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지금 당장 인구증가와 산업생산증가를 멈추기 위한 어떤 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21세기 초에 파멸을 면할 수 없다’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경고를 했다. 20년 뒤인 1992년 브라질 리우회담이 열리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이 선언됐고 또 20년 뒤인 2012년 ‘리우+20 정상회의’에서 ‘녹색경제(Green Economy)’가 의제로 채택됐다.
최종성명으로 나온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지구에 대한 위협요인으로 사막화, 어류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불법벌목, 생물종 멸종 위기, 지구온난화 등을 명시하고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자원의 효율성 제고와 더불어 사회적 통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경제모델인 ‘녹색경제로의 이행’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2019년 11월 15일 기상청, 국회기후변화포럼이 공동개최한 ‘IPCC 6차보고서 전망, 기후위기와 사회적 대응방안’이란 주제토론에서는 21세기 말(2081~2100년)에는 전 지구 평균기온이 현재(1995~2014년)보다 1.9~5.2℃도 상승하고 강수량은 5~1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연합뉴스, 2019.11.15).
2019년 9월 23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 출신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세계 각국 정상과 정부 대표, 산업계 및 시민사회 지도자들 앞에서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는 데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당장 기후대응에 나서라고 분노의 연설로 기성세대를 질타했다(경향신문, 2019.9.26).
전 세계는 지속가능한 발전, 녹색경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GDP(국내총생산)이라는 양적 지표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GDP마저도 지금은 전 세계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벽두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전 세계가 위기에 놓여 있다. 코로나19는 기후변화와 바로 연결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08년 세계 보건의 날 주제로 ‘기후변화’를 내세우며 기후변화가 미치는 악영향으로 식량위기, 기상이변의 증가, 잦은 폭염, 물 부족 및 오염 등과 함께 매개체 질병의 증가로 인한 건강위협을 강조한 바 있다. 세계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수준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지금, 감염병이나 기후위기로 인한 경제침체를 뚫고 나가는 성장동력으로 전 세계가 외치는 것이 ‘그린뉴딜’ ‘녹색경제’인데 그 핵심은 식량자급과 에너지자립이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와 우리나라의 식량수급 상황은 절박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4, 5월에 식량 공급망의 붕괴가 예상된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식량위기의 도래를 지적했다. 인도·태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인 베트남이 3월 24일부터 쌀 수출을 멈췄고, 러시아도 3월 20일부터 열흘 동안 모든 종류의 곡물 수출을 일시적으로 제한했다. 컨설팅업체인 피치 솔루션스는 식량가격 급등에 가장 크게 노출될 나라로 한국, 중국, 일본과 중동 등을 콕 집었다(중앙일보, 2020년 4월 2일). 국내 언론은 최문순 강원도 지사를 비롯한 광역지자체 단체장들이 ‘지역농산물 헐값에라도 팔아주기’ 캠페인을 벌여 ‘완판’했다는 소식을 미담처럼 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계화에 힘입어 수입하던 먹거리가 어느 순간 끊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부족한 국내 농촌일손을 메꾸는 데 도움을 줬던 외국인 계절노동자들도 코로나19로 입국이 제한돼 농사철을 앞둔 농촌은 인력난으로 ‘초비상’이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길밖에 없다. 이제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농촌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할 때이다. 식량대란 위기는 우리가 그간 식량주권을 소홀히 해온 결과이다. 2018년 말 현재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231만5000명으로 총인구의 4.5%에 불과한데 이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거의 절반(44.7%)으로 농가 경영주의 평균연령이 67.7세이다. 이러한 대한민국 농촌의 현실 속에서도 지금까지는 약 77%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해 5000만 국민이 생활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2017년 3년간 평균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약 23%다.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규모도 2017년 181억300만 달러(약 22조4000억 원)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크다(머니투데이, 2020.4.2).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러한 자유무역이 예전처럼 지속될 수 있을까?
