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opium poppy, Papaver somniferum) 꽃은 그 아름다움이 당나라 현종의 황후 양귀비에 비길 정도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양귀비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 지역이다. 오늘날에는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자생하지만 재배할 수 없다. 공원이나 하천 변에서 자라는 화려한 양귀비는 원산지가 유럽인 귀화식물로 아편 성분이 없는 개양귀비(Papaver rhoeas)이다. 핏빛의 개양귀비는 유럽과 영연방 국가에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이 되었다.
아편이란 말은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던 말 ‘오피움(opium)'을 중국어 발음대로 '아편(阿片)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한자어의 뜻은 의미가 없다. 아편이 질병의 치료나 기호품으로 사용된 역사는 몇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500년에도 이집트인들은 아편을 제조하였고 아편의 의학적인 가치를 알고 있었다. 2세기 그리스의 의사 갈렌(Galen, Aelius Galenus)은 아편을 두통, 천식, 감기, 대장염 등의 치료에 사용하였다. 근대 유럽에서 아편은 ‘기적의 치료제’로 불리면서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남용되었다. 아라비아, 터키, 이란과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알코올 대신에 아편의 사용이 허용되어 아편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680년 영국의 의사 시드남(Thomas Sydenham)은 의료용으로 아편 드링크 ‘로더넘(laudanum)’을 개발하였다. 당시 로더넘은 와인에 넣어 마시기도 하였고, 치통, 근육통, 알코올 중독 등 광범위한 질병의 치료에 사용되었다. 그 결과 유럽은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아편 중독자가 급증했다. 20세기에 들어 미국에서는 Sears, Roebuck and Co.에서 아편이 포함된 다양한 상품들을 우편으로 매우 편리하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여 아편이 남용이 일상화되었다.
생아편(crude opium)은 덜 여문 양귀비의 씨방에 칼집을 내어 흘러내리는 우윳빛 액체(사진)를 건조시킨 암갈색의 덩어리이다. 그 색깔 때문에 ‘블랙 타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편은 생아편에서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을 제거해 분말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1806년 독일의 약학자 제르튀르너(Friedrich Wilhelm Adam Serturner)는 아편으로부터 모르핀(morphine, 꿈의 여신 모르페우스Morpheus를 뜻함)을 분리하였다. 모르핀 외에도 코데인(codeine)과 터바인(thebaine)이 아편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들을 천연 아편 이라고 한다.
모르핀으로부터 헤로인(Heroin)과 하이드로모르핀(hydromorphine)이, 터바인으로부터 에토르핀(etorphine)이 합성되었다. 이 화합물들은 절반이 천연 아편 성분으로 된 합성 아편(semisynthetic narcotics)이다. 이 외는 모두 합성 아편(totally synthetic narcotics)이다.
1874년 영국의 화학자 라이트(Charles Romley Alder Wright)는 다이아세틸모르핀(diacetylmorphine)을 합성했다. 이 화합물은 말 그대로 모르핀에 두 개의 아세틸기가 더해진 모르핀이다. 1898년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Bayer)의 화학자 호프만(Felix Hoffmann)은 이 화합물을 ‘헤로인’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하였다. 아세틸기는 뇌혈관장벽을 쉽게 통과하기 때문에 헤로인은 뇌 속으로 빨리 흡수된다. 뇌 안에서 헤로인의 아세틸기는 분리되어 다시 모르핀이 되기 때문에 헤로인은 모르핀보다 훨씬 강한 효과를 나타낸다(그림).
1955년부터 1975년 사이에 벌어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예상치 못한 것은 마약 중독이었다. 닉슨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당시 연구를 이끌었던 존스홉킨스대학의 스나이더(Solomon Snyder) 교수 연구팀은 1971년 아편 수용체의 발견을 시작으로 1974년에는 사람의 뇌 안에서 아편(endogenous opiates)의 존재를 규명하였다.
맨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 엔케팔린(enkephalin은 뇌라는 뜻)이다. 이후 많은 펩타이드들이 밝혀졌는데 이들을 모두 엔돌핀(endophins, 뇌 안의 모르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다이놀핀(dynorphin)이다. 1999년에는 엔도모르핀(endomorphines)의 존재가 밝혀졌다. 엄마 손이 약손이라고 할 때 그 약이 아이의 뇌 안에서 나오는 아편이다.
