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을 망치는 초고층 건물의 난립. 북항에 오페라하우스, 가덕도 신공항 추진 등 대형프로젝트에 매달리는 지자체. 산, 강, 바다, 온천 천혜의 ‘4포지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도시 부산. 2018년 세계도시 부산의 현주소이다. 이제부터 도시에게 필요한 것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이다. 환경경제학자이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 김해창(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창조도시 부산을 위한 소프트전략을 제안한다.<편집자>
을숙도 철새공화국 헌법 ‘제1조 을숙도 철새공화국은 평화공화국이다. 제2조 을숙도 철새공화국의 영토는 낙동강 하구 문화재보호구역 일원으로 한다. 제3조 을숙도 철새공화국의 국민은 생명과 평화에 대한 사랑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2001년대 12월 당시 명지대교(지금의 을숙도대교) 공동대책회의가 ‘낙동강 하구 보전을 위한 시민한마당’을 열고 ‘을숙도 철새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내세운 을숙도 철새공화국의 헌법 조문의 일부이다. 부산시민으로서 필자는 개발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과의 징표로 부산시가 앞으로 을숙도를 ‘을숙도 철새공화국’으로 지정하고 공식적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부산시와 시민들이 철새로 대표되는 자연과의 ‘외교적 관계’를 새롭게 수립해야 할 때이다.
낙동강 하구의 가치는 연간 4조4500억 원으로 새만금의 26배라고 한다(파이낸셜뉴스, 2005.3.27). 부산발전연구원 송교욱 선임연구위원은 ‘낙동강 하구역의 생태·경제학적 가치평가와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을숙도의 상징인 갈대는 4억2700만 원, 재첩 등 저서생물은 14억5000만 원, 물고기는 27억9000만 원, 하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새는 22억2000만 원, 갯벌은 8억8000만 원 등으로 이들 자원의 가치를 포함해 태양 바람 비 파도 등 낙동강 하구가 가진 순수한 자연환경의 가치가 연간 총 4조4500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제 이러한 낙동강 하구의 가치와 부산시와 시민들의 창조적 발상을 지금 새로운 낙동강 하구의 ‘지속가능한 발전’ ‘현명한 이용’에 적용해야 한다. 을숙도철새공화국과 비슷한 민간의 발상은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2001년 (주)남이섬이 들어서더니 2006년에는 아예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독립 선언을 했다.
한 때 쓰레기와 고성방가가 난무했던 유원지 남이섬이 지금은 한해 200만~300만 명이 찾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관광지로 변했다. 그것은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발상에서부터 시작됐다. 1943년 춘천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조각배같은 현재 모양의 섬이 된 남이섬은 넓이가 50여만㎡, 둘레가 6㎞ 정도이니까 부산시민공원 부지와 비슷한 면적이다. 이곳의 자연은 1965년부터 이 섬을 매입한 한 개인이 메타세콰이어, 잣나무, 은행나무 등을 대대적으로 심어 일궈놓은 인공림이다. 1970~80년대 대학생들의 모임장소나 강변가요제 개최지 혹은 영화촬영지 정도로 알려졌던 남이섬은 디자이너 한사람의 참신한 아이디어에서 새로운 변신의 계기를 맞는다.
디자이너 강우현 씨는 2001년 빚더미이던 (주)남이섬에 주주가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조건으로 월급 단돈 100원짜리 사장이 됐다. 2006년에 선포한 나미나라공화국은 ‘재미와 상상력의 천국’이다. 우선 이 섬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육지에서 이 나라 여권을 가져야 한다. 승선권이자 입장권을 여권으로 바꾼 발상이 재미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나미나라 국기와 상징이 있고 나미나라공화국 관광홍보청 로고 그리고 소방서에서 폐기하는 소방차를 사다가 새롭게 디자인한 나미나라소방청 소속 소방차도 있다. 이 소방차는 불이 나면 불을 끄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분수쇼를 펼친다. 게다가 이 나라는 상평통보를 모델로 해서 만든 별도 화폐가 있어 각국 화폐와 환전이 된다.
나미나라공화국은 동화적 상상이 섬 전체에 번득이는 그런 곳이다. 서점, 가게 갤러리, 식당, 마트 등이 있지만 다방이나 카페, 술집은 없고, 섬내 교통은 주로 자전거와 예전 놀이시설로 쓰던 철도가 있다. 또한 이곳에는 세계적인 자선재단인 유니세프나 환경운동연합이 들어와 각종 행사도 하고 아트숍도 운영한다.
