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부산에 이렇게 멋진 생태공원이 있는 줄 몰랐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집안에만 갇혀있다 이렇게 넓은 자연에서 봄을 느끼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이곳을 대교가 가로지르면 이런 자연 보기도 어려워지겠네요.”
지난 3월 22일 환경시민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 회원들이 삼락생태공원과 맥도생태공원을 찾았다. 이날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었다. 우리 생명의 근원인 물의 중요성과 물 보전을 위한 시민의 관심을 촉구하는 뜻깊은 날에 한국 최고 최대의 자연습지인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 보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속닥한 행사’를 가진 것이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 박중록 운영위원장과 김남영 사무국장 등 이 단체 활동가들의 가족을 중심으로 10여 명이 참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최소한의 인원만 ‘동원’했다. 이들이 간 곳은 사상구 삼락생태공원과 강서구 맥도생태공원. 삼락생태공원 위를 대저대교가, 맥도생태공원 위를 엄궁대교가 각각 관통하는 건설계획이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생태기행 겸 ‘현장 액션’을 위한 답사였다.
회원들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삼락생태공원 제3주차장에 모였다. 다들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나타났다. 박 위원장은 “오늘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삼락생태공원과 맥도생태공원을 걸으면서 이 공원 한 가운데를 가르게 될 대저대교와 엄궁대교 건설계획에 대해 ‘대교 철회’ 피켓팅을 하면서 이곳만을 지키자는 결의를 다지려고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움츠린 마음을 대자연에서 훨훨 털어버리고 회원 가족 간의 뜻깊은 시간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했다.
삼락생태공원 주차장 인근의 텅 빈 파크골프장을 지나니 곧바로 버드나무 연초록의 아름다운 강나루 길이 나온다. 박 위원장은 길 주변 나무에 앉은 박새, 하늘에서 정지비행을 하는 황조롱이 등 주변의 새가 보일 때마다 회원들에게 새 이름을 알려준다. 길을 따라 봄내음을 맡으며 걸어가니 자그마한 연못이 나온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겨울철 해질녘 하늘에서 날아 들어오는 오리떼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붙인 이 연못이름은 ‘하늘연못’이란다. 이곳에 유영하는 물닭이 눈에 들어왔다.
박 위원장은 대저대교가 통과하게 될 지점이라며 손가락으로 이쪽저쪽 먼 곳을 가리켰다. “하늘연못 바로 옆으로 대저대교가 세워지면 이곳의 아름다운 모습은 영영 사라집니다.” 회원들은 ‘대저대교 철회, 이곳만은 지키자’라고 천으로 만든 펼침막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펼침막은 박 위원장 가족이 전날 밤늦게까지 손수 만든 작품을 이날 처음 공개한 것이란다.
박 위원장은 “대저대교와 엄궁대교 건설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다리가 낙동강하구의 겨울을 대표하는 새, 우리가 백조라고 부르는 천연기념물 제201호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종인 큰고니의 핵심 서식지이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세워지게 되면 서식지가 다리로 인해 작게 쪼개지게 되기에 넓고 안정된 서식지를 요구하는 이 새가 더는 이곳에서 살 수가 없기에, 저희 ‘습지와 새들의 친구’는 2018년 5월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흘깃흘깃 퍼포먼스를 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펼침막의 글귀를 읽어보고는 “여기를 다리가 통과해요?”, “낙동강에 이렇게 많이 다리를 놔야 하냐?”하고 반문하며 지나간다. 제법 많은 시민들이 생태공원 구석구석을 가족단위로 걷거나 자전거를 즐긴다.
조금 더 걸어가니 갈대숲 사이로 또 다른 연못이 보였다. 이 연못도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비밀의 연못’이란 이름을 붙여놓았단다. 그런데 이 ‘비밀의 연못’은 대저대교 건설계획안의 중간 환경영향평가 등에는 아예 조사가 빠져있다고 한다. 회원들은 다시 이곳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마침 이날 부산MBC ‘다큐에세이 그 사람(연출 송인섭)’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임철홍 VJ(비디오 저널리스트)가 동행해 퍼포먼스 모습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오는 4월 11일(토) 오전 8시10분에 50분간 방영예정이란다. 낙동강하구 보전운동에 앞장서온 박중록 위원장의 활동을 중심으로 찍고 있다고 했다.
