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창조도시 부산 소프트전략 (7)국제영화도시 부산, 추억의 ‘삼일‧보림․삼성극장’을 되살리자

김 해창 승인 2019.02.07 13:09 | 최종 수정 2019.02.07 13:32 의견 0
2006년 11월 문을 닫은 삼일극장. 출처 : 국제신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영화제가 매년 10월 항도 부산에서 열린다. 올해로 24회째가 된다. 부산은 이제 아시아에서도 ‘영화의 도시’로 제법 알려졌다. 이러한 부산 영화의 상징이 ‘영화의 전당’이다.

2011년 9월에 약 1700억 원을 들여 준공한 영화의 전당은 국제공모를 통해 선정된 오스트리아 쿱 힘멜브라우의 설계안으로 ‘뛰어난 조형성과 해체주의 건축미학이 구현된 건축물’로 평가받았다. 영화의 전당은 면적 32,137㎡, 연면적 54,335㎡에 지하1층, 지상 4층의 ‘비프힐’, ‘더블콘’, 지상 9층의 ‘시네마운틴’ 건물 3개로 이루어졌다. 야외극장을 덮는 지붕은 ‘스몰루프’이고, 빅루프와 스몰루프 두 지붕을 합하면 축구장 약 2.5배에 달하는 크기라고 한다. 나름 자부심이 생기는 상징건물이다.

그런데 영화의 전당을 보면서 뭔가 아쉽고 허전한 마음이 든다. 내겐 마치 거석문화와도 같은 느낌이다. 영화의 전당이란 거대 건물 이전에 오늘날 부산국제영화제가 탄생한 배경, 추억의 극장이 부산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고급 아파트의 거실 책장에 값비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나 유명소설 세트나 신간들은 즐비하지만 그 집주인이 젊은 날 읽었음직한 손때 묻은 책 한 권 없는 서재라면 그 집주인의 ‘지성미’를 느낄 수 있을까? 흔히 졸부들의 ‘벽떼기’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최신, 최고의 상영관을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 부산시민의 ‘영화 애호’의 추억이 담긴 옛 영화관 하나 남지 않은 부산에서 과연 ‘영화의 도시 부산’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점에서 부산의 ‘극장 트리오 삼일‧보림․삼성극장’의 추억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들 이들 극장을 되살리는 작업을 부산시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엔 ‘추억 속 범일동 극장 트리오, 삼일·보림·삼성극장’ 이야기가 나온다. 삼일(三一)극장(1944~2006년), 보림(寶林)극장(1955~2007년), 삼성(三星)극장(1959~2011년)은 부산 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이른바 ‘극장 트리오’로 한때 부산에서 잘나가던 극장들이었다. 이들 극장이 60년 가까운 세월을 영화의 바다, 부산을 지켜 왔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중년의 남녀라면 누구나 ‘범일동 극장 트리오’와 관련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삼일 극장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문을 열었다. 삼일극장은 영화 ‘친구’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또한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수용소로 쓰여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품은 공간이기도 하다. 1959년에 개관한 삼성극장은 삼일극장 인근에 있었다. 단층이었던 삼일극장에 비해 삼성극장은 2층 건물에 제법 넓은 관람석을 갖춘 극장이었다. 1955년에 문을 연 보림극장은 원래 남포동에 위치한 보림백화점 내 2층에 자리했었는데 1968년 당시 범일동 조양직물 공장부지를 매입해 현재의 자리에서 새로이 개관했다. 개봉관으로 출발했지만 1970년대 톱스타 나훈아, 남진, 하춘화 등의 쇼 중심 극장으로 변신하면서 한때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범일동 극장 트리오의 전성기는 1960~1970년대 국제고무 공장(1953~1990년), 삼화고무 공장(1934~1992년) 등 신발공장이 부산진구와 동구에 자리 잡으면서 이들 공장 노동자의 문화공간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국제영화도시라고 하는 부산에 이러한 추억의 극장이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니.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삼일극장(1944~2006년), 보림극장(1955~2007년), 삼성극장(1959~2011년)이 모두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창설된 지 10~15년 후에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삼성극장이 철거된 것이 지난 2011년으로 불과 8년 전이다.