남이섬은 섬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름답게 자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를 비롯해 아름다운 숲이 자랑거리이다. 게다가 이곳은 재활용 쓰레기도 예술로 바뀌는 곳이다. 소주병 3000개를 모아 ‘이슬공원’을 만들었고 버리는 캔을 우겨 붙여 벤치로 만들어놓는가 하면, 버리는 변기를 주서 모아 훌륭한 화분으로 바꿔놓았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 나미나라공화국의 국립호텔이다. 예전의 허름했던 장급여관을 리모델링해 별다섯개의 특급호텔로 만들었는데 객실 하나하나를 화가들이 자신의 화풍으로 방을 꾸몄고, 호텔 방안에는 TV 대신 소형 라디오 한 대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투숙객들이 자신들의 사랑이야기를 방명록에 솔직히 적어놓고 가는 그런 곳이다.
강 대표는 남이섬에 대해 이런 방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남이섬은 개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를 개발한다. 투자받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예술에 투자한다. 경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를 경영한다”고 말이다. 남이섬은 문화예술과 자연생태가 잘 어우러진 관광지이지만 무엇보다 창조적 발상이 만들어낸 매력적인 생태관광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남이섬의 가능성을 가진 낙동강 하구의 땅이 있다. 바로 ‘진우도’이다. 진우도는 한 100년 정도 걸려 만들어진 모래섬이다. 1956년 이곳에 진우원(眞友圓)이라는 고아원이 세워지면서 진우도로 불리게 됐다고 하는데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피해를 많이 입어 육지로 철수한 이래 지금은 낡은 건물과 주변에 동물 사육장 시설 정도가 남아 있다. 무인도로 알려져 있지만 공유지와 더불어 상당 부분은 사유지(농심 소유)라고 알려져 있다.
이곳 진우도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에서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에 선정된 섬이기도 하다. 모래밭과 펄갯벌, 육상림이 동시에 존재하는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자연경관과 물수리, 솔개, 황조롱, 도둑게, 동백꽃, 띠풀 등 다양한 생물상을 안고 있는 ‘생태보물섬’이다. 섬 동쪽은 신자도, 장자도, 대마등, 백합등 등의 작은 모래섬이, 서쪽으로는 눌차도와 가덕도가, 남쪽은 띠풀과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명지, 신호리와 이어지는 광활한 갯벌이 있다.
필자는 20년 전부터 가끔 이곳을 환경단체 회원들과 찾은 적이 있는데 예전에는 이곳 섬에 들어서면 거의 무인도처럼 사방이 오로지 자연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육지쪽을 보면 아파트가 살풍경으로 다가와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부산에서 찾기 힘든 ‘원풍경’이 남아 있다. 육지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도 많다.
이제 진우도에 ‘남이섬의 상상력’을 풀어놓아보면 어떨까. 진우고아원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자그마한 생태자료관, 방문자센터로 만들고, 필요한 곳에 길을 정비하고, 자연을 만나는 땅, 새로운 ‘생태도시 부산’의 역사를 이곳에서 한번 써보는 게 어떨까 싶다. 물론 전제가 있다. 진우도 생태계의 한도를 벗어나지 않게끔 제한된 방문, 생태조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 낙동강 하구에 별도의 ‘(개발에 대한) 반역의 땅, 낙동강하구 철새공화국’이 생기고, 그 중 진우도가 ‘생태보물섬 진우도’로 우리나라 생태관광의 메카로 거듭나는 꿈, 그 꿈을 부산시와 우리 시민들이 함께 이뤄갈 순 없을까.
을숙도 내의 기존 시설계획을 종합 검토한 뒤 부산시 차원의 을숙도생태관광마스터플랜 수립이 절실하다. 그리하여 낙동강 하구 물길, 발길을 제대로 잇고, 하구둑을 헐어 재첩을 살리고, 고니를 비롯한 철새의 천국을 만들고, 전통나루, 나룻배, 뱃길을 복원하고, 갈맷길을 연결해 생태체험 코스로 만들고, 낙동강 하구 문학과 문화 등 하구생태문화를 발굴하는 일, 그리고 명지, 다대포, 하단 일대에 지역 먹을거리타운을 조성하는 일, 크루즈관광객이 부산에 올 때 사전예약제로 반드시 들러야 할 ‘신이 내린 정원, 낙동강 하구’로 만드는 일, 이런 ‘그랜드디자인’을 우리 함께 꿈꿔야 하지 않을까.
<경성대 교수·환경경제학자, 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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