어느새 ‘배꼽시계’가 정오를 알린다. 회원들은 다시 출발지 가까운 숲속에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김밥이며 과일 음료수를 내놓고 점심을 나눴다. 그야말로 ‘풀밭 위의 오찬’이다. 점심시간은 수다시간이 됐다.
“그동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꼼짝없이 집에서 식구들 밥 챙긴다고 피곤한 나날을 보냈는데 오늘 생태공원에 오니 정말 봄이 뭔지 느껴지네요. 하루빨리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져야 하는데 말이죠.” “요새 아이들은 집에서 점심 먹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학교급식 식단처럼 늘 새로운 반찬을 요구해 피곤해요.” “우리집 아이는 이제 집에 있는 게 지겹대요.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며 평소 안 하던 소리도 해요.” “저희 집에는 이번에 코로나 땜에 강원도에서 안 팔리는 감자 한 상자가 들어와서 오늘 삶아왔어요. 드셔보세요.”
식사를 마친 뒤 초중학생이 딸린 가족들은 빌린 자전거로 소풍을 즐겼다. 남은 어른들은 삼락생태공원의 또 다른 비경, 다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봄생명 빛깔, 온 마음을 사로잡는 버드나무길 산책에 나섰다. 몸 안에서 수액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연푸른 버드나무 길은 아름다웠다. 버드나무 위에는 검은머리방울새 십여 마리가 가지에 달려 바람을 따라 노닐고 있었다. 사진 찍기가 취미이기도 한 김명섭 회원은 버드나무 길의 아름다움을 렌즈에 담느라 분주했다.
삼락생태공원을 뒤로 하고 대부분 가족회원은 귀가 인사를 하고 나머지 몇 사람은 차 한 대로 강서구 맥도생태공원 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은 엄궁대교 건설예정지이다. 맥도생태공원 둔치의 버드나무숲길과 갈대밭 사이 길을 걸으니 그곳 연못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몇이 눈에 띄었다.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여기서 낚시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자리를 옮겨주세요.”라고 고함을 치니 슬슬 뒷걸음을 치며 사라진다. 카메라와 쌍안경을 갖춘 회원들의 모습이 단속원 같은 ‘포스’를 발휘한 것일까. 회원들은 그곳에서도 ‘이곳만은 지켜주세요’ 퍼포먼스를 했다. 이 아름다운 햇살, 풍경, 갈대소리가 자동차 소음에 파묻히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가는 길에는 야생동물의 똥 같은 것도 보였다. 박 위원장은 “여기 ‘너구리공동변소’가 두 곳이나 있네요. 너구리도 제 사는 곳을 어지럽히지 않고 이렇게 모아서 똥을 누는데 사람들은 건강한 자연을 그냥 두지 못하고, 보전할 곳 하지 않을 곳 가리지도 않고 사방팔방에 다리를 만들려고 하네요. 너구리한테서 배워야 할 것 같네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갈대밭 길을 걸어 강변에 도착해 낙동강하구를 바라본다. 탁 트인 이곳의 풍경이 영영 보존되어 우리 아이들도 이 너른 강을 보며 강을 닮은 넉넉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날 일정을 마쳤다.
이날 저녁때 습지와 새들의 친구 카톡방을 보니 임미화 회원이 이런 글을 남겼다.
‘나무도 새도 사람도 함께 어우러진 낙동강 둔치의 봄, 대저대교가 들어선다는 곳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내가 디딘 땅의 감촉과 바람을 느끼고, 오랜 세월 이곳의 새와 나무에 깃들었을 영혼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박새, 황조롱이, 개똥지빠귀의 구애 소리, 수갈래로 뻗어있던 물오른 수양버들 숲, 지천에 깔린 봄까치꽃과 물풀이 가득한 작은 연못들. 지금 이대로가 너무 좋았다. 사람과 자연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곳은 지켜져야 한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사회는 질문을 다시 시작하고 그 지향을 넓혀야 한다. 꼭 이곳에 다리가 필요한가? 아니 더 많은 다리가 정말 필요한가?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바뀔 거라고 믿어 보는 의미 있는 하루였다’.
박중록 선생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62개 단체 연합체인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준)은 26일(목) 오전 11시 부산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을 관통할 예정인 대저대교의 환경영향평가 생태계조사 분야 거짓작성 사실이 이들 환경단체의 고발로 드러났다. 이에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최근 부산경찰청에 공식수사를 의뢰한 데 대해 부산경찰청의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경성대 교수·환경경제학자, 소셜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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