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앞에 청년창조지구 만들기 바람이 분 지가 제법 됐다. 2011년 봄의 이야기이다. 그 뒤 금정구청이 이 일대를 ‘청년창조지구’로 만들겠다고 했고, 청년인디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금정구예술공연지원센터와 부산콘텐츠코리아 랩도 세워졌다. 그런데 구청장이 바뀌었지만, 아니 바뀌었기 때문일까. 부산대 앞 ‘대학상권’은 그렇게 ‘창조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청년창조지구’의 역동성은 구청과 더불어 부산대 교직원, 학생, 동문, 그리고 부산대 앞 상가번영회의 적극적인 거버넌스가 열쇠인데 말이다.
부산대 앞 청년창조지구 조성을 위한 토론회
2011년 당시 ‘청년창조지구’ 조성 논의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2011년 6월 17일 금정구의회에서 ‘부산대 앞 청년창조지구 조성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당시 차재근 부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이 ‘부산대 앞 문화예술지원센터의 의미와 운영방향’을, 김재호 부산대 교수가 ‘부산대 정문 앞 광장 조성의 필요성과 실행전략’을, 그리고 필자가 ‘부산대 앞 창조지구 조성을 위한 민관산학 네트워크 구성과 역할’을 주제로 발표를 했고, 류성효 대안문화 ‘재미난 복수’ 사무국장, 김성헌 대안문화공간 ‘비움’ 대표, 오재환 부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안석희 하자센터 노리단 부산추진단장, 박성철 부산대학로 상가번영회장, 방희원 금정구의회 의원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회를 많이 나가봤지만 당시의 토론회만큼 열기와 진지함이 넘치는 토론회도 드물었다. 청년창조지구는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실천력이 어우러진 청년문화의 용광로여야 할 것이기에 이러한 데서 우선 청년창조지구는 부산대 앞 대학촌으로서 부산대다움이 잘 나타나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지난 2009년 2일 BTO(수익형민자사업)방식으로 추진돼 문을 연 부산대 정문 옆 쇼핑몰 ‘효원굿플러스’는 부산대의 정신적 지향, 가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실패작’으로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진다. 대학의 상징인 정문과 시계탑이 실종되고, 교직원, 학생, 학부모, 동문을 끌어들이기는커녕 지역 상가와 갈등관계를 유발해 대학의 창조적 청년문화나 지역문화 및 글로벌문화센터로서의 기능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발제를 했던 당시 부산대 문화콘텐츠개발원장이던 김재호 교수는 부산대를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삼기 위해서 ‘정문 개조론’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부산대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윤인구 초대총장의 건학정신의 계승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총장은 우리나라 첫 국립대학을 부산시민의 힘으로 만들어 국가에 헌납했는데 설립 과정을 보면 우리민족이 일제시대부터 염원했던 우리 손으로 만든 첫 민립대학이다. 장전동 캠퍼스의 장전(長箭)이란 ‘긴 화살’을 뜻하는 데 조선시대에 전국에서 가장 멀리 날아가는 화살을 이 지역에서 난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그 대나무가 자라는 자리에 윤 총장이 하늘을 향하여 팽팽히 당겨진 활의 형상을 하고 있는 무지개문을 세워 청년들로 하여금 ‘진리 자유 봉사’의 정신을 쏘아올리는 것을 상징으로 했다. 대형 전면 유리로 된 로비가 있는 부산대 인문관은 펄벅 여사가 부산대를 방문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라고 말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건물이자 우리나라 근대사의 가장 위대한 건물 중 하나다.
