양 회장 개인이 좀 지원해주면해서 말입니다.”
“얼마나?”
“디자인 비에 예쁜 간판까지 해서 적어도 50만 원 이상이 들겠지만 한 30만 원만 지원하면 나머지는 내가...”
“그러든지. 내일 바로 30만 원 입금할 게.”
해서 마침 마트에 볼일이 있어 현주씨의 차로 읍에 나갔던 열찬씨가 통장을 찍어보니 바로 입금이 되어있었다. 다시 등말리로 돌아오는데 버스정류소 맞은편에 포터차가 하나 서 있고 그 앞에 새까맣고 낯익은 얼굴이 하나 있어
“아이구, 금광 김 사장!”
“아이구, 국장님!”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안녕하세요?”
역시 수수한 차림의 부인이 다소곳이 인사를 했다.
“여기 세우면 되겠지요? 먼저 세우려다 그래도 국장님이 보시고 나서 세우려고 말입니다.”
“오래 기다렸나? 전화를 하지 그래?”
“아뇨. 방금 왔어요.”
“그런데 언제 이래 빨리 일을 했나?”
“정병진 동장이 국장님 사진 들고 찾아와서 같이 작업했다 아입니까? 간판은 마음에 듭니까?”
“이만 하면 됐지. 근데 사진이 실물보다 나무 잘 생긴 것 아니야?”
“아, 국장님이 얼마나 멋진 분인데요.”
간판을 세우고 집으로 데려가니
“멋져요. 내 평생의 꿈을 국장님이 먼저 이루었네요.”
하고 화단과 밭을 둘러보더니
“전망이 좋아요. 저기 앞산과 송신탑도 멋지고.”
봉화산을 가리키며 탄복했다. 밭에서 대파를 좀 뽑고 김장김치를 꺼낸 열찬씨가
“삼겹살은 천상 제수씨가 좀 구워야 되겠네.”
하고 고기를 구워 셋이 식사를 하고
“제수씨 호박풀데기 좋아하지요?”
“예.”
“그럼 누렁디 호박 좀 가 가이소.”
큰놈 두 개와 끝물로 딴 애호박 하나를 실어주다
“무시도 있으면 쓰겠제?”
무를 여남은 개 봉지에 담아 건네주니
“꼭 친정 온 것 같네. 자주 놀러 와도 되지요?”
“되고말고.”
“감사합니다.”
기분 좋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