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오늘은 시인 오규원(1941.12.29~2007.2.2)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겨울에 나서 겨울에 죽었다.
오늘의 한국문단의 현역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오규원이라고 답할 것이다. 70~80년대 시인들에게 가장 큰 세례를 입힌 사람이 김수영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1968년 초여름 저녁 갑자기 보도를 덮친 시내버스에 치여 그가 유명(幽明)을 달리한 뒤였으며, 살아생전 당대의 시인 지망생들에게 가장 큰 안내자 역할을 한 사람은 오규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앞 세대에는 서정주라는 신단수(神檀樹), 그 거대한 나무, 원시림의 시원수(始原樹)가 있었다. 그가 우리나라 현역 문인들의 최대 태생지인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20여 년 재직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분명 그런 물리적인 단순한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당대의 최고의 시론가로서 그는 몸소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본인의 시론을 그대로 여실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서정주가 구축하고 완성한 전통적인 한국시의 서정을 벗어나 비로소 누가 보아도 현대적인 현대시의 지평을 열어 확장했으며 그 지난하고 고독한 싸움에 묵묵히 자신의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다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현대시가 너무 기교주의(技巧主義)에 빠져 있다는 매우 아픈 비판의 한 지점에 대해서도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오규원, 분명 그일 것이다.
오늘 옛 시집들을 꺼내어 그의 대표시 몇 편을 다시 읽어 본다.
* 사실 1977~1981년까지 서울예전의 그 자리는 정현종이 있었던 자리이다. 당시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는 소설에는 최인훈이, 시에는 정현종이 있었다. 81학번인 나의 대학시절, 연세대에는 소설가 박영준(朴榮濬 1911~1976) 선생이 작고하여 구멍이 난 소설창작론 강의를 최인훈이 지원하고 있었으며, 1982년 박두진 선생이 정년퇴임한 자리에 정현종이 모교로 자리를 옮겼으며 정현종의 그 빈자리에 태평양화학 홍보실에서 10여 년 근무하다가 『도서출판 문장』 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던 오규원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오규원은 1983년부터 서울예전에서 수많은 후배 시인들을 길러내었지만, 연대로 옮긴 정현종이 키운 시인은 아마 기형도와 나희덕 정도일 것이다. 만일 정현종이 서울예전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더라면 오늘 한국 시단의 지형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오규원이 감당한 그 자리 옆에는 김혜순도 묵묵히 제몫을 다하고 있었다.)
* 그가 꾸렸던 출판사 『문장』은 일찍이 정지용이 주간한 식민지 시절의 마지막 문예지 『文章』의 이름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며, 그곳에서 가장 공들여 펴낸 책이 『이상 전집』과 생존 시인 『김춘수 전집』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의 지향점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탁월한 시론가 김준오(金埈五 1939~1999)를 발굴(?)한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순례 11 /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數萬)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 『순례』 세계사 1997년
이 시집은 1973년 민음사에서 펴낸 그의 두 번 째 시집을 원형 그대로 재출간한 이른바 ‘복각판(復刻板) 시집’ 이다. 이 시집의 장정은 소설가 김승옥의 작품으로 그의 전방위적 예술적 재능을 확인케 한다. 1971년 한림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첫 시집인 『분명한 사건』도 2017년 문지에서 다시 복각판을 내었다.
한국 현대시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기획한 <미래사 -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71.>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에도 초기 발표작 그대로 실려 있다. 그러나 1975년 <민음사 - 오늘의 시인총서 11.> 『사랑의 技巧』에는 순례(巡禮) 연작들이 대부분 개작 과정을 거쳐 실려 있다.
1980년대 대학 교정은 최루탄 연기로 하루도 콧물 눈물 마를 날이 없었으며 데모송은 청송대를 지나 안산 등성이를 넘어 울러퍼졌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 물가 심은 나무같이 흔들리잖게 // 흔들리지 흔들리잖게 / 흔들리지 흔들리잖게 / 물가 심은 나무같이 흔들리잖게>
조안 바에즈(Joan Baez 1941~ ) 가 부른 <자유의 노래 - 일명 ‘홀라송’> 을 뒷전으로 들으며 나는 학교 담장을 넘어 용암사(봉원사의 암자에 해당함) 하숙집으로 향하였다. 하숙집 대청마루 한 구석에 낡은 전축이 있었으니 그 전축이 보유한 유일한 LP판인 존 바에즈의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 를 간혹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나는 강의를 밥 먹듯이 빼먹으며 달랑 시집 한 권만 들고 연대 뒷산을 오르내렸다. 책장에 꽂힌 책들 중에서 (주로 창비와 문지, 민음에서 나온 시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은 누구 시를 읽어줄까, 그 중 하나를 꺼내어 하루 종일 시를 읽었고 오규원도 그 중의 단골손님이었다.