‘삼성극장 오늘 철거, 부산 유일 단관극장 삼일·보림극장 이어 도시개발로 추억 속으로’(2011.5.23)라는 제목의 국제신문 기사를 예전에 메모해 놓은 게 있다. 삼성극장이 52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날로 철거된다는 것이었다. 10년 전 범일1동 삼일극장~범6호광장 사이 도로 확장공사 구간에 편입되면서 보상문제가 마무리됐기 때문에 그보다 몇 달 전에 영업을 중단했고 구청에 폐업신고도 했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위세에 밀려 이제 범일동 영화거리 극장은 모두 사라졌다. 한국 영화의 부활탄이자 영화도시 부산의 상징이기도 한 영화 ‘친구’ 촬영무대로 주인공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 혈전을 벌이던 삼일극장은 2006년 철거됐고, 보림극장은 2007년 폐업신고 뒤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TV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 촬영무대로 부산지역에 남아 있던 유일한 단관극장이던 삼성극장마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신문은 2009년 삼성극장에서 이 극장을 추억하는 전시·공연 ‘극장전’을 기획했던 이은호 서울 가나아트센터 공공미술큐레이터의 소감을 붙였다.

“중학교 때 단체로 영화관람했던 추억의 공간이 사라진다니 마음이 짠하다. 도시의 개발로 인해 근대 역사의 현장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https://donggumap.tistory.com/3
2011년 철거된 삼성극장. 출처 : 부산 동구 QR코드 관광지도(https://donggumap.tistory.com/3)

물론 그간의 극장 주인이나 인근 주민의 고통도 이해가 된다. 2001년 착공한 공사가 10년째 끝나지 않아 주변 상권이 죽어 가고, 철거되지 않은 건물이 흉물스럽게 남아 우범지대로 변하는 등 주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25m의 도로를 40m로 확장하기 위해 부산시민의 ‘추억의 극장’을 이렇게 지워버려도 될 것인가? 그것도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영화의 도시 부산’이 말이다. 이에 대해 한 트위터(@flower3045)는 그날의 심정을 이렇게 날렸다.

‘삼성극장 철거는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개발 만능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자랑스럽다!!’.

참 가슴이 아련해진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 바탕에 이런 ‘여공’과 같은 추억의 극장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관광․비즈니스 사업을 선도하는 명실상부한 영화․영상산업의 메카로 영화의 전당이 자리매김하길 바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어릴 적 고이 간직해온 ‘빛바랜 가족사진’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쉽게 달래기 어려울 것 같다.

필자는 영화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1970년대 초반에 경북 영일군(지금의 포항시 남구)에서 아버지가 장기극장이란 시골극장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나는 초중학교 시절 극장집 아들로 ‘시네마천국’의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다. TV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지만 그래도 명절대목엔 시골극장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평소에는 마을 콩쿨대회도 하고 중학교 웅변대회장으로 지역문화센터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큰 것, 새 것도 좋지만 추억이 담긴 오래된 도시 공간 또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이고 전통이다. 돈만 있다면 뭐든지 크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추억을 공감하고 새롭게 해석해내지 못한다면 미래 또한 없다. 창조도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그간의 부산시 행정의 ‘무계획성’과 ‘무비전’에 대해 분통이 터진다.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추억의 극장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부산시민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부산일보 정달식 문화부장은 ‘정달식의 문화 톺아보기 29. 보림극장 철거를 보며’(2018.3.29)라는 칼럼에서 ‘영화 기억 지우는 영화도시 부산’을 꼬집으면서 영화도시 부산 만들기를 위해선 지자체 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24년 국내 최초의 영화사 조선키네마주식회사, 일제 강점기에는 22개의 극장이 있었을 정도로 일찍부터 극장 문화가 꽃을 피운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삼일, 삼성, 보림이 있었기에, 감히 지금 우리는 영화 도시 부산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보림극장의 운명과는 달리, 서울에선 운영난으로 올해 1월 폐관했던 극장이 근래 다시 문을 연 경우도 있다. 바로 정동 세실극장이다. 서울시는 1976년부터 정동을 지켜온 세실극장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보고, 극장을 5년 이상 장기 임차한 뒤 비영리단체에다 운영을 맡겨 재개관하기로 했단다. 시민 세금으로 재개관하게 된 세실극장은 공공 공간으로 개방된다. 옥상을 휴게 공간으로 꾸미고 카페 등 편의시설도 들일 계획이라니 부럽다. 이곳에서 연극 공연도 이루어지고, 워크숍이나 전시 등 다양한 행사도 개최할 거란다. 왜 부산은 못 할까.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보림극장(1978년). 출처 : 마음은 푸른하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8lTB&articleno=13432029&categoryId=2&regdt=20150103002531)
보림극장(1978년). 출처 : 마음은 푸른하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8lTB&articleno=13432029&categoryId=2&regdt=20150103002531)