김재호 교수의 정문 개조론 공감
김 교수는 앞으로 부산대와 금정산 기슭에 초대총장 윤인구박물관을 비롯해 부산 근대사인물박물관이나 교육박물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앞으로 부산대 교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가면서 새롭게 캠퍼스 정문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문에서부터 인문관의 모습이 가장 시야에 잘 들어오도록 설계해 금정산 산정의 금샘이 대학 안으로 들어오고 이를 정문까지 흐르게 하고 정문 앞에는 어떤 형체의 문을 만들기보다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를 두되 이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 버려진 큰 돌덩어리를 보면서 청년 다윗상을 탄생시킨 그 창조성을 상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김재호 교수의 제안에 지금도 동감한다. 부산대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내부 역량을 결집해 지역에서 부산대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좋은 사례로 나는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윌리엄 S. 클라크 초대총장의 ‘개척정신’을 소개하고 싶다. 클라크 박사는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로도 유명하지만 대학의 개척정신을 홋카이도를 비롯한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개척정신과 비전, 열정을 강조한 세계적인 리더이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 홋카이도대학이 지역에서의 리더십을 갖는 바탕이 되고 있다. 홋카이도대학 내에는 일본 최초의 대학사박물관이 있고, 또한 동문회관에는 전국 대학 관련 자료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정보센터가 있고, 이 대학을 찾는 동문 및 지역주민들은 홋카이도대학의 다양한 브랜드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홋카이도대학의 에코캠퍼스 만들기는 대학을 지역의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지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대 동문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필자는 부산대의 정신은 10·16부마항쟁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평범한 시민의 지역 리더십’이 그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도쿄 와세다대학의 경우는 2006년 6월 ‘국제커뮤니티센터’를 개설해 90개 국 4천여 명 외국 유학생들의 이문화 교류를 적극 추진해오고 있다. 5만7000명의 재학생과 50여만 명의 동문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국제 교류의 장을 대학이 마련한 것이다. 이곳 센터에선 유학생과 일본 국내학생들과의 교류, 언어문화의 교류, 사회 및 국제문제, 음악, 댄스, 스포츠, 연수여행 등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이뤄진다.
또한 도쿄가쿠게이(東京學藝)대학의 경우는 대학 앞 지역 편의점 공간에 커뮤니티센터를 개설해 지역민과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개한다. 그곳도 일본의 대표적인 편의점의 하나인 로손(LAWSON) 건물의 북쪽 절반 공간에 지난 2009년 4월 ‘가쿠게이대학 커뮤니티센터’를 연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부산대 앞을 ‘아시아청년창조문화센터’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그것은 일본 가나카와현 가와사키시가 지난 2009년 게이힌임해지역에 조성한 ‘아시아기업가촌(起業家村)’을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아시아기업가촌추진연합회가 중심이 돼 중국 상해지역 대학 유학생들로부터 기업예비군을 발굴해 환경정보기술(IT) 등을 중심으로 2000개사 정도를 유치해 지역의 신산업 육성의 거점을 만든다.
부산대 앞을 아시아청년창조문화센터로 만들자
또한 창조도시로 잘 알려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NCSU) 센티니얼캠퍼스의 경우는 대학 내에 자연경관을 살린 벤처촌을 두고 산학협동 캠퍼스를 추진한다. 이들 벤처기업 관계자에게는 교직원과 같은 대우, 도서관 이용 및 수강을 오픈한다.
이렇게 볼 때 부산대의 경우 보다 열린 대학을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대학 당국의 새로운 지역 리더십 발휘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된다고 하겠다. 학내 각종구성원, 지역상인, 지자체, 기업과의 커뮤니케이션 통해 형식과 내용 면에서 효원굿플러스가 새로운 모습으로 지역과 만나길 기대해본다.
그 다음으로는 금정구청에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창조도시는 도시내부에 혁신시스템이 조합되어 진화하는 ‘지적기반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행정, 기업, 상가, NPO, 시민들의 소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산대 앞 ‘청년창조지구’의 실질적 조성을 위해 지역 관련 기관 및 단체의 충분한 ‘사전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때 원칙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조적 분위기(Mood) 만들기에 노력을 해달라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비결 중 하나가 ‘민간전문가 중심의 조직 운영과 부산시의 절제된 지원’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 구청장 때의 사업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말고 새로운 의미에서 ‘재창조’가 필요한 때이다.
그동안 부산지역은 ‘도시재창조’사업이 제법 적극적으로 추진돼왔다. ‘원도심 문화부흥’을 내걸면서 지역 예술인의 지역문화 공간에 대한 욕망과 그 장소가 가진 역사문화적인 자원이 결합하여 2010년 부산 중구 중앙동, 동광동 일대의 빈 상가를 리모델링해 ‘또따또가’라는 ‘원도심 문화창작공간’이 만들어져 호평을 받는다. 2013년에는 부산에서도 상대적 소외지역이었던 서부지역인 사상 도시철도역 빈터에 컨테이너 27개를 활용해 ‘CATs 사상인디스테이션’이라는 문화재생공간이 만들어져 공연무대, 전시 쇼케이스, 야외무대, 스튜디오, 레지던스 등을 갖춰 부산지역 청년문화활동을 견인한다.
