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에 피지 아니한 꽃이 어디 있으랴
與靑山何者是 (세여청산하자시) 세속과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春光無處不開花 (춘광무처불개화) 봄빛에 피지 아니한 꽃이 어디 있으랴
傍人若問惺牛事 (방인약문성우사) 누가 만일 나의 일을 묻는다면
石女心中劫外歌 (석녀심중겁외가) 돌계집 마음속 겁 밖의 노래라 하리
멋글씨작가(캘리그라퍼) 강병인 선생로부터 입춘첩(立春帖)을 보내겠다는 전화를 받고, 내년에는 좋은 한글 입춘방 글귀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약속의 말을 전하며, 머리 속에 언뜻 떠오르는 입춘방을 생각해 보았다.
몇 년 전 어느 봄날에 집안의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으로부터 <春光無處不開花(춘광무처불개화)>라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어, 인터넷에 찾아보았더니 경허(鏡虛惺牛) 선사(禪師)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해마다 나는 <끽다거(喫茶去)> 안 선생님(心齋 安于燮)께서 정성스레 쓰신 <立春大吉(입춘대길) 萬事如意(만사여의)> 라는 입춘방을 받잡아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누구든지 복 받고 싶고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졌으면 하겠지만, 한편으로 그리 되었다가는 세상이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 자식이 시험에 붙으려면 어느 집 자식은 시험에 떨어져야 하듯이, 내가 웃자면 니가 울어야 하는 일도 있는 것이 우리네 세상살이이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발원을 하더라도 마음을 바로 써야 하는 것이다.
立春大吉(입춘대길) 建陽多慶(건양다경) - 이 여덟 글자가 우리나라 입춘방의 공식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건강하고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건양다경(建陽多慶)만큼 대길(大吉-대끼리!)인 것은 없는 것이다. 십분(十分) 양보하여 ‘아프지 않고 궂은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갖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꽃길만 걸어라!>라는 축복의 인사가 유행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얼마나 철없고 천박한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남을 위해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도 진심이 담기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란 흔히 ‘새옹지마(塞翁之馬)’ 라고 말하듯이, 오늘 웃으면 내일 울 일이 기다리고 있으며, 오늘 울면 내일 웃을 일이 오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꽃길만 걷겠다는 것인가? ‘나는 가시밭길을 걸어도 너는 꽃길만 걸어라’ 는 자기희생의 말이라면 또 모를까.
옛 사람들은 소원을 빌 때에도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였다. 왜냐, ‘내가 이런 소원을 빌 자격이 있는가.’ 하는 자기반성의 마음이 먼저 자리했기 때문이다. 정화수(井華水)를 떠다놓고,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고 기도하는 것은 먼저 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재계(齋戒)하는 행위인 것이다.
기도는 절대자이신 하느님에게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떼쓰는 일이 아니다. 비는 사람 뜻대로 다 이루어 준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나의 이 기도로 인하여 누군가는 고통 받고 누군가는 눈물 흘릴 수도 있다면 그런 기도는 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도는 하느님 아니라 그 누구도 절대 들어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종교인이라면 신앙이 깊어질수록 ‘다만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는 말이 기도 끝에 따라붙기 마련이다.
며칠 있으면 입춘이다. 머지않아 얼었던 땅이 녹으며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 게 있을까? 말 그대로 만물을 소생시키는 것이 봄볕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미련곰탱이는 제일 맛있는 곰취부터 찾아 먹을 것이다. 봄빛은 곰돌이도 곰취나물에게도 차별 없이 골고루 비춘다. 두릅을 꺾으러 산에 들어가 멧돼지에게 들이받쳐 벼랑에 떨어져 죽더라도, ‘나는 모르네.’ 하는 것이 조물주가 뭇 생명에게 내리는 절대 평등의 사랑인 것이다.
온 누 리 에 / 봄 빛 가 득
개울가 돌계집이 부르는 봄노래는 내 알 바 아니로되,
오로지 내가 생각하는 내년도의 입춘방은 바로 이것이로다.
* 자료에 따라서는 위 선시에서 ‘春光’ 이 ‘春城’ 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 ‘石女’ 는 속세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기(不器)의 여자’ 를 말하지만 선가(禪家)에서는 ‘도를 깨쳤으나 그 도를 말로 전할 수 없으니 벙어리 계집, 말 못하는 돌계집’ 이라 부른 것이다.
