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일본비전화공방 업무협약식. 후지무라 야스유키가 이끄는 일본비전화공방은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서울시도 지난해 2월 서울혁신파크에 '비전화공방 서울'을 개소했다. 출처 : 유튜브(서울시 제공)
E.F.슈마허는 단순소박한 삶을 강조했다. 단순소박한 삶이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터이다. 슈마허는『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불교경제학의 핵심을 단순소박함(simplicity)과 비폭력(non-violence)으로 나타냈다. 단순소박한 삶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삶’이다. 거기에 영성, 건강, 삶의 질, 생태발자국 줄이기, 스트레스 줄이기, 절제 등이 들어가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소박한 영속성(Simple Prosperity: Finding Real Wealth in a Sustainable Lifestyle)』의 저자인 작가 데이비드 원(David Wann)은 ‘소박한 영속(simple prosperity)’을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으로 추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우리가 서로 사귀고 소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둘째, 경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셋째, 왜 우리는 풍요로움을 추구했을 때 비해 지금 더 불행하게 느끼는가?
단순소박한 삶은 오늘날 ‘풍요’에 대한 반대말일 것이다. 단순소박한 삶은 양에 메이지 않고, 전통이나 자연의 지속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흔히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모든 욕망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간디나 슈마허가 지적한 바와 같이 필요한 최소한의 욕구(want)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욕망(desire)을 부추기는 현대 시장경제체제가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 같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행복은 다음과 같은 행복방정식이 보여주듯이 소비에 비례하고 욕망에 반비례한다고 한다.
행복=소비/욕망
이 방정식이 나타내듯이 GDP가 증가해 소비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고도의 기술적인 욕망조작에 의해 욕망이 한없이 부푼다면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은 인간의 행복을 별로 증진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더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일찍이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 “부자들은 그들이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헛되게 낭비되는 물질들을 어마어마하게 비축하고 있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 가는 동안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물질을 모으고 있다. 만약 우리들 각자가 필요한 것만을 지니게 된다면 아무도 결핍으로 인한 곤란을 겪지 않을 것이며 모든 사람이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문명의 진정한 의미는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욕구를 축소하는 것이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욕구의 축소만이 오로지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C. 더글러스 러미스도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2002)에서 물질의 성장보다는 ‘청빈한 삶’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경제성장에 대한 광기는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켰다. 성장주의자들의 논리는 언제나 사회 전체 파이가 커지면 사회적 약자들의 몫도 함께 커진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강자의 파이는 약자의 몫을 착취해 커지지 때문에 경제성장을 추구할수록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천박한 자본주의는 식민주의, 제국주의라는 이름을 거쳐 경제발전론으로 변신했고, 마침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경제성장을 통한 풍요는 허구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물건을 조금씩 줄여가며 최소한의 것만으로도 별 탈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경제발전이란 자급자족사회에서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시켜 노동자와 소비자로 만드는 과정일 뿐이며, 진정한 진보는 물질의 성장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문화의 진보이다. 대항발전(counter development)을 모색하며 시민들과 함께 행동해야 하는데 이것이 급진적이어서 꺼려진다면 선거라는 소극적 정치참여를 통해 가능하다. ‘부자 되세요’가 아니라 ‘다함께 청빈하게 삽시다’가 되어야 한다.”
소박한 삶, 또는 조화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준 좋은 사례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생태주의자인 스콧 니어링(1883~1983)을 들 수 있다. 반자본주의, 친사회주의, 반전, 친평화의 길을 걸은 것으로 유명한 스콧 니어링은 미국의 소수 권력층에 속하는 집안에서 인생을 시작했으나 모든 기득권을 포기했다.
『스콧 니어링 자서전』(2000)에는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알 수 있다. 스콧 니어링은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 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 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계급투쟁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등의 생활철칙을 세워놓고 이를 철저히 지켰다.
스콧 니어링은 그가 취한 존엄한 죽음의 방식으로 일체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학적 배려도 거부하고, 고통을 줄이려는 진통제·마취제의 도움도 물리치며, 물과 음식조차 끊고,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100세에 죽음을 맞았다. 그의 삶은 단순소박한 삶으로 일관했다. 슈마허의 삶도 마지막엔 가톨릭으로 개종해 종교적인 삶을 추구하며, 정원을 가꾸는 일에 충실했다.
이러한 단순소박한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그러한 마음을 먹는 것과 함께 최소한의 소득을 확보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뼈 빠지게 일해도 결국 거대자본의 노예가 되고 마는 현실에서 벗어나, 조금만 일하고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생각해낸 후지무라 야스유키(藤村靖之) 박사의 ‘3만엔 비즈니스’ 개념에서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3만 엔 비즈니스-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2012)를 펴낸 후지무라 박사는 물리학을 전공한 공학박사로 고마츠 열공학연구실장과 간쿄사의 CEO를 역임한 뒤 지금은 ‘비전력공방(非電力工房)’, ‘발명공방’, ‘발명창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대기업 연구소에서 개발자로 잘나가던 그가 천식을 앓던 어린 아들을 위해 친환경 공기청정기를 만들고자 회사를 그만두고 그때부터 환경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제품을 개발해왔다.
일본에서는 후지무라 박사의 뜻을 좇아 4만 여개의 동아리모임을 결성해 ‘3만 엔 비즈니스’ 모델을 창안하거나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한다. 후지무라 박사는 우선 “한 달에 3만 엔만 벌기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한 달에 3만 엔은 적은 돈이지만 3만 엔 비즈니스를 열 가지 해서 월 30만 엔을 벌어보라고 말한다. 대도시라면 몰라도 시골에서는 먹고 살만 할 것이라는 것이다.
후지무라 박사는 기존의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살아남는 삶의 방식 대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삶을 택하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시간 일을 합니다. 수입이 늘어날수록 여유 시간은 줄어들고, 그만큼 지출은 늘어나죠. 지출이 늘면 다시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고요. 결국 수입이 늘수록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행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제 적게 벌지만 자신도, 이웃도 모두 행복해지는 착한 일을 시작하면 어떨까요?”라고 말이다.
후지무라 박사는 또한 『플러그를 뽑으면 지구가 아름답다』(2011년 한국어 번역판 출간)’를 통해 오랜 불황과 후쿠시마원전참사 등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불안과 절망에 빠져 있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그는 2000년을 기점으로 일본에서는 좋은 학교를 나와 도시에서 좋은 직장을 얻고 많은 돈을 벌면서 소비생활을 즐기는 ‘출세경쟁지향’ 젊은이와, 자연과 가까운 시골에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서로 도우면서 돈은 적지만 행복하게 사는 걸 희망하는 ‘평화공생형’ 젊은이의 비율이 역전되었다고 한다.
후지무라의 비전력공방에서 만드는 것은 ‘비전력 왕겨 단열주택’이다. 단열재로는 농가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왕겨를 사용했고, 비전력공방 부지의 흙으로 내부와 외부를 미장했으며, 화학제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삼각형 패널을 조립한 ‘돔하우스’ 구조이기 때문에 지진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견고하다는 것이다. 비전력 왕겨 단열주택은 비전력공방 사람 4명이 4주 걸려 지었는데 재료비는 20만엔이 들었고, 워크숍 형태로 연인원 70명 정도가 파트타임으로 참가해주었기에 4명이 5주간 일한 셈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슈마허가 말한 ‘적정기술’의 사례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도 기존의 생산 소비패턴에서 한번쯤 벗어나 새로운 삶의 패턴을 고민해 볼 때인 것 같다. 특히 인생이모작을 생각하는 베이비부머세대에게 ‘3만 엔 비즈니스’는 ‘단순소박한 삶’을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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