겨울 숲을 바라보며 /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 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 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 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罪)를 더 얻는다.
한 벌의 죄(罪)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년
세상에- ! ‘죄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도 있는가, 그 소리를 듣는 시인이란 분명 별종(別種) 중의 별종일 것이다. 이후 나는 또라이를 ‘到裸伊-마침내 벗은 사람’ 이라 명명하였으니…
그 옛날 서라벌 어느 골목 길 한복판 백주 대낮에 홀라당 벗은 채 바가지를 두드리며 무애무(無碍舞)를 추고 있는 원효를 보았던가 말았던가?
그리고 다시금 한참 이후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 을 매번 맞을 때마다, 오규원의 ‘함부로 완전히 벗어 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 을 늘- 생각는 것이다.
순례 서(序) / 오규원
1
들은 길을 모두 구부린다
도식주의자가 못 되는 이 들(平野)이
몸을 풀어
나도 길처럼 구부러진다
민음사에서 ‘오늘의 시인총서’ 로 펴낸 1975년판 시선집 『사랑의 기교』에서는 1 전체를 지워버리고 2와 3을 1, 2로 번호를 매겼다. 이후 내가 제시한 <순례(巡禮) 연작> 은 1997년 세계사 복각판 『순례』와 1975년판 민음사『사랑의 기교』를 일일이 대조한 것이다. (* 작은 글씨로 부기한 것이 민음사 판에서 개작한 내용에 해당한다.)
2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마침표 넣음
길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나를 멈춘 자리에 다시 우리들을 멈춘 자리에
웅크린 이슬로 여물게 한다 다시 멈추게 한다.
모든 길은 막막하고 어지럽다 그러나 막막하고 어지럽지만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이 보이고 전신이 우는 들,
지워진 길을 인도하는 풀이 보이고 (* 이 행 전체를 지움)
들이 기르는 한 사내의 그 들이 기르는 한 사내의
편애와 죽음을 지난 偏愛와 죽음을 지나
먼 길의 귀 속으로 한 발자국씩
떨며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을 사람들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3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숲이 깊을수록 길을 지워버리는 들에서 (*이 행을 지우고 다음 행을 띄움)
무엇인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 속에서
호올로 나부끼는 호올로 나부끼는 옷자락은
몸이 작은 새의 긴 그림자는
무엇인가 나에게 다가와 나를 껴안고
나를 오오래 어두운 그림자로 길가에 세워두고 길가에 세워두는 것은 (* 이 행은 완전히 바뀜)
길을 구부리고 지우고
그리고 무엇인가 멈추면서 나아가면서
저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나를 여기에서 떨게 하는 것은
(그리고 무엇인가 단 한 마디의 말로
나를 영원히 여기에서 떨게 하는 것은
* 행을 뛰우고
멈추면서 그리고 나아가면서
나는 저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 이 구절은 폴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 의 <해변의 묘지> 마지막 연에 나오는 시구이다.
Le vent selve Il faut tenter de vivre
(The wind is rising! We must try to live!)
바람이 인다 … 살려고 해봐야지!
가없는 대기(大氣)가 내 책을 열었다 닫는다.
파도는 물안개로 부서져 바위에 용솟음친다!
날아올라라, 온통 눈부신 책장(冊張)들이여!
무너뜨려라, 파도여! 무너뜨려라 흥겨운 물결로
작은 돛배들이 모이를 쪼고 있는 이 고요한 지붕을! - 김화영 번역
비가 와도 젖은 자는 - 순례 1 / 오규원
강가에서 (강가에서) * 이 구절을 송두리째 뺌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마침표 넣음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오늘도)를 뺌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시간은 / 우리가 떠난 뒤에는 *행을 나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 魚族은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 폴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 살아봐야겠다’ 라는 구절보다 더욱 유명해진 아포리즘이다.
