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는 지방산을 함유하지 않고 5~6개의 탄소로 이루어진 고리 4개가 결합된 지질 화합물이다.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성호르몬,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분비되는 코르티졸, 신장에 작용하여 혈액의 양을 유지시키는 호르몬인 알도스테론이 대표적인 스테로이드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2차 성징으로 남성화 작용과 근육의 발달에 필요한 단백질의 합성, 그리고 뼈 내의 칼슘의 증가와 같은 동화 작용을 촉진한다. 특히 청소년기의 근육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물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테스토스테론은 체중을 빠르게 증가시키고 원하는 체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구 소련이 자국의 운동 선수들에게 스테로이드를 처음으로 사용하였고 이는 다른 나라에도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1950년대 제약회사들은 테스토스테론보다 남성화 작용은 적지만 동화 작용을 촉진하는 스테로이드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스테로이드)를 합성하였다. 이 물질들은 테스토스테론을 함유하고 있거나 화학 구조가 유사하여 지방질이 없는 근육의 양과 근력을 향상시킨다. 근육질의 보디빌더를 연상하면 스테로이드의 효과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1960년대 스테로이드의 사용은 거의 모든 트랙과 필드 경기에서 허용되었고 이는 1970년대 초까지 공식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의 남용이 만연하고 부작용들이 나타나 미국에서는 스케줄3 통제 물질로 지정되었고 많은 국가나 국제 운동 경기에서 금지 약물이 되었다.
보디빌더, 역도와 같이 강도를 필요로 하는 경기에서는 의료용의 약 100배인 고농도의 스테로이드를 사용한다고 한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데는 주기적(cycling)인 방식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사용 주기는 6~12주이고 주기 사이에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약물에 대한 내성과 부작용을 줄이고 경기력 향상을 극대화하면서 금지된 약물이 감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스테로이드를 주기적으로 사용할 때 가끔 피라미딩(pyramiding) 방식을 함께 사용한다. 피라미딩은 스테로이드 투여 초반부에는 사용량을 늘리지만 약물 사용이 최대에 도달한 중간 지점 이후부터는 점진적으로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 방식은 스테로이드 사용을 갑자기 중단했을 때 나타나는 금단 증상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두 가지 이상의 스테로이드를 동시에 투여할 경우는 스태킹(stacking) 이라고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스테로이드 효과가 길게 작용하는 약물은 주사로, 짧게 작용하는 약물은 구강으로 투여하는 방식이다. 사용자들은 스태킹 방식이 스테로이드 효과를 증가시킨다고 믿고 있으나 이 역시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스테로이드는 어떻게 인체에 작용할까? 체내로 들어간 스테로이드는 혈류를 따라서 타깃 세포인 근섬유(근세포의 모양이 섬유처럼 길어서 붙여진 이름)로 이동한다. 스테로이드는 물에 녹지 않는 지용성 물질로 근세포 막을 쉽게 통과하여 주로 핵 내에 존재하는 스테로이드 수용체와 결합한다. 핵 내에서 스테로이드-수용체 복합체는 근육의 양을 늘리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와 작용한다. 스테로이드가 근섬유를 늘리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전달자(메신저)로 작용하는 셈이다.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을 실험 동물에게 투여하면 보상 효과를 나타낸다. 보상 효과는 뇌의 측좌핵에서 분비가 증가한 도파민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스테로이드에 의해 증가한 도파민은 사용자에게 유포리아를 일으키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정서는 디스포리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금단 증상과 내성이 커지면서 스테로이드의 사용에 의존하게 된다. 스테로이드 의존성은 사용자 본인이 생각하는 운동 효과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게 된다.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여성 사용자의 남성화이다. 여성의 경우 체내에 미량의 테스토스테론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소량의 스테로이드를 사용해도 근육의 발달과 남성화 작용(가슴 크기의 감소, 수염이나 목소리 굵기의 변화 등)을 일으킨다. 이 외에도 스테로이드가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에서도 스테로이드 사용자들의 혈액 내 지질 변화는 심각해서 동맥경화증, 고혈압, 심장병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다.
사회적으로 스테로이드 남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행동 부작용이다. 중독자는 주변의 자극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며 불특정한 상대방에 대해 공격적인 분노를 일으킨다. 로이드 분노(roid rage)는 스테로이드 사용이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인 A는 20대 남성으로 온순하고 배려심이 많은 청년이었다. 그는 보디빌더로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후부터 눈에 띄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고 극심한 감정 기복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행인들을 위협하기 위해 치아로 알루미늄 캔을 뜯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벽에 걸린 전화기를 뜯어내는 등 무모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사고 당일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수퍼 주차장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를 뿌리째 뽑아서 던져버렸다. 그의 무모한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무런 이유 없이 타인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다. 흔히 이야기하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셈이다. 그는 살인죄로 투옥되어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은 뒤로 비로소 본래의 정서를 찾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저지른 그날 밤 행동을 알고 난 후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물론 로이드 분노는 스테로이드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스테로이드의 과도한 사용과 폭력적인 행동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스테로이드는 지방질 없는 근육과 근력을 향상시켜 근육질 몸매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개인이나 사회에 긍정적인 면보다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마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 속으로 파고든 스테로이드 남용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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