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인(cocaine)은 상록 관목인 코카나무(Erythroxylon coca) 잎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 유도체이다. 코카나무는 콜롬비아에서 페루, 볼리비아까지 이어진 안데스 산맥의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이 지역의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고된 노동으로부터 오는 고통과 배고픔을 잊기 위해 코카 잎을 씹었다. 그 역사가 한 5000년 정도 된다.
1859년 독일의 화학자 니만(Albert Niemann)은 코카 잎으로부터 코카인을 순수 분리하였다. 1898년 독일의 화학자 빌슈테터(Richard Willstätter)에 의해 화학 구조가 규명되었고 1902년 인공적으로 합성되었다.
코카 잎은 약 0.6~1.8%의 코카인을 함유하고 있다. 코카 잎을 유기용매와 섞어 으깬 후 나오는 용액을 걸러서 만든 것이 코카 페이스트(coca paste)이다. 약 80%의 코카인을 포함하고 있다. 코카인 염산(코카인)은 페이스트 안에 들어있는 알칼로이드를 염산 염(HCl salt)의 형태로 바꾸어 분말로 만든 것이다. 1886년 미국 조지아 주의 약사 펨버턴(John Pemberton)은 코카인과 카페인을 섞어 만든 코카콜라를 만들었다. 코카인 남용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물론 현대 코카콜라에는 코카인 성분을 들어있지 않지만.
코카인은 물에 잘 녹아 중독자들은 정맥으로 주사하여 사용하거나 와인에 타서 마시기도 한다(코카인이 들어간 와인을 뱅 마리아니, Vin Mariani라고 한다). 중독자들은 정맥 주사로 인한 피부의 괴사나 에이즈와 같은 감염의 두려움 때문에 분말의 형태 그대로 코로 흡입하기도 한다. 코카인은 열을 가해도 증기를 만들 수 없다.
프리베이스(freebase)는 흡연을 원하는 중독자들이 열을 가해 나오는 증기를 마시기 위해 만든 코카인이다. 프리베이스는 코카인을 물에 녹여 암모니아 같은 알칼리성 용액을 첨가한 후 유기 용매로 추출한 것이다. 프리베이스를 추출할 때 사용하는 에테르는 열을 가하면 폭발성이 있어서 제조 과정이나 흡연을 할 때 매우 위험하다.
1981년 크랙(crack) 코카인이 만들어졌다. 제조 과정이나 흡연을 할 때 폭발할 소지를 없앤 것이다. 프리베이스보다 진화된 형태라고 하면 요즈음 말로 웃프다. 크랙은 코카인과 베이킹 소다를 물과 함께 섞은 후 열을 가한 다음에 냉각시켜 만든 덩어리이다. 크랙이라는 말은 열을 가할 때 나는 소리가 크랙클(crackle)과 같이 들려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중독자들은 한 번에 피울 정도의 작은 덩어리를 유리관에 넣고 가열하여 나오는 증기를 마신다. 코카인 1g은 약 6회 분량의 크랙을 만들 수 있어 값이 크랙이 코카인보다 훨씬 싸고 효과도 크다. 그러나 중독자는 뇌혈관 손상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뇌 안에 있는 혈관은 글리아의 세포막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혈류를 따라 뇌로 들어오는 병원균이나 약물을 차단하여 뉴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구조를 뇌혈관장벽(blood brain barrier)이라고 한다. 코카인은 지용성 물질로서 뇌혈관장벽을 쉽게 통과한다.
중독자는 코카인을 정맥으로 주사하여 많은 양의 코카인이 뇌에 빨리 도달하게 한다. 정맥 주사는 약효가 빠르고 강력하게 나타내지만 지속되는 시간은 짧다. 중독성이 강해서 주로 강박성 중독자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크랙 코카인의 증기도 폐를 통해 뇌로 대단히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에 중독자들은 주사를 하지 않고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크랙의 사용을 선호한다.
혈류로 들어온 코카인은 빨리 대사되어 제거된다. 반감기는 대체로 0.5~1.5 시간이다. 이 때문에 한 번의 정맥 주사나 흡연으로 코카인의 효과는 약 30분 동안 지속된다. 중독자가 코카인을 술과 함께 하면 그 효과는 더 커진다. 이들을 함께 사용했을 때 대사가 되는 물질(코카에틸렌, cocaethylene)의 활성이 코카인과 비슷하고 반감기는 코카인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코카인은 중뇌의 복(腹)측피개(ventral tegmental area)에서 복측선조체(nucleus accumbens)로 연결되는 중변연계(mesolimbic), 전두엽으로 연결되는 중피질계(mesocortical) 그리고 흑질(substantia nigra)에서 배(背)측선조체(caudate and putamen)로 연결되는 흑질선조체(nigrostriatal) 도파민 경로에 주로 작용한다. 선조체와 전두엽은 중독자가 코카인뿐만 아니라 다른 약물에 의해서도 보상감을 느끼는 곳이다.
사람의 뇌는 신경전달물질들의 분비를 통해서 기능을 나타낸다. 정서는 주로 도파민의 전달을 통해 유지된다. 도파민이 정서의 유지에 대한 뇌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파민은 뇌에서 늘 일정하게 분비되어 도파민 수용체에 전달된다. 수용체는 도파민의 전달을 받는 뉴런에 있다. 분비된 도파민은 수용체와 잠시 결합한 후 떨어져 도파민 뉴런의 통로(dopamine transporter)를 통해 되돌아간다. 이것이 도파민에 의해 정서가 유지되는 방식이다.