이 한 구절만 놓고 본다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있어 때로 이보다 더 큰 위로의 말이 또 있을까 싶다.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년
전두환 독재의 출범과 함께 졸업정원제라는 허울 아래 대학정원이 곱절 이상 늘어나는 바람에 각 대학에서는 300~500명 심지어는 800명을 수용하는 대강당에서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각 학과별로 가나다라 순으로 고정 좌석이 정해지고 출결을 거의 확인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종합관 101호실, 내 옆자리에는 항시 내가 ‘야마꼬(꼬마야)’ 라 부르는 깜찍한 그녀가 앉아 있었다. 철학개론 시간이었던가, 내 손에 들린 오규원의 시집을 빼앗아 한참 뒤적이던 그녀가 나에게 펼쳐 보였던 시가 바로 이 시였다.
‘그래 요놈아, 물무레 그 한 잎 같은 여자가 바로 너라는 거지’
그리고 다음해던가, 교내 백일장에서 그녀가 윤동주 상을 타는 일이 벌어지고 그녀는 박두진 시인이 심사했던 마지막 백일장의 주인공이 된 셈이었다.
내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감행하는 바람에 우리는 졸업을 따로 하고 모두 국어 선생이 되어 일 년에 한 두 번 여름 겨울 방학을 기해 동기 모임에서 간혹 만나다가, 거의 10여 년 동안 동기회가 무산되었다가 캠퍼스커플로 부부가 된 동기네 반포의 아파트에서 재결성을 갖던 날, 그녀를 만나 무심코 던진 말, “한선생, 오규원이가 엊그제 죽었어!” 그녀는 무슨 생뚱맞은 말이냐는 듯, “오규원이가 누구야?” ‘야 이 사람아, 교내 백일장에서 윤동주 상을 탄 사람이 오규원이도 모르면 어떡해!’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어 나만 괜히 겸연쩍어 한 일이 있었다.
물론 ‘모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 못 하는 것’ 이라 해야 맞다.
‘누군가로부터 잊혀진다는 것이 다만 슬프고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자꾸 쓰는지도 모른다.
오규원의 시가 한 번이라도 수능에 출제가 되었다면 그녀는 결코 그를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니 다행스럽게도 오규원의 시는 살아생전에 수능에 등장하지 못했으며, 내가 교사직을 집어던지기 직전인 나의 마지막 수능에 해당하는 2013년도 수능(2012.11.8)에 출제되었다. 수능과 상관없이 살았던 나와는 달리 아직 현직에 충실한 그녀는 이제 오규원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을지도 모르겠다.
한잎의 여자 2 / 오규원
- 언어는 겨울날 서울 시가를 흔들며 가는 아내도 타지 않는 전차다.
나는 사랑했네 한 女子를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원 주고 바지를 사 입는 女子, 남대문 시장에서 자주 스웨트를 사는 女子, 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 원에 사는 女子, 단이 트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女子, 그 여자를 사랑했네, 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女子, 라면이 먹고 싶다는 女子, 꿀빵이 먹고 싶다는 女子, 한 달에 한 두 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女子, 손발이 찬 女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브레지어를 하는 女子.
가을에는 스웨트를 자주 걸치는 女子, 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女子, 화가 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女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女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 실크스카프가 좋다는 女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女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女子, 더러 멍청해지는 女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 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女子.
한잎의 여자 3 / 오규원
- 언어는 신의 안방 문고리를 쥐고 흔드는 건방진 나의 폭력이다.
내 사랑하는 女子, 지금 창 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 커피 같은 女子, 그레뉼 같은 女子, 모카골드 같은 女子, 창 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 그녀도 뒤집히며 엉덩이가 짝짝이가 되네. 오른쪽 엉덩이가 큰 女子, 내일이면 왼쪽 엉덩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女子, 줄거리가 복잡한 女子, 소설 같은 女子, 표지 같은 女子, 봉투 같은 여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자주 책 속 그녀가 꽂아놓은 한 잎 클로버 같은 女子, 잎이 세 개이기도 하고 네 개이기도 한 女子.
