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 능수능란(能手能爛) 주도면밀(周到綿密) 하기보다는 차라리 소박함과 소탈함이 낫다
세상을 건넘이 얕으면 그만큼 때 묻음도 얕고
세상을 겪음이 깊으면 그만큼 속임수도 깊다.
그러므로 군자는 능수능란(能手能爛) 하기보다 소박함이 낫고,
주도면밀(周到綿密) 하기보다 소탈한 것이 낫다.
- 涉世(섭세) : 세상을 살아가는 것. 涉은 ‘물을 건너는 것’ 이다.
- 點染(점염) : 세속의 때와 악에 물드는 것.
- 歷事(역사) : 세상 여러 일을 겪음. 歷은 ‘산을 넘는 것’ 이다.
- * 涉歷(섭력)은 ‘물을 건너고 산을 넘는다’ 는 뜻으로, 인생살이의 온갖 경험을 많이 함을 이르는 말이다.
- 機械(기계) : 수단(手段). 여기서는 권모술수(權謀術數)와 속임수를 말함.
- 機械之心(機心) : 기교를 부려 속이려는 의도나 마음.
- 與其(여기)~ 不若(불약)~ : ~하기보다는 차라리 ~하는 것이 낫다.
- 練達(연달) ; 노련하고 통달함.
- 朴魯(박로) : 순박(醇朴 淳樸 淳朴)하고 노둔(魯鈍)함. * 老獪(노회)와는 정반대임.
- * 노회(老獪) : 노련(老鍊)하고 교활(狡猾)함.
- 曲槿(곡근) : 치밀하고 매사에 삼감. 지나치게 예의바르고 겸손한 것을 뜻함. 曲은 여기서 ‘자세(仔細)하다’ 의 뜻이다. 곡진(曲盡)하다.
- 疎狂(소광) : 소탈하여 형식에 얽매이지 않음, 나아가 ‘지나치게 분방(奔放)하다’ 는 부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음.
- * 재야(在野)의 동양학 학자 박현(朴賢)은 ‘涉世淺’ 과 '歷事深' 을 각각 ‘소박한 세상살이’ 와 ‘찌들은 세상살이’ 로 옮겼는데 참으로 탁월한 번역이라 하겠다.
- * 찌든(고달픈) 세상살이
◇ 출전 관련 글 ☞
▶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
자공(子貢)이 초(楚)나라를 유람하고 진(晉)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한수(漢水) 남쪽 땅을 지나게 되었다. 한 노인이 마침 채소밭을 가꾸고 있었는데 그는 땅에 굴을 파고 직접 그 우물에 들어가 물을 길어 나와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끙끙거리며 무척 힘들어 보였으나 그 효과는 극히 적었다. 이에 자공이 힘을 보다 적게 들이고 효과는 훨씬 더 좋은 물 긷는 기계를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힐난조(詰難調)로 물었다. (아마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아서는 용두레 정도나 도르래를 이용한 두레박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자공의 질책(叱責)에 그 한음(漢陰)의 농부는 처음엔 노기(怒氣)를 띠었으나 이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有機械者(유기계자) 必有機事(필유기사) 有機事者(유기사자) 必有機心(필유기심) 機心存於胸中(기심존어흉중) 則純白不備(즉순백불비).
純白不備(순백불비) 則神生不定(즉신생부정) 神生不定者(신생부정자) 道之所不載也(도지소부재야).
吾非不知(오비부지) 羞而不爲也(수이불위야).
-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이 있게 마련인데,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존할 수 없게 된다. 본성을 보존하지 못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리며 키운 배추는 배추 값이 내려가면 밭뙈기를 통째 갈아엎어 버리지만, 농사꾼이 양동이로 물을 길어 키운 배추는 배추 값이 아무리 똥값이 되어도 이웃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줄망정 밭을 갈아엎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 『논어(論語)』 헌문편(憲文篇)에
子擊磬於衛(자격경어위)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曰(유하궤이과공씨지문자왈) 有心哉(유심재) 擊磬乎(격경호).
旣而曰(기이왈) 鄙哉(비재) 硜硜乎(경경호) 莫己知也(막기지야) 斯已而已矣(사이이이의) 深則厲(심즉려) 淺則揭(천즉게).
子曰(자왈) 果哉(과재) 末之難矣(말지난의).
- 공자께서 위나라에 계실 때 磬을 치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자가 계신 집 문 앞을 지나가던 이(‘하궤’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던 은자)가 말했다. 마음이 담겨 있구나, 저 경쇠 소리에는! 조금 있다가 그가 또 말했다. 속되구나, 저 땡땡하는 소리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둘 따름이다. 물이 깊으면 옷을 벗어 들고 건너고, 얕으면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건너간다고 했으니 …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과단성이 있구나, 그렇게 하기는 (누구나) 어렵지 않다.
※ 삼태기를 둘러멘 은자(隱者)는 공자가 경(磬) 연주하는 소리에 세상에 대한 집념이 담겨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에 그는 세상일을 달관(達觀)하지 못하면 아예 자기처럼 체념(諦念)해 버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공자는 그렇게 한다면야 내 한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모름지기 군자는 구세제민(救世濟民)의 포부를 버릴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 < 末之難 > 의 해석
① 부정문에서 목적어가 도치된 것으로 보고, 그를 나무랄(비난할) 수 없다.
② (그렇게 과단성 있게 세상을 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산다면 세상에) 어려울 게 없을 것이다.
※ 위 문장에서 末(끝 말)은 未(아닐 미)의 오식(誤植)이 아니며, 난(難)은 ‘어렵다’ 의 뜻과 ‘비난(非難)하다’ 의 두 가지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 末(말) : ~할 수 없다. 末 ≒ 弗, 莫, 無
▶ 『시경(詩經)』 패풍(邶風)에
深則厲(심즉려) 淺則揭(천즉게)
-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지만, 물이 얕으면 바지만 걷어도 되리.
* 厲(려)는 ‘허리춤까지 추켜올리고 물을 건너다’ 라는 뜻이고, 揭(게)는 ‘무릎까지 추어올리고 물을 건너다’ 라는 뜻이다.
※ 『시경』에 나오는 해당 구절을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물이 아주 깊어 옷을 허리춤까지 추어올려도 어차피 물에 옷이 젖을 수밖에 없다면 구차하게 옷을 벗어 들고 건널 것이 아니라 아예 옷을 입은 채로 건너가고, 물이 얕으면 굳이 물에 웃을 적실 필요가 없으니 바지를 걷고 건너면 될 터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