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에는 모두가 ‘동백이’ 본다고 여념이 없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청순가련형과 오뚝이형을 섞어 놓아선지 대한민국 아저씨들은 주인공 공효진(동백이 역)의 매력에 푹 빠졌으며, 윤동주(尹東柱)의 일대기를 극화한 영화《동주》에서 ‘맑고 거룩한 청년’ 에서 이제는 약간 푼수로 변신한 강하늘(용식이 역)의 무작정 달려가는 저돌적(猪突的) 사랑에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새로운 로망을 꿈꾸게 된 것이다. 동백이가 운영하는 술집 <까멜리아 Camellia> 가 있는 바닷가 마을 옹산이 실제로 어디인지, 일제시대의 가옥들이 나오는 걸로 봐서 아마 군산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예상과 달리 포항 구룡포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포항에도 동백숲이 있을까?
동백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로서 다른 꽃들이 다지고 난 추운 계절에 홀로 피어 사랑을 듬뿍 받는 꽃이다. 겨울에는 수분(受粉)을 도와줄 곤충이 없어 향기보다는 강한 꽃의 색으로 동박새를 불러들여 꽃가루받이를 한다. 주로 섬에 많은데 동으로는 울릉도, 서로는 대청도까지 올라간다. 육지에서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 춘장대 것이 가장 북쪽이고 내륙에서는 전북 고창의 선운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들이 가장 북쪽에 위치한 것이다.
백과사전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울릉도에도 동백이 있으니 포항에도 분명 동백이 있을 것이다. 동백섬으로는 여수 오동도가 유명하지만, ‘동백’ 하면 누가 뭐래도 고창 선운사의 동백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지금쯤이면 선운사 뒤안 대숲에는 동백이 한창일 게다.
오늘은 동백꽃과 관련된 시와 노래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아무래도 미당(未堂)의 ‘선운사 동백꽃’ 이 첫 페이지를 차지할 것이다.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 서정주
선운사(禪雲寺) 고랑으로
선운사(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 《동천(冬天)》1968년
<선운사 골짜기로 그 유명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때가 일러 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헛걸음 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동구밖 막걸리집에 들렀더니 그 주인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 속에 작년의 동백꽃이 여직(아직도) 남아,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아 있더라> 는 짧은 이야기이다.
이 시를 버팅기고 있는 두 개의 시어는 ‘아직’ 과 ‘오히려’ 라는 두 부사이다. 그러니 이 시는 ‘아직과 아직도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 - 때가 일러 아직 피지 아니한 동백꽃’ 과 ‘아직 남아 있는 과거 - 육자배기 가락 속에 남아 있는 작년의 동백꽃’ 이라는 두 시제 사이에 현실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막걸릿집 여인네의 허스키한 육자배기 가락에서 동백꽃을 찾아내고야 마는 시인의 감수성으로 인해 이 여섯 줄의 밋밋한 진술이 마침내 시로 탄생하는 것이다.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년)
잘은 모르지만 최영미 시인은 미당 서정주의 시를 패러디 또는 원용함으로 자신의 시업(詩業)을 시작한 듯하다. 이 시 <선운사에서> 도 그렇고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명도 분명 ‘잔치는 끝났더라 /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서정주의 <행진곡> - 조선일보 폐간 기념시(당시 조선일보 학예부장이던 김기림이 미당에게 전보를 쳐서 청탁했으나 그러나 미처 그 전보를 접하지 못한 미당이 뒤늦게 이 시를 썼으니 실은 실리지 못한 기념시인 셈이다)의 제목을 따 왔으리라 충분히 짐작이 간다. 미당과는 분명 다른 서정의 시대에 사는 시인으로서 나름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리라.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최영미 시인의 이 시를 비롯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실린 그의 초기 시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시니컬(cynical)’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최근래 그는 다시 우리 사회 이슈(issue)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문단의 타락한 권력을 향해 미투(METOO-성폭력고발운동)의 물꼬를 연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며칠 전 그는 2005년에 발간한 시집 《돼지에게》를 다시 개정증보판으로 내면서 또 다시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나는 늦게나마 이 시집을 구입해 꼼꼼히 읽어 볼 작정이다.