내 사랑하는 女子, 지금 창 밖에 있네. 햇빛에는 반짝이는 女子, 비에는 젖거나 우산을 펴는 女子, 바람에는 눕는 女子, 누우면 돌처럼 깜깜한 女子, 창 밖의 모두는 태양 밑에 서 있거나 앉아 있네. 그녀도 앉아 있네. 앉을 때는 두 다리를 하나처럼 붙이는 女子, 가랑이 사이로는 다른 우주와 우주의 별을 잘 보여 주지 않는 女子, 앉으면 앉은, 서면 선 女子인 女子, 밖에 있으면 밖인, 안에 있으면 안인 女子, 그녀를 나는 사랑 했네. 물푸레 나무 한잎처럼 쬐그만 女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 『사랑의 감옥』 문학과지성사 1991년
<한잎의 여자 1, 2, 3> 이 각기 씌어진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한 잎의 여자> 가 실린 시집은 1978년판『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이고, 그 <한 잎의 여자>가 그대로 1991년판『사랑의 감옥』에 다시 실리며 ‘언어는 추억에 걸려있는 18세기형 모자다’ 라는 부제를 달고서 <한잎의 여자 2> <한잎의 여자 3>과 함께 연작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에 ‘한 잎의 여자’ 는 대중들에게 꽤나 알려지면서 ‘한잎의 여자’ 가 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통속적인 <한잎의 여자 2> 는 노영심이 작곡하고 변진섭이 노래한 <희망사항> 으로 패러디 되었으니, 1989년 변진섭 제2집 앨범에 실린 이 노래는 그 당시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프란츠 카프카 / 오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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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드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 위에 방점이 찍혀 있음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문학과지성사 1978년
가 나 다 라 / 오규원
가까운 곳에, 꿈 옆에, 꿈의 기집 권태가 누워 있습니다. 노란 신비가 자라는 논밭.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오늘도 어린 것들이 권태의 젖을 빨며 자라고 있습니다.
나일강은 여기에서 먼 곳. 그러나 여기까지 출렁출렁 들리는 물결 소리. 먼 곳과 가까운 곳, 이 언어의 관념을 수정하라고 아침마다 풍성한 사건을 들고 찾아오는 역사 앞에서
다락방, 다락방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습기 찬 역사의 뒤뜰, 그곳에 재고량이 충분한 고독. 필요한 사람은 없으신지요?
라면 한 봉지에 45원.
그러나 45원짜리 고독은 이 땅 위에는 없습니다.
*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년
나는 왜 이 시를 기억하였고 오규원의 시집에서 이 시를 찾다가 찾지 못하자, 혹시 황지우의 작품이였던가 하며 나의 끔찍하리만큼 정확한 기억을 스스로 의심하였던가?
물론 황지우는 오규원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일찍이 이상이 ‘무슨 미친놈의 잠꼬대냐!’ 라는 비난을 받으며 감행했었던 현대시의 꾸데타를, 반세기가 지난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가 출범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황지우는 그 악몽의 시대를 해체하는 방법론으로 다시금 본격적인 해체시를 들고 창비의 김정환과 함께 문지를 통해, 그 옆동네 민음사의 김수영문학상을 꿰어차며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분명 오규원은 소심하고 조심스럽고 회의적이고 끝없이 의심(반성)하였음에 비해 황지우는 감옥행을 기꺼이 결심한 듯 훨씬 과감하고 실랄하고 요설적이고 난삽하였고 거침없었다. 그러나 전대에 그리고 동시대에 오규원이 없었다면 이후의 황지우도 장정일도 유하도 없었을 것이라 감히 나는 단언할 수 있다.
龍山에서 / 오규원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믿고 싶어 못 버리는 사람들의
무슨 근사한 이야기의 幻想밖에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意志와 理想 속에 자라며 흔들리듯
그대의 사랑도 믿음도 나의 詐欺도 詐欺의 확실함도
확실한 그만큼 확실하지 않고
근사한 풀밭에는 잡초가 자란다.
확실하지 않음이나 사랑하는 게 어떤가.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詩에는
남아 있는 우리의 生밖에.
남아 있는 우리의 生은 늘 우리와 만난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믿고 싶지 않겠지만
조금도 근사하지 않게.
