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타민(Ketamine)은 1962년 Parke, Davis and Company에서 PCP의 사용이 중단되기 이전부터 정신병적 부작용이 적은 마취제로 개발된 것으로써 임상 실험을 거치기 이전의 이름은 CI-581이었다. 케타민은 처방 약물로서 Ketalar 등 여러 상품명을 가진 주사용 액체로 판매된다.
마약으로서 케타민과 유사물질들은 분말의 형태로 밀매된다. 사용자들은 주로 케타민 분말을 코로 흡입하여 사용한다. 케타민의 효과는 투여 후 약 10분 안에 일어나서 1~2 시간동안 지속된다. 사용자가 약물의 효과로부터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하루 이상 걸린다고 한다.
케타민은 대표적인 파티 마약으로서 중독자들 사이에서 K, 스페셜 K(Special K), 캣 발리움(cat Valium)과 같은 은어로 통한다. 이들은 한 번에 흡입할 수 있는 케타민을 라인(line)이나 범퍼(bump)로 만들어 사용한다. 라인은 분말을 여러 줄로 나누는 것이고 범퍼는 새끼손톱이나 차의 키 등으로 사용할 만큼만 덜어낸 것이다. 코카인 중독자들이 코카인을 라인이나 범퍼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독자들은 케타민을 값이 싼 코카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케타민의 효과는 PCP와 유사하지만 약물의 강도는 매우 낮다. 저용량의 케타민과 PCP의 효과는 비슷하다(중독 이야기 8. PCP 참조). 마취가 될 정도의 케타민(1 mg/kg)을 사용한 사람은 눈을 뜨고 의식이 있는 듯 보이지만 주변 환경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케타민도 PCP와 마찬가지로 해리 마취제(associative anesthetics)로 취급된다.
고용량의 케타민을 사용한 사람은 자신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위로 붕 뜨면서 아래에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갖는다. 이 느낌은 마치 죽음에 이를 때 나타나는 환각상태 같은 것이라고 한다. K홀(K-hole)이라고 부르는 이 상태는 LSD의 사용으로 인한 공포스러운 경험(bad LSD trip)과 비슷하다고 한다.
케타민 사용자는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잃고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나 사물, 심지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는 인식의 변화를 체험한다. 또한 케타민 사용자들은 현란한 색과 빛이 인체로부터 뿜어 나오는 느낌, 사람이 고무, 플라스틱, 나무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느낌, 그리고 사람의 모습이나 크기가 왜곡되고 영적으로 초능력자가 나타나는 환각을 경험했다고 한다.
케타민이 사람의 뇌에서 작용하는 곳은 신경세포(뉴런)의 막에 존재하는 NMDA 수용체이다. 이 수용체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결합하는 곳 외에도 케타민이나 PCP와 결합하는 곳을 가지고 있다. 대뇌의 피질과 해마에서 많이 발현되는 이 수용체에 글루타메이트가 결합하면 수용체의 통로(pore)가 열리고 칼슘(Ca2+)과 소디움(Na+) 이온의 유입이 일어난다. 이온들의 이동은 뉴런의 안쪽과 바깥쪽 농도의 차이에 의해 일어난다. 글루타메이트는 뉴런의 막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이온들로 하여금 글루타메이트가 가진 정보를 이 뉴런과 시냅스로 연결된 다른 뉴런으로 전달한다. Ca2+과 Na+ 이 글루타메이트의 메신저인 셈이다. 대뇌 피질과 해마에서 글루타메이트가 전달하는 정보는 주로 정서, 학습과 기억에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비강 흡입에 의해 뇌 안으로 들어온 케타민 분자는 뉴런의 세포막을 통과하여 NMDA 수용체의 내부로 들어간다. 케타민은 수용체의 통로를 막아서 글루타메이트가 전달하는 정서, 학습과 기억에 대한 정보의 전달을 왜곡시키는 것이다(그림). 그 결과 케타민 사용자는 K홀과 같은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PCP와 달리 케타민은 춤과 시끄러운 음악이 있는 파티(rave party)나 클럽에서 인기 있는 마약이다. 스페셜 K가 파티나 클럽 마약으로서 주목을 받은 것은 최근이다. 하지만 케타민은 오래 전부터 LSD와 같이 사람의 생각을 세뇌시킬 수 있다고 믿는 지식인들이 선호했던 약물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1978년 케타민에 의한 유체 분리와 같은 경험을 저술한 책‘밝은 세상으로의 여행(Journeys Into The Bright World)’의 저자이자 점성가인 미국의 무어(Marcia Moore)와‘감각의 분리’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의사 릴리(John Cunningham Lilly)이다.
케타민에 대한 이들의 극단적인 집착과 연구 못지않게 중독자들의 경험도 케타민 중독을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영국의 정신과학자 얀센(Karl Jansen)은 그의 저서‘케타민: 꿈과 현실(Ketamine: Dreams and Realities)’에서 케타민의 남용이 약물의 사용량을 증가시키고 강박적 사용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케타민 의존성은 대뇌 전두엽에서 증가한 도파민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타민을 취하고자하는 강한 욕구는 결국 내성을 일으켜 중독자에게 더 많은 약물의 사용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중독자의 정서는 디스포리아가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환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당시 케타민에 의존적이었던 지식인들조차 “케타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헤로인을 극복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했을 정도니 그 의존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해 볼만하다.
케타민은 우리나라에서 마약류로 분류된 향정신성의약품으로써 동물용 마취제로 쓰이고 있다. 마약으로서 케타민은 진정 효과 때문에 흔히 말하는 다운필(힘이 없어 늘어지다, 의 ‘feel down’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 같음) 계열의 마약으로 취급된다.
케타민은 주로 서울의 강남 일대 클럽에서 스페셜 K로 불리며 남용되는 마약이다. 중독자들은 진정효과를 가진 케타민을 흥분제인 엑스터시(MDMA)와 함께 사용하면서 기분이 늘어진 상태와 각성된 상태가 동시에 지속되는 강한 환각을 경험한다. 미국의 클럽에서 사용하던 방식이 우리나라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케타민은 사용자가 약물에 취해 기분이 몽롱해지거나 잠이 오는 점을 이용하여 성폭행(date rape)과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에 악용되는 마약(魔藥, devil’s medicine)이다. 케타민을 포함한 환각제 남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주의가 매우 필요해 보인다.
PCP 뿐만 아니라 케타민의 부작용은 조현병의 여러 증상과 유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영장류를 이용한 조현병의 신경화학적 현상을 규명하는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이열치열’ 이라고 할까, 환각을 극복하는 연구에서 이들 환각제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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