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상 교수의 '중독 이야기' (2) 담배와 니코틴

최은상 승인 2021.05.03 11:44 | 최종 수정 2021.05.03 16:19 의견 0

1492년 콜럼버스 탐험대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현지인들은 이미 담배를 사용하고 있었다. 담배는 1519년 스페인인 오비에도(Fernandez de Oviedo)에 의해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그 당시는 담배를 토바코(tobaco)라 불렀다. 포르투갈 대사였던 프랑스인 장 니코(Jean Nicot de Villemain)는 담배를 포르투갈로부터 프랑스에 소개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592년에 시작된 조일전쟁 때 담배가 처음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53년 스웨덴의 박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는 담배를 장 니코의 성 Nicot와 tobaco를 가지고 니코티아나 타바쿰(Nicotiana tabacum L.)으로 이름 지었다. 니코티아나는 속(屬)명으로서 담배를 부르는 말이다. 니코티아나 속에는 약 60여 개의 종(種)이 있다. 그 중에서 흡연과 관련이 있는 것은 두 종이다. 니코티아나 타바쿰은 잎사귀가 큰 종으로 원산지는 남미이고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다. 다른 한 종은 Nicotiana rustica 인데 잎사귀가 작은 종이다. 서인도와 북미 동해안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1828년 독일인 의사 포젤트(Wilhelm Heinrich Posselt)와 화학자 레인만(Karl Ludwig Reimann)은 담배로부터 니코틴(nicotine)을 분리하였다. 1843년에는 니코틴의 화학식이, 1893년에는 구조가 밝혀졌다. 니코틴은 무색의 휘발성 천연 알칼로이드이다. 담배 연기 속의 니코틴은 플러스 전하 혹은 중성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중성 형태의 니코틴이 더 쉽게 입, 코, 폐와 같은 호흡기계의 점막을 통해 혈관 속으로 흡수된다. 궐련담배 한 개비를 피우면 약 1mg의 니코틴이 정맥을 통해 체내로 들어간다. 니코틴은 산화되면 갈색으로 변하고 태우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궐련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주위에 역겨운 냄새를 피운다.

담배 중독자의 대부분은 흡연이 주는 불안감(디스포리아)이나 긴장감의 완화(유포리아)보다 건강에 대한 염려 때문에 금연을 시도하지만 6개월 이상 금연에 성공한 경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초에 감소한 담배 판매량은 시간이 흐를수록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 금연이 쉽지 않다는 근거이다.

습관(habit)이란 반복된 학습을 통해 획득한 행위로 표현할 수 있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과 흡연으로부터 얻은 정서는 중독자의 뇌 속에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뇌에서 주로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보상계를 구성하는 선조체(dorsal striatum)이다.

흡연에 의해 뇌로 들어온 니코틴은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를 포함해서 일곱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이 물질들은 정서의 조절, 각성, 인지 및 기억의 증진, 불안감과 긴장의 완화, 식욕 억제와 같은 다양한 기능을 한다. 이것이 담배의 효능이다. 담배의 효능은 니코틴이 신경전달물질들의 분비를 증가시켜 나타나는 것이다. 체내로 들어온 니코틴은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간에 존재하는 효소에 의해 기능을 잃게 된다. 이 과정을 대사라고 하고 대사된 물질을 대사체라고 한다. 반감기는 두 시간 이내이다.

니코틴의 약 70%는 코티닌(cotinine)이란 물질로 대사가 되고, 코티닌의 60%는 다시 다른 물질로 대사되어 신장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다. 나머지 니코틴 및 코티닌의 대사체는 소변으로 배출된다. 대사체는 일반적으로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니코틴 대사체가 의존성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학술적인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약물학적으로 니코틴은 강성 마약인 코카인, 필로폰보다 의존성이 크다. 담배 끊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니코틴은 어떻게 흡연자로 하여금 강한 의존성을 가지게 할까? 담배 피우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흡연자가 들이키는 담배 연기 속 니코틴은 입과 코 안을 지나서 폐로 들어간다. 폐에서 니코틴은 모세혈관 속으로 흡수되어 폐정맥을 따라 심장으로 들어간다. 니코틴은 심장 박동에 의해 대동맥으로 나와 흡연자의 뇌로 향하는 혈류를 따라 선조체에 이른다.

선조체에서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는 흡연과 관계없이 항상 일정하게 분비된다. 그러나 흡연을 통해 선조체로 들어온 니코틴은 도파민 뉴런의 말단에 있는 니코틴성 아세틸콜린 수용체(니코틴 수용체)와 결합하여 도파민의 분비를 평상시보다 크게 증가시킨다. 이로 인해 도파민에 의해 유지되는 정서의 균형은 무너진다. 즉 흡연자의 안도감은 크게 증가한다. 마치 폭우로 인해 강이 넘치는 홍수의 피해처럼 이해하면 되겠다.