*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년
이 시대의 순수시 / 오규원
자유에 관해서라면 나는 칸트主義者입니다. 아시겠지만, 서로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나의 자유를 확장하는, 남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몰래(이 점이 중요합니다) 나의 자유를 확장하는 방법은 나는 사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게 하는 사랑, 그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이렇게 자유를 사랑하므로, 世上의 모든 자유도 나의 품속에서 나를 사랑 합니다. 사랑으로 얻은 나의 자유. 나는 사랑을 많이 했으므로 참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주택복권을 사는 自由, 주택복권에 미래를 거는 自由, 금주의 운세를 믿는 自由, 운세가 나쁘면 안 믿는 自由, 사기를 치고는 술 먹는 自由, 술 먹고 웃어 버리는 自由, 오입하고 빨리 잊어버리는 自由.
나의 사랑스런 自由는 종류도 많습니다. 걸어다니는 自由, 앉아다니는 自由(택시 타고 말입니다), 월급 도둑질 하는 自由, 월급 도둑질 상사들 모르게 하는 自由, 들키면 뒤에서 욕질하는 自由, 술로 적당히 하는 自由, 지각 안하고 출세 좀 해볼까 하고 봉급 봉투 털어 기세 좋게 택시 타고 출근하는 自由, 찰칵찰칵 택시 요금이 오를 때마다 택시 탄 것을 후회하는 自由,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남은 몇 개의 동전으로 늠름하게 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는 自由.
이 世上은 나의 自由투성이입니다. 사랑이란 말을 팔아서 공순이의 옷을 벗기는 自由, 시대라는 말을 팔아서 여대생의 옷을 벗기는 自由, 꿈을 팔아서 편안을 사는 自由, 편한 것이 좋아 편한 것을 좋아하는 自由, 쓴 것보다 달콤한 게 역시 달콤한 自由, 쓴 것도 커피 정도면 알맞게 맛있는 맛의 自由.
世上에는 사랑스런 自由가 참 많습니다. 당신도 혹 자유를 사랑하신다면 좀 드 릴 수는 있습니다만.
밖에는 비가 옵니다.
시대의 純粹詩가 음흉하게 不純해지듯
우리의 장난, 우리의 언어가 음흉하게 不純해지듯
저 음흉함이 드러나는 의미의 迷妄, 무의미한 純潔의 몸뚱이, 비의 몸뚱이
……
조심하시기를
무식하지도 못한 저 수많은 純潔의 몸뚱이들.
*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문학과지성사 1978년
우리 시대의 순수시(純粹詩) / 오규원
1
밤 사이, 그래 대문들도 안녕하구나
도로도,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차의 바퀴도, 차 안의 의자도
光化門도 덕수궁도 안녕하구나
어째서 그러나 안녕한 것이 이토록 나의 눈에는 생소하냐
어째서 안녕한 것이 이다지도 나의 눈에는 우스꽝스런 풍경이냐
文化史的으로 본다면 안녕과 안녕 사이로 흐르는
저것은 保守主義의 징그러운 미소인데
안녕한 벽, 안녕한 뜰, 안녕한 문짝
그것 말고도 안녕한 창문, 안녕한 창문 사이로 언뜻 보여주고 가는 안녕한 性
……
어째서 이토록 다들 안녕한 것이 나에게는 생소하냐
2
진리란, 하고 누가 점잖게 말한다
믿음이란, 하고 또 누가 점잖게 말한다
진리가, 믿음이 그렇게 말해질 수 있다면
아, 나는 하품을 하겠다
世上엔 어차피 별일 없을 테니까
16세기나 17세기 또는 그런 세기에 내가 살았다면
나는 그 말에 얼마나 감동했을 것인가
淸進洞도, 그래 밤 사이 안녕하구나
안녕한 건 안녕하지만 아무래도 이 안녕은 냄새가 이상하고
나는 나의 옷이 무겁다 나는
나의 옷에 묻은 먼지까지 무게를 느낀다
점잖게 말하는 점잖은 사람의
입 속의 냄새와
아침마다 하는 양치질의 무게와 양치질한
치약의 양의 무게까지 무게를 느낀다.