부산시의 인구는 341만925명(2020년)인데 농가 인구는 2017년 기준 총인구의 1.0%에도 못 미치는 1만9,133명에 불과하나 경지율은 8% 정도이다. 그나마 김해평야가 시역에 포함돼 원예농업이나 낙농업 등 근교농업은 비교적 발달한 편이다. 울산시는 인구가 114만5,710명(2020년)인데 2017년 기준 농가수는 1만2,070가구, 경지율 9.9%이다. 시의 동남쪽 평야지역이 주요 쌀농사지역이다. 경상남도는 인구 335만8828명(2020년)에 2013년 기준 농가 인구는 2만3568명, 경지율이 14%에 이른다. 경남도의 쌀 생산량은 전국의 약 11.7%를 차지한다. 부울경 인구를 합치면 약 800만 명. 원래 부울경은 한 뿌리였다. 부울경은 향후 광역교통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부울경에 절실한 것은 도농상생, 자급자족시스템의 구축이다. 이러한 부울경 도농상생의 중심에 부산시가 서야 한다. 이것이 진정 부울경 동남경제권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도농상생은 부울경을 넘어 대구 경북, 광주 전남 등 전국적으로 확대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의 환경경제학자 미야모토 겐이치는 『현대의 도시와 농촌』(1982)에서 도시나 농촌의 지역개발도 ‘내발적 발전(內發的 發展)’ 원칙으로 접근할 것을 주장한다. 지역의 기술·산업·문화를 토대로 한 지역 내 시장을 주 대상으로 지역주민들이 학습하고 계획하여 경영하고, 환경보전의 틀 안에서 개발을 생각하며, 다양한 산업개발을 하되 부가가치가 모든 단계에서 지역에 귀속되도록 지자체가 주민참여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후위기시대를 맞아 부울경 지자체는 도시와 농촌의 진정한 지역상생에 최우선 정책 순위를 두어야 한다. 도농교류를 일방적 시혜적이 아니라 도농이 교류와 상생을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국내외 도농 지역상생의 선례를 바탕으로 부산시가 부울경 도농상생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부산시청을 비롯해 부산시·기초지자체·공공기관 등의 식당을 지산지소·급식소비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10여 년 전 도쿄 농림수산성 구내식당을 들렀는데 100% 일본 국내산 식재료만 취급하고 생산지를 써 붙여 놓은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부산이 농산물 수급을 통해 특히 공공기관의 식당에 지산지소 식재료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부울경 농촌을 살리고, 시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도농상생의 첫걸음이다. 나아가 부산발 전국 공공기관 식당의 100% 국산식재료 공급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교육청 차원에서도 부울경의 학교급식에서는 이러한 도농상생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이를 교육프로그램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농상생은 무엇보다 도시인의 ‘농(農)’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신지 이소야 전 도쿄농업대학장은 『농(農)과 연결되는 녹지생활』(2010)에서 현대인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농업과 교감을 갖는 삶을 살아야 한다며 ‘전 국민 제5종 겸업농가화’를 주장했다. 제5종 겸업농가화란 농(農)과의 관계를 ①유농(遊農)’ ②학농(學農) ③원농(援農) ④낙농(樂農) ⑤정농(精農)이라는 5가지 형태를 겸하는 삶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도시인이 텃밭을 빌려 놀이 삼아 야채와 꽃을 가꾸는 ‘유농’, 음식이나 농업에 관해 배우면서 농업체험을 하는 ‘학농’, 모내기나 풀베기작업 등 농촌을 돕는 ‘원농’, 자기텃밭을 가꾸며 즐기는 ‘낙농’, 전업 농사를 짓는 ‘정농’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도시는 예전에 대부분 농촌이었고, 대부분의 도시인은 시골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둘째, 부산을 중심으로 부울경의 식량투자펀드를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농상생 농사 지원 사례로 일본 나고야지역에선 세계 최초 쌀본위제 지역화폐 ‘오무스비(연대라는 뜻)’를 발행한 경우가 있다. 오무스비는 농민들이 2010년 봄 쌀농사가 시작될 때 지역화폐 1만 장을 발행해 가을에 지폐 장당 유기농 현미 반홉으로 되돌려주었다(김종철, 녹색평론, 2011).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3월 지리산닷컴이라는 사이트가 ‘맨땅에 펀드’라는 이름으로 계좌당 30만 원을 받고 100명의 투자자를 모집한 사례가 있다. 투자자들은 주말마다 내려와 삽질도 했고 총 5번에 걸쳐 밀, 감자, 감, 땅콩, 고구마, 배추, 무, 김치, 청국장 등을 배당으로 받았다(『맨땅에 펀드』(권산, 2013). 이러한 것을 부산시가 중심이 돼 부울경 차원에서 MOU를 체결한다면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귀농귀촌을 도와주는 농촌일손돕기은행 및 빈집은행 같은 제도를 만들어 도시민들의 농촌 정착을 지원하고, 농촌의 활성화를 이뤄낼 필요가 있다. 