* ‘惺牛’ 는 선사의 법명(法名)으로 호(號)인 ‘鏡虛’ 와 함께 붙여 ‘鏡虛惺牛(경허성우)’ 라 칭하는 것이다.
* 경허선사 초상 - 후대인들이 추정하여 그린 것이다.
* 경허 선사 친필은 두보의 시 「小寒食舟中作」을 적은 것으로 원시와 달리 몇 군데 들고남이 있다.
小寒食舟中作 (소한식주중작) 한식 다음날 배 안에서 짓다 / 杜 甫 (두보)
佳辰强飮食猶寒 (가진강음식유한) 한식날 먹는 찬밥 썰렁하기 짝이 없어
隱几蕭條戴鶡冠 (은궤소조대갈관) 갈관 쓰고 쓸쓸히 안석에 기대어 보니
春水船如天上坐 (춘수선여천상좌) 봄 강물에 배는 하늘가에 앉은 듯하고
老年花似霧中看 (노년화사무중간) 흐린 눈에 비친 봄꽃 안개 속에 핀 듯하네
娟娟戱蝶過閑幔 (연연희접과한만) 나비들은 나풀나풀 장막 밖으로 날아가고
片片輕鷗下急湍 (편편경구하급단) 갈매기는 하나둘씩 여울 속으로 내려앉는데
雲白山靑萬餘里 (운백산청만여리) 흰 구름 푸른 산은 가없이 펼쳐 있어
愁看直北是長安 (수간직북시장안) 시름겨워 바라보는 북쪽은 장안이리라
小寒食(소한식) : 한식(寒食) 다음날, 청명절(淸明節) 하루 전날을 말한다. 이날도 불을 피우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 한식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고 청명(淸明)의 1~2일 앞이다. 불에 타 죽은 진(晉)나라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佳辰(가진) : 좋은 시절. 즉 명절(名節)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소한식(小寒食)을 가리킨다.
隱几(은궤) : 안석(案席), 궤안(几案)에 기대다. ‘隱’ 은 ‘기대다’ 는 뜻의 ‘倚(기댈 의)’ ‘靠(기댈 고)’ '憑(의지할 빙)‘ 과 같다. ‘几’ 는 두보가 귀하게 여긴 오피궤(烏皮几)를 말한다.
蕭條(소조) : 쓸쓸하다, 초췌하다.
鶡冠(갈관) : 초(楚)나라 은자 갈관자(鶡冠子)가 썼다고 하는 꿩의 일종인 멧닭의 깃으로 만든 모자로 은자(隱者)들이 쓰는 것이다.
娟娟(연연) : 펄럭이다, 나풀거리다. 나비가 날아가는 모양을 가리킨다.
片片(편편) : 점점이, 하나 둘 나뉘어.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閑幔(한만) : ‘開幔’ 으로 쓴 자료도 있다.
急湍(급단) : 강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급류를 가리킨다. 湍은 여울, 灘(여울 탄)과 같은 뜻이다.
直北(직북) : 정북(正北). 두보는 「秋興八首」란 시에서도 ‘直北關山金鼓振, 征西車馬羽書馳(바로 북쪽 관문 산에서는 징과 북이 울리고 / 토벌군의 마차는 장계를 지닌 채 급하게 내달리네)’ 라고 읊었다.
* 어떤 자료에는 2행의 戴鶡冠에 戴 대신에 帶로 적힌 것도 있으나 그 의미는 같다. 모자를 쓰거나 옷을 두르거나 할 때 쓰는 글자들이다.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도 두보의 이 시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 자신 이 시를 시조로 읊으며 그 흥취를 그대로 옮긴 시의화(詩意畵) 두 작품을 남겼으니 그 중의 하나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노년간화(老年看花)」이다.
김홍도가 지은 시조는 아래와 같다.
봄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 春水에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에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 此中의/老眼의/霧中인가
그리고 또 한 점은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와 함께 더욱 유명한 「선상간매도(船上看梅圖」이다.
「선상관매도(船上觀梅圖」- 지본담채(紙本淡彩) 164.0×76.0cm 개인소장(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63646&cid=46721&categoryId=46878)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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