이 무게는 안녕의 무게이다 그리고
이 무게는 안녕이 독점한 시간의 무게
미래가 이 世上에 있었다면 미래 또한
어느 친구가 독점했을 것을
이 무게는 미래가 이 世上에 없음을 말하는 무게
그러니까 이건 괜찮은 일—
어차피 이곳에 없으니 내가 또는
당신이 미래인들 모두 모순이 아니다
그대 잠깐 발을 멈추고, 그대 잠깐
사전을 찾아보라 保守主義란
현상을 그대로 보전하여 지키려는 主義
그대 잠깐 발을 멈추고, 그대 잠깐
사전을 찾아보라 아침의 무덤이 무슨 말 속에 누워 있는지
말이 되든 안 되든 노래가 되든
안 되는 중요한 것은 진리라든지 믿음이라는
말의 옷을 벗기는 일
벗긴 옷까지 다시 벗기는 일
나는 나의 믿음이 무겁다
정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敗北를 승리로 굳게 읽는 방법을
믿음이라 부른다 왜 敗北를
敗北로 읽으면 안 되는지 누가
나에게 이야기 좀 해주었으면
그 믿음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여,
나에게 화를 내시라
불쌍한 내가 혹 당신을 위로하게 될 터이니까
3
어둠 속에 오래 사니 어둠이 어둠으로 어둠을 밝히네. 바보, 그게 아침인 줄 모르고. 바보, 그게 저녁인 줄 모르고.
진리는 진리에게 보내고
믿음은 믿음에게 안녕은
안녕에게 보내고 내가 여기 서 있다
약속이라든지 또는 기다림이라든지 하는 그런 이름으로
여기 이곳의 주민인 우편함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비어서 안이 가득하다
보내준다고 약속한 사람의 약속은
오랫동안, 단지 오랫동안 기다림의 이름으로 그곳에 가득하고
보내고 안 보내는 건 그 사람의 자유니까
남은 것은 우편함 또는 기다림과 나의 기다림
또는 기다리지 않음의 자유
거리에는 바람이 바람을 떠나 불고
자세히 보면 나를 떠난 나도 그곳에 서 있다
유럽의 純粹詩란 생각건대 말라르메나
발레리라기보다 프랑스의 행복 手帖
말라르메는 말라르메에게 보내고 나는 淸進洞에 서서
발레리는 발레리에게 보내고
나는 淸進洞에 서서
우리나라에게 純粹詩, 純粹詩하고
환장하는 이 시대의 한 거리에 내가 서서
4
비가 온다. 오는 비는 와도
오는 도중에 오기를 포기한 비도
비의 이름으로 함께 온다.
비가 온다. 오는 비는 와도
淸進洞도, 淸進洞의 해장국집도 안녕하고
서울도 안녕하다.
안녕을 그리워하는 안녕과 안녕을 그리워했던 안녕과 안녕과 영원히 안녕을 그리워할 안녕과, 그리고 다시 안녕을 그리워하는 안녕과 안녕을 다시 그리워할 안녕이 가득찬 거리는 안녕 대문에 붐빈다. 그렇지, 나도 인사를 해야지. 안녕이여, 안녕 保守主義여 현상유지주의여, 밤 사이 안녕, 안녕.
여관에서 자고 해장국집 의자에 기대앉아
이제 막 아침을 끝낸
이 노골적으로 안녕한 안녕의 무게가
비가 오니 비를 떠나 모두 저희들끼리 젖는데
나는 나와 함게 아니 젖고
안녕의 무게와 함께 젖는구나.
그래, 인사를 하자. 안녕이여
안녕, 빌어먹을 보수주의여. 안녕.
*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문학과지성사 1981년
버스정거장에서 / 오규원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내가 무거워
시가 무거워 배운
작시법을 버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견딘다
경찰의 불심 검문에 내미는
내 주민등록증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주민등록증 번호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안 된다면 안 되는 모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나는 어리석은 독자를
배반하는 방법을
오늘도 궁리하고 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며
오지 않는 버스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
시를 모르는 사람들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 되나
*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문학과지성사 1987년
꽃의 패로디 /- 오규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치아, 개밥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명사나 수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문학과지성사 1981년
빈자리가 필요하다 / 오규원
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빈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문학과지성사 1981년
분명 그는 ‘이 시대의 순수시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화두와 평생 싸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유독 70년대와 80년대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한국시는 참여시 나아가 민중시의 시대였다. 그들은 김수영 시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내세워 참여시를 부르짖었고 신동엽만큼 역사의 뿌리를 천착하지도 못한 채 그를 내세워 민중시를 부르짖었다.