코카인은 도파민 뉴런의 통로를 막는다. 되돌아갈 길이 없는 도파민은 도파민과 가바 뉴런 이 시냅스를 형성하는 틈(synaptic cleft)에 축적된다. 도파민은 주로 D1 타입의 도파민 수용체를 과도하게 자극한다. 코카인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도파민 수용체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가바 뉴런의 활성은 커진다(그림).
코카인의 신경약물학적 작용을 흑질선조체 도파민 경로에서 일아 보자. 코카인은 이 경로와 연결된 기저핵 회로(basal ganglia circuitry)를 통해서 도파민의 신경전달을 강화한다. 도파민에 의해 가바 뉴런으로 전달된 코카인의 신호는 인산화효소들의 작용에 의해 유전자의 발현을 일으킨다. 유전자의 발현이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이다.
코카인의 메시지가 중독자의 뇌 안에서 단백질의 합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들 단백질은 코카인 중독자가 경험한 모든 기억을 저장한다. 단백질이 기억의 창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중독자는 코카인과 관련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언제든지 그 기억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산화효소들은 NMDA 글루타메이트 수용체를 열어서 Ca2+의 유입을 일으킨다. 그 결과 가바 뉴런의 전기적인 값은 평상시(약 –60 mV)보다 높게 되어 신경 신호가 만들어진다. 코카인의 메시지는 뉴런 안에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될 뿐만 아니라 신경신호로 만들어져서 기저핵 회로로 전달되는 것이다. 마치 육상경기에서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선조체의 가바 뉴런에서 만들어진 신경신호는 이 뉴런의 말단이 있는 담창구(globus pallidas)로 흘러가서 가바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가바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이다. 담창구에서 가바의 분비가 증가하면 시상(thalamus)에서 글루타메이트의 분비는 증가한다. 담창구에서 시상과 연결된 가바 뉴런의 활성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시상의 글루타메이트 뉴런은 대뇌 피질로 연결된다. 글루타메이트는 흥분성 전달물질이기 때문에 시상에서 증가한 글루타메이트는 대뇌 피질(cortex)에 있는 뉴런의 활성을 강화한다. 이 뉴런의 활성으로 선조체의 글루타메이트 분비는 크게 증가한다.
대뇌의 피질은 인체가 외부로부터 받은 모든 자극을 통합적으로 판단하여 적절한 반응을 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곳이다. 그 중에서 반응 피질(motor cortex)은 척수에 있는 체성신경, 내장신경과 연결되어 인체의 움직임이나 내장의 기능을 조절한다. 코카인은 기저핵 회로를 통해서 중독자의 보행과 내장의 기능을 크게 변화시키는 것이다(그림).
흑질선조체 도파민 경로와 마찬가지로 코카인의 작용은 중변연계와 중피질계의 도파민 경로에서도 일어나 중독자의 정서를 왜곡시킨다.
코카인에 의해 선조체와 전두엽에서 증가한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는 중독자에게 심각한 정신행동(psychomotor behavior)과 생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중독자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말이 많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또한 코카인은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물이기 때문에 중독자가 다량의 코카인을 사용할 경우 심장 기능이 정지되어 사망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중독자는 수면 장애, 식욕 부진, 성적 충동, 적대감, 불안과 공포감, 환각을 나타내거나 사실을 과장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이 증상들은 중독의 정도와 코카인의 용량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코카인에 의해 도파민의 순환이 장기적으로 방해를 받으면 도파민 뉴런은 위축된다. 만성 코카인 중독자의 경우 도파민 뉴런의 약화로 기저핵 회로의 작동이 잘 되지 않으면 파킨슨병과 유사한 운동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코카인이 중독자의 정신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앞에서 살펴본 도파민 신경전달의 왜곡만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시냅스로 분비된 도파민이 돌아가는 통로만 차단하는 약물은 코카인과 같은 정신행동 효과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코카인 중독은 구조적인 유사성으로 인해 코카인이 작용할 수 있는 카테콜아민, 세로토닌 뉴런과 같은 신경전달의 왜곡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코카인은 마리화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불법으로 남용되는 마약이다. 코카인 사용이 가장 많은 지역은 북미이다. 남미의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에서 생산된 코카인은 주로 북미지역과 유럽지역으로 밀수되어 소비된다. 우리나라는 1988년 올림픽 관광객으로부터 소량의 코카인을 적발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 이후 밀수입한 코카인의 압수량은 크게 증가하였고 2019년에는 100kg이 넘었다.
코카인은 약물을 다시 사용하고자하는 욕구와 행동을 증가시키는 강화 약물(drug of reinforcement)이다. 코카인에 의해 과도하게 증가한 신경전달물질들은 정서와 관련된 뇌의 기능을 왜곡시켜 사용자를 중독에 이르게 한다. 코카인 중독은 사용자에게 회복이 불가능한 정신운동 장애와 뇌혈관 손상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코카인에 중독된 실험쥐에게 약물을 제한 없이 허용하면 그 쥐는 생명이 끊어질 때까지 코카인을 사용한다. 코카인에 중독된 사람들이 약물에 탐닉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코카인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중독자의 뇌 속에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는 코카인의 경험이 언제든지 재발의 욕구와 갈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코카인 중독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예방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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