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은 세계 습지의 날,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 4월 4일 종이 안 쓰는 날, 4월 22일 지구의 날, 5월 31일 바다의 날,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 6월 17일 세계 사막화방지의 날, 8월 22일 에너지의 날, 9월 16일 세계 오존층 보호의 날, 10월 16일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 12월 11일 세계 산의 날, 12월 29일 생물종 다양성 보호의 날.
달력에는 잘 나와 있지 않지만 환경과 관련된 기념일이 빠진 달이 거의 없다. 이러한 기념일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부산시청 주변 마당에는 정부와 부산시의 환경정책에 반대하는 1인 시위나 각종 집회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시청이나 구청 마당을 시민들의 친환경 퍼포먼스의 장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것도 좀 재미있게.
이를 위해선 먼저 시청이나 구청 앞뒤 마당이 시민들의 광장으로 열려야 한다. 그것은 시가 거버넌스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진정성을 먼저 보일 때 가능한 것이다. 21세기 거버넌스 시대 세계 선진도시의 시청 광장은 다양한 시민들 아이디어의 펼침터가 되고 있다.
우리 속담에 ‘거름 지고 장에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일본의 한 도시에 ‘거름 지고 시청 간다’고 하는 말이 있다면 믿겠는가. 일본 도쿄 역에서 철도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가나카와 현 가마쿠라 시의 경우 시청 건물 한쪽 구석 벽 아래 ‘퇴비장’이 있다. 시민들이 자신의 집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데서 나온 나무톱밥이나 볏짚, 텃밭 흙과 같은 유기농퇴비를 이 퇴비장에 갖다버리고, 이러한 것을 필요로 하는 시민은 시청 퇴비장에서 가서 퇴비를 담아간다.
이 같은 풍경은 환경마인드를 가진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1993년 ‘환경지자체의 창조’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해 시민단체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다케우치 겐 시장은 1997년 재선에도 성공해 2001년까지 8년간 재임했다. 이러한 그였기에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시청 건물 한쪽 벽에 퇴비장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다케우치 겐 시장은 재임 중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NPO센터를 청사 내에 두었다. 시청 앞 광장 바로 인근에 아예 기피시설인 소각장이 들어선 경우도 있다. 인구 13만 정도인 도쿄도 무시시노 시는 시청 광장 바로 앞이 소각장인 클린센터이다. 무사시노클린센터는 민관파트너십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무사시노클린센터의 연돌은 녹색이며 센터 주변은 나무로 가득 차 그 자체가 공원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공해를 자랑한다. 어떻게 도심지 한 가운데 그것도 시청 인근에 소각장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무사시노클린센터는 가연성쓰레기, 비가연성쓰레기, 대형쓰레기, 유해쓰레기 등을 중간처리 하는 시설로 최종처리장이다. 이러한 클린센터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60, 70년대 당시 무사시노시도 여느 시와 다름없이 쓰레기소각장문제로 꾀 골머리를 싸맸다. 당시 자체 쓰레기소각장이 없던 무사시노 시는 인근 미타카시의 소각장을 공동으로 사용해왔는데 미타카 시민들의 민원 제기로 자체 소각장을 건립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제는 시내 어디에 건립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후보지 4곳이 나왔지만 주민들 간의 반대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청소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나중에 ‘클린센터 건설 특별위원회’가 조직됐다. 이 위원회가 26번이나 회의를 거듭한 결과 시청에 인접한 시영운동장을 건설용지로 하자는 데 합의했고 그것이 지금 무사시노클린센터가 들어선 장소이다.
이 센터는 1982년에 착공해 1984년에 본격 가동을 개시했고 같은 해 민관이 협력해 ‘클린센터운영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이 협의회는 지금까지 35년 가까이를 신뢰와 파트너십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무사시노시의 경우 무사시노클린센터가 시청 인근에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쓰레기문제와 관련된 민원이 제기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무사시노시의 사례는 시장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시청 앞 마당에 소각장을 건립하는 수용성을 보며줌으로써 어떤 정책을 펴든 행정과 시민이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 시청이나 구청 안에 시민의 발상을 끌어들여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역할과 공간을 부여하는 사례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에너지상담창구인 에너지카페 같은 것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 에너지카페는 독일에서부터 시작됐는데 독일의 브레멘 시와 하노버 시가 이를 시청사에 설치해 좋은 평판을 얻었다고 한다. 독일의 경우는 지역의 전력 가스 수도 등의 사업을 하는 공익기업체가 고객 대상 상담창구로 카페를 병설해 쉽게 들러 상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냈기에 이를 ‘에너지카페’라고 부른다.
일본의 경우 도쿄도 스기나미 구(區)가 2006년부터 스기나미 지역에너지협의회 주관으로 에너지절약상담창구인 ‘에너지카페’를 열고 있다. 이러한 스기나미 구의 에너지카페는 2005년 11월 스기나미 지역에너지협의회의 회원이 독일을 다녀온 뒤 스기나미 구에 제안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한다. 현재 스기나미 구는 월 2회 에너지 카페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매주 첫째, 셋째 주 화요일에 카페 문을 여는데 장소는 구청 로비이다.