바로 우리 부산의 역대 시장들이 문화감수성이 있었다면 삼일‧보림‧삼성극장은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고 본다. 가령 지금의 센텀시티 개발과 함께 이들 극장주에게 대토보상을 포함해 반대급부를 주고 이들 극장의 외관을 살리면서 ‘한국영화박물관’ ‘한국성인영화박물관’ ‘한국영화 전용관’으로 충분히 재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민선 7기 오거돈 시장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지난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북한을 방문 중이던 오거돈 부산시장은 영상인사를 통해 앞으로 남북한 영화교류를 적극 추진할 것을 국내외 영화팬들에게 약속했다. 부산의 새로운 도시비전인 ‘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문화가 흐르는 글로벌 품격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도, 예술영화와 고전영화, 대중영화, 독립영화는 물론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 프로그램이 어우러진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영화의 전당을 살려나가겠다면 이제부터라도 추억의 극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이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의 도시 부산에 ‘부산시민의 영화사랑’의 증거인 추억의 극장을 되살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서 부산시와 지역 영화계가 적극 나서 ‘범일동 극장 트리오, 삼일·보림·삼성극장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기획해야 한다. 부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역점사업으로 원도심 부활을 바라는 부산동구청과 협력해 이러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문가 차원에서 복원 방법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이들 극장의 경우 그래서 옛 사진이나 자료 등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다. 이들 극장의 옛 주인 또는 지금의 건물 부지 소유주와도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다. 특히 보림극장의 경우 아직도 외형은 남아 있다. 원형 복원이 어렵다면 이들 범일동 극장 트리오를 범일동 지역에 영화세트장으로라도 재현하는 방식으로라도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이래 부산은 1998년 부산프로모션플랜(PPP), 2001년 부산국제필름커미션·영화산업박람회(BIFCOM)를 만들었고 2006년 이를 확대 통합한 아시안필름마켓(AFM)을 띄우는 등 영화산업 확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 영화산업이 수도권에 90% 이상 몰려 있고, 부산은 3~5%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부산국제영화제의 시너지 효과가 탁월하다 해도 수도권과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창조도시의 발상’ 아닐까. 일본 요코하마가 오늘날 창조도시로 이름을 날리는 것은 재개발과정에서도 ‘아카렌고(붉은벽돌창고)’와 같은 의미 있는 도시역사 공간들을 살려낸 멋진 공무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창조도시는 추억의 공간을 보전하고 이를 재생하고 재해석하는 데 있다.

이제 새로운 국제영화도시 부산 만들기를 위해서는 진정성과 소통 그리고 창조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데서 가까운 일본 규슈의 유후인의 사례를 잠시 살펴보자. 유후인온천으로 잘 알려진 유후인는 마을 전체가 ‘통째로 미술관’인 곳이다. 이곳이 이렇게 생태관광 1번지가 된 것은 1950년대 정부의 댐 건설계획, 1970년대 골프장, 1980년대 리조트건설 계획을 주민들이 온전히 막아낸 덕이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살리면서 유후인이 선택한 것이 1976년에 ‘영화관 없는 마을, 그러나 그곳에 영화가 있다’라는 표어로 펼친 유후인영화제이다. 다음해엔 유후인음악제를 개최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수는 1965년에 연간 7만 명 정도이던 것이 요즘엔 420만 명으로 늘어났고, 연중 1800억 원의 관광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김해창

