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이 광

한동안 움켜쥔 일 모래알로 흩어지고
풀어놓은 시 한 수 갈무리 안 되는 날
잘 듣는 단방이 있어
숲 거닐며 쐬는 바람

널 보내고 그 후로는 내 마음도 종종 빈집
저 윗녘 단풍 소식 너무 고와 쓸쓸한 날
쓸 만한 처방을 찾아
한밤 홀로 젖는 추억

조금씩 날 비우며 당신께로 가는 길은
더는 차마 못 버리는 내가 날 붙잡는 길
오래된 비방 꺼내듯
두 눈 감고 모은 두 손


작가의 의도가 독자에게 전달이 여의하지 않을 작품 하나 소개합니다. 쉬 말씀드리자면 침체를 겪거나 갈등에 빠진 자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제목의 환기는 일반적으로 공기를 바꾼다는 뜻으로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요. 한자漢字로 쓰면 의미를 달리하는 각 수마다의 환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자가 생활 속 변화를 바라는 환기는 첫수에서는 ‘잘 듣는 단방’이라 하고 2수에는 ‘쓸 만한 처방’이 되고 3수에 와선 ‘오래된 비방’으로 나옵니다.

첫수의 환기는 분위기를 바꾼다는 것이죠. 계획했던 일이 흐지부지 끝나거나 쓰던 시마저 잘 안 풀릴 때 필자의 경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숲속으로 산책합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산책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주고 해결책마저 제시해 주곤 합니다. 둘째 수의 환기는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죠. 단풍 소식을 듣다가 공연히 쓸쓸해져 출가한 딸이 쓰던 빈방에서 딸과 함께했던 추억을 돌이키며 스스로 달래고 있습니다. 셋째 수는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비우지 못하는 모습을 질책하며 묵상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신께 향하는 나를 붙잡는 건 바로 나 자신이란 사실이 곤혹스럽습니다, 묵상 중에 올리는 기도는 자신의 변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