위 시에서 시인은 ‘꽃이 피는 건 힘들지만 지는 건 잠깐이더라’ 고 말하고 있다. ‘잊는 것 또한 그처럼 순간이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꽃이 피는 건 쉬워도 잊혀지는 건 영영 한참이더라’ 고 젊은날의 사랑의 아픔과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즈음의 시인은 독자들로부터 잊혀지는 것이 너무 순간이여서 많이 힘들어하는 듯하다. 나의 서가에는 그의 이름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한 시모음집들이 꽂혀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튼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해야 하듯 시인은 자신의 시로써 말해야 한다. 다시금 그의 시샘에 우리의 갈증을 적셔줄 맑고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동백꽃 / 문정희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 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斬首)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點字)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동백꽃의 낙화는 망나니의 칼날에 목이 댕강 떨어지는 참수(斬首)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동백을 ‘사무라이의 꽃’ 이라 한다. 그 꽃말 속에는 칼의 시대를 살았던 일본인들의 모순된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한 칼에 산목숨을 끝장내는 사무라이들의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과, 구차하게 연명하기를 포기하고 기꺼이 죽음을 맞는 사무라이들의 기개에 대한 흠모를, 동시에 담고 있는 말인 것이다. ‘외경(畏敬)’ 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상반된 감정의 교착(交着)을, 일본인들의 ‘두려움이 숨어 있는 지나친 예의 바름’ 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정희 시인의 이 시를 신동엽 시인이 살아와 다시 읽는다면, 한 세기 전 이 땅에서 일시에 아우성으로 일어섰다가 백설 위에 검붉은 선혈(鮮血)을 흘리며 스러져간 동학군의 처절한 죽음을 생각할 것이다. 생각건대 지부상소(持斧上疏 - 일명 ‘도끼상소’)를 올린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이 꼿꼿빳빳 하게 죽음을 맞은 대마도, 그곳에도 해마다 동백꽃은 분명 피고 질 것이다.
짧은 시 두 편을 또 소개한다.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 가장 눈부신 꽃은 /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 문정희 〈동백〉
떨어져 누운 꽃은 / 나무의 꽃을 보고 / 나무의 꽃은 /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 그대는 내가 되어라 / 나는 그대가 되리
- 김초혜 〈동백꽃 그리움〉
흔히들 동백꽃은 두 번 피는 꽃이라고들 말한다. 나무 위에서 한 번 피고, 땅에 떨어져서 또 한 번 더 핀다는 것이다. 모든 꽃들이 필 때는 아름답지만 질 때 아름답기는 어렵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보다 오히려 분분히 바람에 휘날릴 때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뒤에도 아름다운 꽃은 없는데 유독 동백꽃만은 땅에 떨어졌어도 아름다우니 그것은 그 처절한 낙화가 이루는 비장미(悲壯美) 때문일 것이다. 분명 동백꽃은 그 아름다움을 장미에 견줄 수 있지만 장미가 갖지 못한 ‘비장미(非薔薇)의 아름다움’ 을 갖고 있다. 아마 문정희 김초혜 두 시인도 이를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다홍 치마를 뒤집어 쓰고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그 아리따운 삼천 궁녀가 자꾸 생각키는 것이다.
선운사 - 송창식 작사/작곡/노래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간주 / 에코 -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 1990년 송창식 골든 제3집
여자에게 버림받고 /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 맨발로 건너며 /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 그까짓 여자 때문에 / 다시는 울지 말자 / 다시는 울지 말자 / 눈물을 / 감추다가 / 동백꽃 붉게 터지는 / 선운사 뒤안에 가서 / 엉엉 울었다
- 김용택 <선운사 동백꽃>
가수 송창식의 그 유명한 <선운사> 라는 노래와, 김용택 시인의 1998년《그 여자네 집》에 실려 있는 <선운사 동백꽃> 이라는 시이다. 노래는 젊은 시절 누구나 한두 번쯤 흥얼거렸던 명곡이라면, 시는 시인의 명망에 비해 조금은 수준이 떨어지는 ‘젊은날의 사랑 고백’ 이랄 수 있겠다. 시인 김용택(1948년생)은 가수 송창식(1947년생)과 거의 동갑내기일 것이다. 노래가 만들어진 시점을 따진다면 송창식의 노래가 먼저이고 김용택의 시가 뒤이겠지만, 그 내용을 보자면 김용택의 이런 ‘시린사랑(失戀)’ 을 알고 송창식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그 순서가 맞을 듯하다. 하여튼 ‘선운사 동백꽃’ 을 두고는 김용택은 송창식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김용택의 시를 별도의 장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선운사 동백꽃이 하 좋다길래 - 정태춘 작사/작곡/노래
어디 숨어 무엇들 허는고?