광역지자체 단위로 ‘농촌일손은행’과 함께 유휴농지나 빈집 등을 관리하는 ‘빈집은행’ 제도를 마련해 도시인들에게 귀향귀촌을 이끌어내면 좋겠다. 그리고 농가에 주말농장이나 도농직거래장을 조성하고, 도시에는 시민건강농업대학을 개설해 귀농귀촌 평생강좌를 열어 주말농장과 연계하고, 농민을 강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자매결연을 통해 건강먹거리 상가인 ‘로하스(LOHAS) 건강타운’을 조성해 농촌의 특산 건강먹거리를 도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넷째, 현재 정부가 코로나19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 정책, 그 중 그린뉴딜정책은 ‘농촌그린뉴딜’이 돼야 하며, 그린전력 생산을 위한 도농연대와 농촌의 에너지농업화 추진이 절실하다. 일본의 경우 자연에너지도입촉진회사인 일본자연에너지주식회사(JNE)가 도쿄에 본사를 두고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바이오매스발전 추진사업을 ‘그린전력증서’ 발행을 통해 농촌지역에 발전소를 확대하고 있다. 도시의 소비자가 그린전력증서를 구입해 종래와 같이 전력회사로부터의 전력공급을 받으면서도 농촌지역의 자연에너지 시설투자에 기여하게 되는 구조이다. 부산시가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이런 핵심전략을 수립해 그 중심에 섰으면 좋겠다. 이제는 농업도 ‘에너지농사’로 확대되어야 한다. 기존의 농지에 벼를 재배하면서 지상에 태양광패널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는 ‘영농형 태양광발전소’의 농가 도입을 확대하는 것이다. 실제 한국남동발전이 2018년 경남 고성군 논 6천600여㎡에 100kW급 태양광발전 설비를 한 결과 논농사보다 농가당 소득이 3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다섯째, 도농비즈니스사업을 적극 개발하는 것이다. 농촌에 있는 것과 도시에 없는 것, 혹은 농촌에 없는 것과 도시에 있는 것을 조합해서 새로운 부울경 도농상생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다. 가령 수확한 농산물·특산물(농촌)과 벼룩시장(도시)을 결합하면 ‘전원형 벼룩시장’이나 웹을 발간할 수 있고, 방금 딴 채소·과일(농촌)과 ‘택배·퀵서비스·안전한 식재료에 대한 욕구’를 결합하면 ‘농가직송 택배’를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도시의 다양한 경력을 가진 OB들의 인력은행을 농촌과 연계해 운영하고, 농촌에 의료·교육·복지시스템을 갖춤과 동시에 청년을 마을관리사·마을예술인·마을강사 등의 형태로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다.
창조도시론의 세계적 학자인 사사키 마사유키는 『창조농촌을 디자인하다』(미세움, 2014)에서 농업종사자의 급감과 고령화의 진행 등으로 농촌에서는 ‘사람·토지·마을 이 세 가지의 공동화(空洞化)’가 일어나고, 주민이 토지로 생활해가는 자부심을 잃어버리는 ‘자부심의 공동화(空洞化)’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사키는 농촌재생을 위해 △복지·공공사업까지 다루는 지역자치조직의 등장 △창조적 인재 유치 △주민자치와 문화생활에 근거한 창조농촌 만들기 △창조적 투어리즘에 의한 도농교류 △새로운 음식문화에 의한 재래작물의 부활 등을 통해 주민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농촌도 제대로 된 노인종합병원이나 실버건강타운을 지자체 차원에서 건설하고, 도시 청년을 마을관리사, 마을복지사, 마을문화사, 마을강사 등 다양한 형태로 고용해 농촌재생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농촌지역에 다세대·다문화교류관을 건립하고, 다문화가정의 고향과 연계된 ‘공정무역센터’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의 참다운 미래는 근대적인 도시가 아니라 자립적인 농촌마을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간디의 말처럼 ‘마을이 세계를 구할 수 있도록’ 농촌을 혁신적으로 설계해 농촌에 사람이 모이도록 해야 한다. 도시소비자들도 이제는 농사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텃밭 가꾸기, 도시농업, 학교급식, 도농직거래, 생협 회원 되기 등 도농 간 네트워크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농업·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기후변화에 대응해 식량자급·에너지자립을 이루고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정신 위에 도농상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부산이 농업수도가 될 수는, 적어도 부울경의 도농상생의 메카로 자리매김을 할 수는 있고, 또한 그렇게 가야 한다. <끝>
<경성대 교수·환경경제학 박사, 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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