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사이클리딘(phencyclidine, PCP)은 1957년 제약회사인 Parke, Davis and Company에서 마취제로 사용하기 위해 상표명 세르닐(Sernyl)로 개발한 약물이다. 임상 실험 결과 이 약물은 정신병적 증상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켜 1965년 의료용으로 사용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PCP는 1967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에서 평화의 약(PeaCe Pill)이란 이름의 노상마약(street drug)으로 등장했다. 그 후 1970년대 중반까지 PCP는 천사의 먼지(angel dust), 돼지(hog)와 같은 새로운 이름으로 사용이 되면서 남용이 확산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이 약물의 인기는 마리화나, 코카인, 헤로인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PCP는 1978년 통제 약물로 지정되었으며, 1년 후 이 약물의 제조는 법적으로 중단되었다.
정제된 PCP는 흰색 결정으로 된 분말로서 물이나 알코올에 쉽게 녹고 특유의 쓴맛을 낸다. PCP는 다양한 첨가제와 섞여 색상이 다양하고, 알약, 캡슐, 액상 등의 형태로 밀조되어 유통이 된다. PCP를 사용하는 방법 또한 구강, 비강 흡입, 정맥이나 근육 주사와 같이 다양하다. 중독자들이 선호하는 방식 중의 하나는 알코올과 유사한 에테르에 녹인 PCP를 박하(민트), 파슬리, 오레가노와 같은 허브나 마리화나에 뿌려서 흡연하는 것이다.
중독자가 사용하는 PCP의 양은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5~10mg 정도이다. 10mg은 사용자의 의식 상태를 혼미(stupor)하게 만든다. 혼미한 상태는 졸음보다 깨우기가 어렵고 반혼수(semicoma) 상태보다는 낮은 무의식 단계를 말한다. 사용자가 PCP를 구강으로 투여할 경우 30~60분 이내에, 흡연으로는 몇 분 이내에 약효가 나타난다. 약효는 4~6시간 동안 지속되고 하루 정도 지나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저용량의 PCP를 사용한 경우, 사용자는 다른 향정신성 약물에 의한 증상과 유사한 해방감과 마취 효과를 나타내지만, 고용량에서는 사지가 마비되고,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 꿈을 꾸는 듯한 느낌, 그리고 자신이 주변과 분리되어 멀어지는 것과 같은 기묘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환각을 경험한다. 고용량의 PCP 사용자는 기억상실, 우울증과 같은 정서 장애뿐만 아니라 집중력과 논리적인 생각의 결핍, 말이 끊기는 것과 같은 인지장애를 나타낸다. PCP 사용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절박하고 속수무책인 상황으로 판단하여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feeling of impending doom), 심각한 걱정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이 주변으로부터 피해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망상장애(paranoia)와 조현병(schizophrenia)과 구분이 잘 되지 않은 정신병(psychoses)을 나타내기도 한다.
리서스 원숭이에게 PCP의 의존성을 학습시킨 후 약물 사용을 허용하면 원숭이는 PCP를 탐닉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약물을 취하고자하는 갈망의 정도는 코카인, 암페타민, 아편, 알코올에 못지않다. PCP를 취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는 뇌의 전두엽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의 증가로 인한 신경전달이 강화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도파민 신경전달의 강화만이 PCP에 대한 갈망을 설명할 수는 있는 것만은 아니다. PCP를 흰쥐의 측좌핵(nucleus accumbens)으로 투여하면 실험쥐의 약물 의존성은 글루타메이트, 아세틸콜린 등 여러 신경전달 시스템에 의해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PCP는 심리적, 육체적 의존성, 내성, 그리고 중독자 자신이 사회로부터 괴리되는 느낌과 같이 중독성 약물의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PCP 사용을 중단한 사람들은 약물을 취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진다. 이와 함께 중독자는 두통, 졸림, 우울함, 발한과 같은 일반적인 금단증상을 경험한다. PCP는 뇌의 지방 조직에 축적되면 간에서 분해가 매우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에 중독자는 약물 사용을 중단한 이후에도 약효가 지속되어 환각이 재현되는 플래쉬백 현상으로 고통을 받는다.
뇌에 도달한 PCP가 결합하는 물질은 NMDA(N-methyl-D-aspartate) 수용체이다. 이 수용체는 뉴런의 세포막에서 칼슘(Ca2+)과 소디움(Na+) 이온이 드나드는 통로로서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와 결합하는 부위를 가지고 있다. NMDA 수용체는 대뇌의 피질과 해마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글루타메이트가 가진 정보를 뉴런의 내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분비된 글루타메이트가 이 수용체와 결합하면 통로가 열려 Ca2+과 Na+ 이온이 뉴런 안으로 들어오면서 정보의 전달이 시작된다. PCP는 NMDA 수용체가 전달하는 정서, 학습과 기억에 대한 정보의 전달을 방해하여 인지장애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PCP의 강한 의존성은 중독자로 하여금 인지장애 이상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PCP도 다른 마약들처럼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중독자를 찾아온다. 이 말은 중독자들이 환각상태에서 두 가지 트립(good or bad trip)을 경험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중독 이야기 7, 환각제 참조). PCP 중독자의 심각한 환각 경험(bad trip) 중의 하나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이 폭력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2002년 Big Lurch로 알려진 래퍼 싱글톤(Antron Singleton)이 룸메이트를 살해하고 신체의 일부를 훼손한 행위는 PCP에 의한 환각이 얼마나 끔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PCP는 진정효과(sedative or calming effects)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중추신경 억제제인 알코올이나 벤조디아제핀과 같은 진정제와 함께 사용하면 혼수상태에 이르게 되거나 PCP를 과다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PCP에 취해있을(intoxication) 때는 통증을 느낄 수 없고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PCP가 일으키는 환각은 중독자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로 나타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PCP는 살인마약(killer drug)으로 취급된다. 세계적으로 PCP 사용은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통계에 노출되지 않은 PCP의 남용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PCP 뿐만 아니라 PCP와 유사한 물질들도 불법적으로 제조되어 노상마약으로 남용되고 있다.
PCP 중독에 대한 이해와 예방,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재활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이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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