껄껄껄 나아 허어 허어 허어얼
그 골짝 동백나무 잎사구만 푸르고
대숲에 베인 칼바람에 붉은 꽃송이들이 뚝뚝
앞산 하늘은 보재기만 하고 속세는 지척인데
막걸릿집에 육자배기 하던 젊은 여잔 어딜 갔나
마하 반야 바라밀다 아아함
옴 마니 마니 마니 오오홈
밥 때 놓쳐서 후줄한데 공양 여분이 없으랴만
요사채 굴뚝이란 놈이,
- 잘 가거라 !
<얼후/기타/목탁 반주>
이따우로 살다 죽을래?
낄낄낄 나아 허어 허어 허어얼
그 골짝 동백나무 잎사구만 푸르고
재재재 새소리에 후두둑 꽃잎 털고
줄포만의 황해 밀물 소금바람도 잊아뿌리고
도회지 한가운데서 재미나게 사시는데
수리 수리 마하 수리 아아함
옴 두루 두루 두루 오오홈
칠천 원짜리 동백 한 그루 내 아파트 베란다에서 낙화하시고
느닷없는 죽비소리로,
- 게으르구나 !
옴 마니 마니 마니 오오홈
옴 두루 두루 두루 오오홈
선운사에 동백꽃이 하 좋다길래 서울로 모셔다가
오래 보자 하였더니,
- 할(喝) !
이 노래를 처음 들으면 ‘무슨 노래가 저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반복해 들어보시랴. 이 파격적인 노래가 엄정한 설계도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각 소절을 구성하는 노래의 형식이나 각 파트를 장악하고 있는 악기의 배치, 심지어 진언(眞言, 呪文, mantra)의 삽입까지 치밀한 계획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마치 도마뱀의 꼬리를 내리치는 듯한 마지막 결말 처리가 압권인 것이다. 정태춘의 초기작으로 1980년에 나온 <탁발승의 노래> 가 그 외피(外皮)만 불교를 입고 있다면, 이 <선운사 동백꽃 ~ > 은 체화(體化)된 선(禪)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가!
무릇 노래는 이래야 한다. 자기 삶의 무게가 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한갓 제스처(몸짓, 흉내)에 불과한 것이다. 이 노래는 분명 한수 정태춘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이 시대의 화두(話頭)인 것이다.
물론 <탁발승의 노래> 도 흔히 대표적인 불교 가요라고 하는 삿갓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며 부른 김태곤의 <송학사> 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구체성-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이 노래는 일찍이 함세덕의 <동승> 전편을 본 것과 다름없는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탁발승의 노래> 에 나오는 주인 ‘한수’ 는 실제로 그의 법명이라고 한다.
시인 이제하가 작사 작곡하고 직접 노래도 부른, 조영남의 <모란 동백> 에 대한 이야기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에서 동백을 소재로 한 가장 오래된 작품인 이규보의 한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어설픈 글을 닫을까 한다.
동백화(冬栢花) / 이규보(李奎報)
桃李雖夭夭 (도리수요요) 복사꽃 오얏꽃이 곱고 무성하다지만
浮花難可恃 (부화난가시) 그 부박한 꽃 어찌 믿으리
松柏無嬌顔 (송백무교안) 소나무 측백나무는 고운 맵시 없지만
所貴耐寒耳 (소귀내한이)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긴다
此木有好花 (차목유호화)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 있어
亦能開雪裏 (역능개설리) 능히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네
細思勝於栢 (세사승어백)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잣나무보다 낫네
冬栢名非是 (동백명비시)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도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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