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 (1) 일시적막(一時寂寞)을 택할지언정 만고처량(萬古凄凉)을 취하지 말라
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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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5 21:04 | 최종 수정 2021.01.0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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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 일시적막(一時寂寞)을 택할지언정 만고처량(萬古凄凉)을 취하지 말라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한때만 적막하나
권세에 빌붙어 사는 사람은 영원히 처량하다.
달인은 사물 밖의 진리를 깨닫고 죽은 후의 자신을 생각하느니
한때의 적막함을 겪을지언정 만고(萬古) 처량함을 취하지 말라.
- 棲守(서수) : 머물러 지키는 것. 棲 = 栖 (깃들이다, 머무르다, 거처를 정하다)
- 依阿(의아) : 빌붙어 아부(阿附)함.
- 達人(달인) : 도에 통달한 사람. 도가(道家)에서는 ‘至人(지인), 眞人(진인)’ 이라고도 부름. *달인을 굳이 번역하자면 ‘깨친이’ 가 될 것이나, 이 책에서는 달인을 그대로 달인으로 옮긴다.
- 物外之物(물외지물) : 현상계(現象界)의 배후에 있는 실재(實在)의 세계.
- 身後之身(신후지신) : 죽고 난 뒤의 명예와 평판, 또는 현실적 자아의 배후에 있는 본래적 자아.
- 寧(녕) : ‘편안하다/친정에 가다/어찌, 차라리’ 등 여러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차라리’ 의 뜻이다.
- 毋(무) : 無와 同字 * ‘~하지 말라’ 는 금지사(禁止辭) : 無, 毋, 勿, 莫, 非 등이 있음.
- 寧A~ 毋(勿)B~ : 차라리 A할지언정 B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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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당인보(學山堂印寶)』 중에서 - 『돌 위에 새긴 생각』(정민, 열림원)에서 재인용
士貪以死祿(사탐이사록) - 선비는 죽은 이후의 녹을 탐한다.
‘군자는 모름지기 죽은 뒤의 이름을 탐한다’ 는 말로, 이것이야말로 다른 생명체들이 갖지 못하고 인간만이 가진 바로 그 ‘역사의식(歷史意識)’ 이 아니겠는가?
기독교나 불교가 종교(宗敎)일 수 있는 것은 ‘죽은 뒤의 세계 - 사후세계(死後世界)’ 인 내세(來世)나 윤회(輪回)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동양사상인 유교나 도가사상이 이러한 내세관이 없으면서도 종교적인 영성(靈性)을 가질 수 있음은 오직 ‘죽은 뒤의 이름’ 을 생각하는 역사의식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학산당인보』는 명나라 말엽 장호(張灝)란 이가 옛 경전에서 좋은 글귀를 간추려 당대의 대표적 전각가들에게 새기게 해 엮은 책이다.
▶상촌 신흠 선생의 시 중에서
梅一生寒而不買香(매일생한이불매향) 桐千年老而恒藏曲(동천년노이항장곡)
매화는 일평생 춥게 지내어도 그 향기를 팔지 않으며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시 제 곡조를 지니고 있다.
원래 이 구절은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 선생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퇴계(退溪 李滉 1501~1570) 선생께서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7언시이다. (두 분의 생졸연대를 보면 이 두 언명이 동시에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로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제 곡조를 지니고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바탕을 간직하고
柳經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 번을 부러져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만해 한용운 선생도 「찬송(讚頌)」 이라는 시에서 이를 원용(援用)하였으니, ‘옛 오동의 숨은 소리여’ 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찬송」 전문과 그 해설에 대해서는 <부록 제7장(만해본 수성 제1장)>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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