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4)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고, 알면서도 쓰지 않는다

허섭 승인 2021.01.03 15:31 | 최종 수정 2021.01.03 16:25 의견 0

겸재 정선 -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79.2+138.2cm 종이에 수묵출처 : 인저리타임(http://www.injurytime.kr)
겸재 정선 -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79.2+138.2cm 종이에 수묵

004 -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고, 알면서도 쓰지 않는다

권세와 명리와 호화 사치를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은 깨끗하다 하지만
이를 가까이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은 더욱 고결하다 할 것이다.

권모와 술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고상하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쓰지 않는 사람은 더욱 고결하다 할 것이다.

 

  • 勢利(세리) : 권세(權勢)와 명리(名利).
  • 紛華(분화) : 사치스럽고 화려함.
  • 爲(위) : 여기서는 ‘말하다’ 의 뜻. ‘~라 하다’ 는 謂(위)와 같은 의미이다.
  • 尤(우) : 더욱.
  • 智械機巧(지계기교) : 권모(權謀)와 술수(術數)를 말함.
004 판교 정섭 - 쌍송도 청 1758년 지본묵필 산동성박물관
판교 정섭(板橋 鄭燮, 청, 1693-1765), 쌍송도(1758년) 지본묵필

◇ 출전 관련 글 ☞

▶『법구비유경(法句比喩經)』 쌍요품(雙要品)에

향 싼 종이에서는 향내 나고 …

어느 날 부처님은 한 마을을 방문하여 사람들을 위해 설법했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모두 제자로 삼은 부처님은 그들을 데리고 숙소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부처님은 길가에 떨어져 있는 낡은 종이 한 장을 보았다. 부처님은 제자 아난을 시켜 낡은 종이를 주워오게 했다. 아난이 낡은 종이를 가져오자 부처님이 물었다.

“그것은 어떤 종이인가?”

아난이 종이를 들고 냄새를 맡아보고는 대답했다.

“이것은 향을 쌌던 종이인 듯합니다. 종이에 아직 향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습니다.”

부처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 길가에 새끼줄 한 토막이 떨어져 있었다. 이번에도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했다.

“저 새끼줄을 가져오너라.”

아난이 새끼줄 한 토막을 주워오자 부처님이 물었다.

“그것은 어떤 새끼줄인가?”

아난은 새끼줄의 냄새를 맡아보고는 다시 대답했다.

이것은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입니다. 비린내가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것은 본래 깨끗하고 정결하지만, 인연에 따라 죄와 복을 얻는다. 착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스스로 착해지고, 어리석은 사람을 친구로 삼으면 재앙과 죄가 이른다. 마치 저 종이가 향을 가까이하여 향이 나고, 저 새끼줄이 생선을 묶어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다. 결국 사람은 가까이 있는 것에 조금씩 물들어가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모를 뿐이니라.”

 

▶ 『사자소학(四字小學)』에

蓬生痲中(봉생마중) 不扶自直(불부자직)
- 삼밭에서 자라는 쑥은 붙들어주지 않아도 절로 곧아지고

白沙在泥(백사재니) 不染自汚(불염자오)
- 흰 모래가 진흙에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더러워지느니라.

近墨者黑(근묵자흑) 近朱者赤(근주자적)
-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지고 주사를 까까이 하는 사람은 붉게 되니

居必擇隣(거필택린) 就必有德(취필유덕)
- 거처할 때엔 반드시 이웃을 가리고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덕 있는 사람에게 가라.

擇而交之(택이교지) 有所補益(유소보익)
- 사람을 가려서 사귀면 도움과 육익함이 있고

不擇而交(불택이교) 反有害矣(반유해의)
- 가리지 않고 사귀면 도리어 해가 있느니라.

 

◇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은 글 ☞

▶인간관계에 있어 세상 사람들을 네 부류로 나눈다면 △남에게 잘 물드는 사람 △남에게 물들지 않고 자신을 잘 지키는 사람 △남을 나쁘게 물들이는 사람 △남과 어울려 좋게 물들이는 사람 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교(儒敎)의 ‘친구를 가려서 사귀라’ 는 가르침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불교(佛敎)의 적극적인 법보시(法布施) - ‘사람을 착하게 물들이고 나아가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라’ 는 가르침이 더욱 큰 가르침이 아닐까?

물론 유교에서도 <責善(책선)은 朋友之道也(붕우지도야)라 -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 라 하였으며, 『사자소학(四字小學)』에서도 바로 그 다음 구절에 <朋友有過(붕우유과)어든 忠告善導(충고선도)하라. 人無責友(인무책우)면 易陷不義(이함불의)니라. - 친구에게 잘못이 있거든 충고하여 착하게 인도하라. 사람이 잘못을 꾸짖어 주는 친구가 없으면 불의에 빠지기 쉬우니라.> 라고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 진리를 ‘연꽃(lotus)’ 에 비유하는 까닭도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를 세상에 끼치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선생의 「애련설(愛蓮說)」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니,「애련설」119자(字)를 한 마디로 줄이라 하면 나는 이 여덟 자(字)로 말할 것이다.

出泥不染(출니불염) 香遠益淸(향원익청)
- 진흙에서 피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니 그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도다.

 

▶「애련설(愛蓮說)」-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

水陸草木之花可愛者甚蕃(수육초목지화가애자심번)
물과 육지에 나는 초목과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건만

晋陶淵明獨愛菊(진도연명독애국)
진(晋)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自李唐來世人甚愛牧丹(자이당래세인심애목단)
당(唐)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좋아했다.

 

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여독애연지출어어니이불염)
나는 (연꽃을 사랑하나니)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濯淸漣而不妖(탁청련이불요)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中通外直不蔓不枝(중통외직불만부지)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을 뻗지 않고 가지 또한 치지 아니하며

香遠益淸亭亭淨植(향원익청정정정식)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可遠觀而不可褻翫焉(가원관이불가설완언)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음에 유독 이를 사랑한다.

 

予謂菊花之隱逸者也(여위국화지은일자야)
내 나름으로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 같은 것이며

牧丹花之富貴者也(목단화지부귀자야)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것이요

蓮花之君子者也(연화지군자자야)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噫(희) 菊之愛陶後鮮有聞(지애도후선유문)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蓮之愛同予者何人(연지애동여자하인)
연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와 (뜻을)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일런가?

牧丹之愛宜乎衆矣(모란지애의호중의)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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