‘영화관이 없는 마을에서의 영화제’, ‘콘서트홀이 없는 마을에서의 콘서트’를 기획하고 실행해온 것은 유후인온천관광협회이다. 이러한 영화제는 1989년에는 아동영화제로 매년 3월에 이틀간 갖고, 98년부터는 유후인 문화기록영화제를 매년 5월 하순에 이틀간 열면서 다큐멘터리영화만 집중 상영한다. 유후인음악제는 매년 7월에 나흘간 열리는데 자원봉사자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요마네 세이지 유후인온천관광협회 사무국장은 “마을을 통과하는 속도가 느리면 느릴수록 마을에 대한 인상이 더 깊게 남는다”며 “영화제나 음악제의 방식도 지역에서 먼저 대화를 통해 뜻을 모은 뒤 외부 사람들에게 알리는 입소문 방식으로 홍보하며 궁극적으로는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가장 중시한다”고 말했다. 결국 거대한 시설이 아니라 소프트한 마음이 유후인을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영화의 마을로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관 하나 없는 조그만 시골마을조차 세계적인 ‘영화의 마을’로 만들고 있는데 우리 부산은 과거의 멋진 ‘추억의 극장’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추억의 극장 되살리기와 함께 필요한 게 또 있다. 부산이 진정 세계적인 영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제 영화와 관련되는 역사적인 장소에 대한 보전과 관리가 절실한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1924년 중구 대청동에 있었던 국내 최초의 영화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 대한 스토리도 좀 더 발굴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영화도시 부산에는 영화촬영지도 많다. 대략 봐도 이렇다. 변호인(청사포 철길, 영도 흰여울마을, 보수동 책방골목), 범죄와의 전쟁(동구 초량동 정란각, 지금은 ‘문화공감 수정),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흰여울마을), 군도, 협녀(기장군 아홉산숲), 아저씨, 마더, 하류인생(동구 좌천동 매축지마을), 국제시장(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바람(보수동 책방골목), 친절한 금자씨(주례동 주례여고 앞 골목, 중구메리놀병원, 부산진역 뒤쪽 굴다리), 잠복근무(영도 대성보세장치장, STX조선소 내부), 달마야 서울가자(중구 광복로, 광복동 대각사), 슈퍼스타 감사용(감천동 YK스틸, 감천고개, 동구 좌천동 동아제분 앞),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중구 광복동, 중앙동 인쇄골목), 하류인생(범일동 삼일극장, 중앙동 인쇄골목), 홍반장(기장군 임랑, 기장군 임랑철길), 올드보이(장전지하철역 아래, 초량동 상해거리),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영도대교, 자갈치 시장, 영도 흰여울마을), 재밌는 영화(중앙동 40계단, 수정산 고가도로), 엽기적인 그녀(해운대 달맞이 나팔꽃, 금정산성, 을숙도 갈대밭), 친구(동구 범일동, 영도대교, 자갈치시장, 기장군 대변항, 부산고등학교, 초량동 산복도로) 등등. 이러한 영화촬영 장소에 대한 보전 관리 및 홍보가 필요하다.

외형적인 홍보나 성장도 좋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부산시민과 관광객들이 ‘부산’을 즐길 수 있는 ‘영화도시 분위기 만들기’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로케이션을 연결하는 ‘부산영화촬영지 지도’ 만들기, 이동영화관을 통한 ‘산복도로영화제’ 개최, 부산지역 촬영지에서 영화의 주인공이나 조연이 돼 나만의 영화를 찍어보는 ‘나도 스타’ 프로젝트, 시민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연기의 맛보기를 보여주는 ‘2박3일 영화배우캠프’ 같은 것을 통해 부산 시민이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영화도시 부산의 황홀경 프로젝트’ 같은 소프트전략이 필요하다.

<경성대 교수·환경경제학자, 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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