에너지 카페는 방문자가 커피 등을 마시면서 에너지절약 점검지를 기입해 주택, 가전제품 라이프스타일의 에너지 절약을 분석함으로써 자신이 느낄 수 있도록 전문상담원이 조언을 해주는 것인데 이 방식은 환경가계부보다 훨씬 실질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카페는 지역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중심이 돼 에너지 다이어트조사를 실시하는 데 상당히 전문성도 갖고 있다고 한다. 매년 협의회 회원이 소속하는 생활클럽 생협의 조합원과 환경단체 회원 등 희망자 총 3,000명에게 조사표를 배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종래 세대인수에 따라 단순 비교하던 것에서 바닥면적 당 평가를 더해 JIA(일본건축가협회) 환경행동위원회의 협력을 받아 주택의 온열환경에 관한 자기평가와 냉난방 등 ‘계절의존’ 에너지와 ‘계절비의존’ 에너지의 사용량 분석까지 한다고 한다. 이처럼 스기나미 구의 에너지절약운동이 잘 되는 것은 전문가의 볼런티어적인 참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스기나미 구청은 2006년부터 지역에너지협의회와 공동으로 매년 10월에 구청 광장에서 이틀간에 걸쳐 ‘스기나미 구 환경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 행사 내용도 재미있는데 우선 이틀간 행사장에서 온 사람에게는 ‘지구에 친한 생활양식을 행사에서 발견해보자’, ‘지구환경을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 ‘가족과 함께 즐거운 환경이벤트에 참여하자’ 등의 선전문구가 들어간 홍보지와 함께 ‘에코포인트’를 준다. 강연회나 체험형 부스에 참여하면 에코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데 가령 에코포인트를 10포인트 따면 행사장에서 100엔짜리의 물건을 살 수 있고, 200엔이면 전구형 형광등을 살 수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에코포인트를 녹색기금으로 기부할 수도 있다고 한다.
‘폐가전제품은 보물산 도시광산’이라는 코너엔 PC나 휴대전화에 귀중한 금속들이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시청 2층 로비에는 ‘녹색커튼’ 코너가 있어 넝쿨식물을 통해 바깥기온과 온실의 차 등을 패널로 소개하기도 한다. 이 같은 환경박람회는 쓰레기 제로를 지향하고 있기에 행사장에는 별도의 쓰레기상자가 없다. 따라서 시민들은 각자의 쓰레기는 각자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게 돼 있고, 또한 자원회수 박스를 설치해 종이류 캔 등 자원을 분리 수거토록 하고, 자기 장바구니나 가방을 지참하며, 식기도 씻어서 재사용하는 식기만을 사용하게 하고 있는 등 ‘환경박람회’는 그야말로 환경축제이자 교육의 장인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부산시청의 광장도 좀 더 새롭게, 좀 더 시끌벅적하게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시청 광장에 새로운 형태의 친환경 퍼포먼스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선 6월 5일 환경의 날이 있는 주간을 이용해 환경단체들이 시청 광장에 환경축제를 하도록 사전에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면 어떨까. 어떤 단체는 여기에 플라스틱 리사이클링을 호소할 수도 있고, 어떤 단체는 이곳에서 유기농제품 판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일본 후쿠오카시를 방문했을 때 시청 인근 상가 건물에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설치된 커다란 곰 인형을 본 적이 있다. 이 곰 인형은 페트병의 수집을 위한 것으로 플라스틱 곰 인형의 코, 팔, 다리 등으로 나눠 페트병과 뚜껑을 색깔별로 나눠 넣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색깔이 다른 페트병 뚜껑을 곰 인형의 코와 팔, 그리고 다리에 분리해 넣고, 그 인형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페트병 뚜껑만을 모으는 운동을 대학 캠퍼스에서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도쿄도시대학의 경우는 학생회가 중심이 돼 캠퍼스 안에서 페트병 뚜껑만 따로 모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이유는 페트병 뚜껑을 분리하면 페트병 용기를 압축해 재활용 상자에 넣기 쉽고, 또한 페트병 뚜껑은 재생하면 돼지 축사의 밑깔개로 사용되는데 페트병 뚜껑의 원자재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 이것을 모아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보내는 운동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시청 광장에 주말마다 농부시장(Farmers' Market)을 개최하도록 하면 어떨까.
구미에서는 웬만한 도시에는 이러한 주말 농부시장이 열리고 있다. 농부시장은 지역 농부들이 자신이 만든 농산품이나 농가공품을 직접 트럭 등에 싣고 나와서 도시 소비자들에게 직접 파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농부시장은 기존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쇼핑에서 느끼지 못하는 재미가 있다.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농부시장인 보로우 마켓(Borough Market)은 영국의 5대 관광지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유명해져 농부시장 하나만 제대로 열어도 지역 관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농부시장은 상품의 신뢰성이 가장 문제가 될 것 같다. 전국 축제에 가면 어디나 똑같은 팔도시장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 농가를 우선으로 하고,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시민단체가 농가와 연결해 좀 더 책임성을 갖고 농부시장을 펼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 구체적인 방안은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을 일이지만 부산시청 광장에 제대로 된 주말 농부시장이 열리면 정말 좋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자릿세도 좀 받아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시민기금으로 쓰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이러한 아이디어는 부산시청이나 구청 마당을 좀 더 친환경적이고 시민참여적인 마당으로 만들자는 취지이다. 이와 함께 시청이나 구청에는 각종 민원의 1인 시위나 집단시위도 많다. 이러한 것 또한 시청이나 구청에서 ‘신문고 공간’을 만들어 반대의 목소리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펼치고, 이것을 시청이나 구청 관계자가 경청해 대책을 논의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청 구청까지 찾아간 시민들의 분노와 하소연을 좀 더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함께 풀어가는 것이야말로 민관거버넌스의 출발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시청과 구청은 시민의 아이디어를 반영하고 또한 시민들에게 시의 의지를 보이는 쇼케이스가 돼야 할 것이다. 생활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현장. 앞으로 좀 더 ‘부산스런’ 부산시청 광장을 기대한다.
<경성대 교수·환경경제학자, 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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