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 003 - 마음은 백일(白日)처럼 드러내고 재주는 옥돌처럼 감추어라

허섭 승인 2021.01.01 18:17 | 최종 수정 2021.01.04 08:17 의견 0

겸재 정선 -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79.2+138.2cm 종이에 수묵
겸재 정선 -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79.2+138.2cm 종이에 수묵

003 - 마음은 백일(白日)처럼 드러내고 재주는 옥돌처럼 감추어라

군자의 마음가짐(마음씀)은 푸른 하늘과 밝은 해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며

 

군자의 재주와 지혜는 감춘 옥돌과 숨긴 구슬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쉬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 才華(재화) : 뛰어난 재주와 지혜.
  • 韞(온) : 감추다(둘러서 보이지 않게 하다. 즉 깊숙이 감추다), 싸다, 활집.
  • 玉韞珠藏(옥온주장) : 옥구슬이 바위 속에 박혀 있고 진주가 바다 속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것으로, 즉 군자가 그 아름다운 자질을 깊이 간직한다는 뜻이다.
  • * 韜(도)는 ‘칼집’ 을 韞(온)은 ‘활집’ 을 지칭하며, 모두 ‘숨기다, 감추다’ 의 뜻으로 쓰인다.
  • 韜光養晦(도광양회) -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003 판교 정섭 - 오언시 청 1756년 축지 141+71.7 요녕성박물관
판교 정섭(板橋 鄭燮, 중국, 1693-1765), 오언시

◇ 출전 글 

▶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子貢曰(자공왈) 有美玉於斯(유미옥어사) 韞櫝而藏諸(온독이장저) 求善賈而沽諸(구선가이고저).
子曰(자왈) 沽之哉(고지재) 沽之哉(고지재) 我待賈者也(아대가자야). * 諸(저)는 之乎의 줄임말

- 자공이 여쭈었다.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궤에 넣어 보관하시겠습니까, 좋은 상인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팔아야지, 그것을 팔아야지! 나는 상인을 기다릴 것이다.”

과연 언변에 뛰어났던 자공이다. 만약 자공이 직설적으로 “선생님은 왜 벼슬하지 않으십니까?” 라고 여쭈었다면 공자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런데 자공은 스승을 귀한 옥에 비견(比肩)하여 넌지시 에둘러 여쭈었던 것이다. 제자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스승 또한 속 시원하게 답하고 있으니, “팔아야지, 아무렴 팔고 말고!” 두 번이나 연거푸 강조하여 자신의 현실참여 의지를 밝히고 있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차이는 감출 것과 드러낼 것을 명확히 하는 데서 확연히 구별된다. 소인은 감출 것을 드러내고 드러낼 것은 감추는 법이다.

 

◇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은 글 

▶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무등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이 시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가 6.25 피난시절, 다형(茶兄) 김현승(金顯承)의 도움으로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 잠시 광주에 머물었던 그때, 굶기를 밥 먹듯이 했던 그 극단적 궁핍의 시기에 지은 작품이다.

나는 이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언제 어디서 읽은 기억조차 아슴한, <옥돌은 진흙 속에 묻혀 있어도 결코 그 빛을 잃지 않는 법이다> 라는 옛 잠언(箴言)을 떠올렸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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