이들은 아미노산의 수가 100개 미만으로 구성된 펩타이드로 신경전달물질처럼 아편 수용체에 작용한다. 아편 수용체는 억제성 단백질(Gi-protein)과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아편이나 아편 수용체의 촉진제(agonists)는 통증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아편 수용체는 뇌와 척수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뇌 안에서 분비되는 펩타이드나 뇌로 들어온 아편은 매우 다양한 약물의 효과를 나타낸다. 과거 역사를 통해 아편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편은 확실하게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편이 수용체를 통해 특이적으로 작용하여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증의 완화와 함께 나타나는 의존성이다. 다시 말해, 중독자는 아편을 다시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강화 효과)가 매우 강하다. 아편 사용으로 중독자가 늘어나는 이유가 바로 아편의 강화 효과 때문이다.
아편이 주로 작용하는 곳은 중뇌-변연계(mesolimbic) 도파민 회로이다. 도파민은 중뇌의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에서 만들어져서 대뇌의 측좌핵(nucleus accumbens)으로 분비가 된다. 아편도 중추신경흥분제처럼 도파민의 분비를 크게 증가시킨다.
아편은 어떻게 강화 효과를 일으키는가? 헤로인을 예로 들어보자. 두 개의 아세틸기를 가진 헤로인은 쉽게 뇌혈관장벽을 통과하여 측좌핵으로 들어온다. 측좌핵에서 헤로인이 가지고 있는 아세틸기는 떨어져 나가 헤로인이 모르핀으로 전환된다. 아편 수용체는 뮤(mu), 델타(delta), 카파(kappa)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모르핀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아편은 뮤수용체와 결합하여 약물의 효과를 나타낸다.
뮤수용체는 모르핀의 신호를 차단하는 단백질(Gi-protein)로 연결되어 가바의 분비는 억제된다. 측좌핵의 시냅스로 분비된 가바와 결합하는 수용체는 인접한 도파민 뉴런의 세포막에 존재한다. 가바는 억제성 물질이기 때문에 모르핀에 의해 가바의 분비가 감소하면 도파민의 분비는 크게 증가한다(그림).
아편 사용자는 증가한 도파민에 의해 보상감으로 유포리아는 커지게 된다. 유포리아의 정도는 아편의 종류, 양과 사용 방법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편의 금단 증상은 몇 시간 안에 일어난다. 아편에 의해 증가된 도파민이 대사에 의해 감소되기 때문이다.
아편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유포리아, 통증의 완화, 평온함, 졸림, 호흡과 혈압의 저하, 저체온과 같은 증상을 나타낸다, 이와 반대로 만성 중독자는 극심한 통증의 호소, 디스포리아와 우울한 감정, 두려움과 적개심, 혈압의 상승, 설사와 같은 다양한 정서 및 생리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금단 증상이 단순히 하나의 뇌 영역이나 신경계의 변화에 의해 일어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아편이 작용하는 수용체는 뇌와 척수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아편의 강화 효과와 함께 금단 증상은 중독자에게 헤로인의 재발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중독자는 금단 증상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아편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금단 증상이 올 때 마다 아편을 사용한다.
아편을 사용 할수록 중독자가 느끼는 보상감은 이전에 비해 떨어진다. 아편에 대한 내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편은 다른 마약과 달리 교차 내성(cross-tolerence)을 가진다. 예컨대, 중독자가 하나의 아편에 내성이 나타나면 다른 아편의 내성도 증가하여 중독자의 보상감을 줄인다. 아편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성뿐만 아니라 교차 내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중독자의 아편에 대한 의존성은 더욱 커지게 되고 중독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에 아편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舊韓末)로 추정된다. 청나라 사람이 아편을 흡연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남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아편을 ‘당연’이라고 하였고 그 이후로 ‘양귀비’라고 불렀다고 한다.
모르핀도 1890년대 말 호남 지방에 처음으로 유입되었다. 헤로인도 같은 시기에 들어와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아편이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로써 남용되는 과정에서 많은 중독자가 발생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조선총독부는 아편을 전매 작물로 허용하여 중독자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국내 재배지를 확대하면서 많은 아편을 생산하여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대만, 만주 등지로 수출했다. 그 후 광복과 함께 한국 전쟁, 월남 파병을 거치면서 아편 중독자는 증가했고 정부는 1960년대 후반까지 제대로 된 아편 통제 정책을 펴지 못했다.
아편의 강한 중독성으로 아편전쟁이 일어났고 패전국인 청 왕조는 영국에게 홍콩을 100년 동안 할양해야만 했다. 당시에 성행했던 아편방에서 흡연하는 중독자의 모습은 처참하다. 아편 중독의 끝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관세청 자료에 의하면 2020년까지 헤로인의 압수 건수와 양은 보고되지 않았고 2021년 4월에는 4건에 9g이 압수되었다. 다른 마약류에 비해 압수되는 양이 아주 적다. 신종 마약으로 인해 그 수요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다행이다. 아편 중독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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