이제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하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학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김수영「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에서
김수영, 그의 시정신은 영원히 살아있지만 그를 들먹이던 가짜들은 모두 무대 뒤로 사라졌다. 한국시의 역사적 지형도를 그리자면 오규원 시는 분명 김수영과 김춘수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리라. 그의 모든 시편들은, 김수영과 김춘수 사이에서, 그가 지껄이고 때론 절규했던,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물 나는 잠꼬대’ 였으리라.
1980년대 제5공화국의 비례대표 국회위원이 된 김춘수와 그의 시를 모두가 외면했지만, 오직 오규원만이 살아 있는 그의 시전집을 내는 데 그토록 공을 들였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만물은 흔들리면서 - 속 ․ 순례 1 / 오규원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數萬)의 잎은 제각기
잎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들판의 고독 들판의 고통
그리고 들판의 말똥도
다른 곳에서
각각 자기와 만나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비로소 깨닫는 그 것
우리도 늘 흔들리고 있음을.
* 『사랑의 기교』 민음사 1975
모든 시인들의 그 수많은 시들은 오직 절창(絶唱), 대표시 한 편을 쓰기 위한 습작이다. 이 말은 100% 맞는 사실이다. 소월(素月) 시 전체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말에 수긍하리라. 그리고 동주(東柱)는 참 행복한 시인임을 인정할 것이다. 그 많은 애송시, 명편들을 남기고 갔으니…
감히 말하건대 오규원이 쓴 그 수많은 시편들도 오직 이 한 편을 쓰기 위한 습작이었으리라. 이제 독자들도 눈치 챘겠지만 내가 오규원을 추모하는 이 글을 쓰면서 맨 앞에 올린 시도 바로 이 시였다. 그렇다면 오규원은 시 인생은 이 시 한편을 완성하기 위한 시작(詩作)의 긴 여정이었던가?
내가 20대 초반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다 좋은데 그놈의 ‘말똥’ 이 문제였다. 그 말똥을 제발 치웠으면 했다. 어딘지 모르게 근엄하지 못한 경박함으로 비춰졌으니, 그 시절 나는 안타깝게도 ‘애늙은이’ 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50후반인 지금 나는 그 ‘말똥’ 이 지극히 향기롭게 느껴지니 이 어찌된 일인가? 말똥으로 인하여 이 시는 한갓 관념시로 굴러 떨어지지 않았으니 ‘말똥’ 이야말로 이 시를 살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단어임에 틀림없질 않은가. 평생 언어의 감옥에 갇혀 말을 만지며(절대로 갖고 놀았다는 의미가 아님) 끝없이 회의하였던 시인이자 언어철학자였던 오규원, 그가 마지막 도달한 곳이 ‘날 이미지’ 였다는데, 생각느니 그것은 바로 ‘구체성의 획득’ 과 다름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오규원 시전집』은 제1권이 2002 살아생전에 나왔으며 제2권은 그가 작고한 뒤인 2017년에 나왔으니, 이 시는 분명 제1권에 들어가 있을 것인데 문학과지성사에서는 과연 어느 것을 텍스트로 삼았는지 궁금하다. 바라건대 그리고 이후 개정판을 내게 된다면 이 시의 개작 과정을 분명히 소상하게 밝혀 주었으면 한다.
오규원에 대한 나의 이 어설픈 평문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독서의 기억을 따라간 것일 뿐이다. 1991년 에 나온 《사랑의 감옥》 과 1995년에 나온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는 시집은 사놓고도 거의 읽질 못했으며, 이후에 나온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년,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2005년, 유고시집《두두》2008년 은 갖고 있질 않거나 서재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릉’ 이라는 자연으로 들어간 뒤 생태주의자로 변모한 그의 시들을 읽지 못하였다. 따라서 나의 이 어설픈 평문은 나의 대학시절, 오규원의 전반기 시 인생에 국한되어 있는 셈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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