니코틴과 화학 구조가 유사한 물질도 니코틴 수용체와 결합하면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이 원리를 응용한 것이 금연보조제이다. 중독자는 금연보조제를 이용하면 니코틴 없이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켜 흡연을 할 때와 같은 유포리아를 느낄 수 있다. 금연보조제는 말 그대로 중독자에게 금연을 도와줄 뿐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선조체의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 뉴런은 니코틴과 결합하는 서로 다른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니코틴은 도파민뿐만 아니라 글루타메이트의 분비도 증가시킨다. 중독의 형성과 관련하여 글루타메이트는 도파민의 절친이다. 니코틴에 의해 증가한 도파민은 기저핵 회로(basal ganglia circuitry)를 통해 글루타메이트의 분비를 증가시킨다(그림). 이들의 증가로 중독자는 흡연에 의한 보상감과 함께 흡연을 갈망하게 된다. 이것이 담배가 흡연자에게 의존성을 갖게 하는 니코틴의 작용 원리이다.

중독자는 흡연에 의해 변화되는 정서를 뇌 속에 장기 기억의 형태로 저장한다. 이 기억은 중독자로 하여금 흡연을 하는 모습을 보거나, 일상에서 중독자 자신의 흡연과 관련된 상황(이것을 큐cue라고 한다)을 마주하면 흡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중독자의 흡연에 대한 기억은 평생 동안 지속될 수 있어 중독자는 큐를 받으면 언제든지 다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나 흡연 욕구를 일으키는 술과 음식 등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에 의해 수용체가 활성화되면서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의 분비가 증가한다고 했다. 그러나 니코틴은 대사로 인해 이들 물질의 분비는 점차 감소하고 이와 동시에 니코틴에 대한 내성은 증가한다. 내성의 증가로 중독자의 유포리아는 작아지고 디스포리아는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의존성이 커지는 또 다른 이유는 계속되는 흡연으로 인해 니코틴 수용체의 민감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니코틴 수용체의 민감도가 감소하면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의 분비가 감소하여 중독자의 유포리아는 당연히 감소한다. 결국 중독자는 수용체의 민감도의 감소와 니코틴 대사로 인해 증가한 내성 때문에 다시 담배를 피워 유포리아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제 중독자가 유포리아를 기대하면서 흡연을 하는 과정을 알아보자. 중독자는 사무실 책상 위에 있는 여러 물건 중에서 담배를 가장 먼저 바라볼 것이다. 담배를 보면서 중독자는 흡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이 정보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을 통해 유포리아를 기대하거나 디스포리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흡연을 생각할 것이다. 그의 선조체는 흡연을 통해 학습한 보상감을 기대하고, 후대상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은 흡연에 대하여 집중할 것이다. 대뇌의 반응피질(motor cortex)은 중독자가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팔 근육의 이완과 수축을 통해 책상 위에 있는 담배를 집어 흡연을 수 있게 명령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 그러나 그의 보상감은 그 날 처음으로 담배를 피울 때보다 훨씬 작다. 중독자는 다시 담배를 피우지만 유포리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계속 담배를 피우는 중독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담배 중독의 결과는 무엇일까? 각 나라에서 판매하는 궐련담배는 표준담배(Kentucky reference cigarette)의 조성을 바탕으로 제조하여 판매한다. 궐련담배의 성분을 분석해 보면 한 개비 당 0.1~2.0 mg의 니코틴이 포함되어 있다. 나머지는 확실한 발암물질(제 1군 발암물질)에 해당하는 벤젠(휘발유 성분), 비닐클로라이드(PVC원료), 비소(사약성분), 니켈 화합물(중금속), 크롬(중금속), 카드뮴(중금속), 폴로늄-210(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60여 종 이상의 발암물질과 독성을 가진 4,000여 종의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니코틴의 의존성으로 인해 흡연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암물질을 흡입하는 행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니코틴 의존성으로 인한 담배 중독은 생명의 희생을 요구한다. 담배 소비량이 증가하면 폐암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담배를 피워 생기는 암은 담배 연기가 지나가는 흡연자의 입안, 인두, 후두, 폐와 같은 호흡기계뿐만 아니라 간, 위, 방광에서도 발생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 니코틴의 강한 의존성은 중독자에게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지만,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도 중추신경계, 심혈관계, 호흡기계, 근육계, 관절, 소화기계, 내분비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성인 흡연율을 보면 2000년대를 기점으로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40% 전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한해에 약 5만8000명이며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 비용은 약 5조6000억 원에 이른다. 청소년이 매일 담배를 피우는 평균 나이도 2010년대에 들어서는 13세가 되었다. 또한 청소년의 흡연율은 중학교 2학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간접흡연에 노출된 국민들까지 고려하면 담배가 국민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제정하여 세계적으로 담배의 수요를 줄이기 위한 각종 규제와 함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3년 협약에 서명한 후 담배 규제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담배제품 성분에 관한 규제, 담배 연기의 노출로부터 보호, 담배 광고, 판촉, 및 후원에 대한 규제는 세계 평균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법은 담배 소매상의 보호, 흡연권과 행복추구권 등의 이유로 국회 본회의 통과가 오랫동안 지연되었다가 2016년 12월 23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특히 담배제품 성분에 관한 규제에 대한 법안인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안’과 ‘담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아직도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조속한 본회의 통과가 필요하다.

담배는 니코틴의 의존성으로 인해 흡연자가 지속적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그 폐해로 암을 일으키는 마약이다. 따라서 담배 중독은 중대한 질환이다. 담배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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