청년창조지구 만들기 위해선 먼저 민관산학 연구조직부터
이런데서 부산대 앞 청년창조지구 만들기를 위해 우선 현장을 바탕으로 한 민관산학 연구조직을 먼저 구성하는 게 어떨까 싶다. 부산대 앞 대학촌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역 보물찾기에 나서는 연구모임으로 민관산학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소통공간을 만들자. 특히 이러한 연구조직은 일본 요코하마시의 KYATS를 참고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KYATS는 ‘요코하마가나자와지역연구집단’의 약칭으로 지난 1991년 가나자와구청 직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인데 구민과 함께 ‘마을걷기강좌’ 개설을 시작으로 1992년에는 ‘신가나자와발굴대(SKOP)’를 발족해, ‘걸리버지도’ 마을 보물찾기 활동을 했다.
그 뒤 1996년에는 요코하마시와 시민, 대학, 행정, 기업의 4자간에 파트너십을 통해 가나자와구의 종합적인 마을 만들기 추진을 목적으로 지역 싱크탱크형 NPO가 됐다. KYATS는 지역의 자원과 과제를 조사연구해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입장이나 이해, 의식이 다른 다양한 시민들이 공통으로 대화하면서 합의점을 만들어냈다. 이 단체에는 요코하마시립대학 등 8개 지역대학 학생이 환경 복지 역사 등의 주제마다 스태프로 참여한다고 한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KYATS 담당 공무원은 향후 부서 이동시에도 ‘공무원 위원’으로 지속적으로 이 모임에 참여해 활동을 하도록 보장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우선 금정구의회를 중심으로 구청 직원, 부산대 교수 학생 동문, 상가번영회, 지역 전문가 등 금정구 장전동 일대 청년창조지구 만들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연구모임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싶다. 기존의 관 주도에서 민과의 거버넌스를 바탕으로 한 ‘신행정(New Public Management)’이 필요한 때이다.
관 주도 탈피, 민관 거버넌스 바탕한 신행정 필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부산대학로 상가번영회의 역할이다. 상가번영회차원에서도 ‘부산대학로 상인헌장’을 제정 실천하는 등 상가 나름의 가치를 발신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관해 일본 센다이시의 ‘아라마치공화국’ 만들기 사례를 소개한다. 아라마치공화국은 1993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 아라마치상점가진흥조합이사장인 이즈모고코로 씨가 상가번영회장이 된 뒤 아라마치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알려졌다. 문방구점 주인 출신인 이즈모씨는 ‘행복한 상점가 만들기’에 도전했다.
아라마치공화국치공화국의 상인헌장을 보면 이렇다. ‘우리들은 아라마치상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책임감을 느낍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점에서 일할 때 기쁨을 느낍니다.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마을을 만드는데 앞장서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면서 노인들에게 대중교통이용권 및 서비스권을 드리고 담배를 함부로 버린 사람들에겐 벌금을 매기고 점포의 셔터에 시를 붙이고 노인에게 복지도시락을 배달한다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중이다.
또한 부산대 앞 상점가를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사회공헌, 메세나활동의 거점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기업+예술+마을 만들기’를 시도해보자는 것이다. 기업메세나의 경우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이나 지역의 전통기업 등이 지역주민 또는 지역 주재 예술가에 지원하거나 지역의 예술문화시설의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금정구청년창조지구의 경우 가령 부산은행, 대선주조, 동일고무벨트 등 향토기업과 롯데·신세계백화점 등이 이 지역에 메세나활동에 적극 나섰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부산대 앞 청년창조지구가 청년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는 청년 창조문화의 멋진 무대가 될 수 있도록 뜻있는 많은 분들의 지혜와 힘이 모이길 기대한다. 창조도시 부산 만들기에 청년들이 적극 나설 수 있는 장을 많이 만드는 일에 취임 1년을 맞는 민선 7기 지자체 단체장분들이 적극 관심을 갖고 소프트전략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경성대 교수·환경경제학자, 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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