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며칠 전 산청에 있는 선배의 어머님 댁에 내려와 연 닷새간 밤을 줍고 있습니다. 오늘은 밤농사와 우리네 부모님의 자식농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이 그 많은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는 데 있어 가장 큰 보탬이 되었던 것이 소와 밤이었습니다. 농사일을 위해 소를 키우고 그 송아지를 내다 팔아 아들딸의 등록금을 마련하고 밤농사로 목돈을 장만하여 하숙비나 생활비를 보내주셨던 겁니다. 양잠(누에치기)이 봄가을 농사라면 밤농사는 비록 가을 한 철이지만 그 수익이 컸기에 전국 곳곳의 야트막한 산야엔 온통 밤나무 천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제사상에는 ‘조율이시(棗票梨柹)’ 라 하여 대추와 밤, 배와 감을 반드시 올렸습니다.
저는 군대 가기 전과 제대 후 복학하기 전의 두 시기에, 일꾼을 댈 형편이 못되는 큰집 당숙의 밤 수확을 도와드린 적이 있어 밤농사의 어려움을 옆에서 살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아재께 ‘왜 제사상에 밤을 올리는가’ 에 대해 여쭈어 보았습니다. 제 생각으론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이란 옛날 그 당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과일이었겠지만, 유독 가시도 있고 까기도 어려운 밤을 올리고 음복(飮福)을 할 때에도 밤을 제일 먼저 나누어 먹는 그 까닭을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당숙께서는 깜짝 놀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대답을 주셨으니,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밤은 땅에 묻혀 싹이 나오고 그 나무가 자랄 때까지 땅속에 있는 밤톨이 썩지 않고 있는데 그 나무가 첫 열매를 맺은 뒤에야 비로소 썩기 시작한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럴까, 의심이 갔지만 뿌리에 밤톨이 달려있는 밤나무 묘목을 본 듯도 하니 그 말이 사실인지 긴가민가(其然가未然가)하였습니다.
자손이 잘 되기를 바라는 조상의 지극정성의 그 마음이 곧 제사상에 올리는 밤이라는 보잘것없는 과일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자손들은 자신의 뿌리인 조상을 잊지 않기 위해서 제사상에 밤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사를 마치고 음복을 할 때 어른들께서 아이들 하나하나를 불러 꼭 밤 한 톨씩을 나누어 주는 그 깊은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밤보다는 달콤하고 쫄깃한 곶감이 먹고 싶었던 철부지였었지요.
‘산청 박고약’ - 침과 고약으로 유명하셨던, 선배의 증조부께서 차황면에서 산청읍 병정마을로 이거(移居)해 오시어 터를 잡으신 동네 뒷산에는 조부께서 심은 재래종 싸락밤과 선친께서 심은 밤알이 굵은 개량종 밤나무가 섞여 있습니다.
밤을 줍다 보면 별의별 밤을 다 보게 되는데 재래종이건 개량종이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밤송이 하나에는 반드시 세 개의 밤톨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톨박이든 두톨박이든 외톨박이든 원래 세 개의 밤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밥을 주울 때에는 밤톨 하나하나가 같은 부모 밑에 자라나는 경쟁적 관계의 형제들로 보였는데, 그래서 밤송이를 열어보며 ‘마치 누구네 집 같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작년엔 제가 매주 강의하러 대전에 내려가는 일이 있어 밤을 줍지 못했으며) 올해엔 밤송이 하나하나를 열어 보며 그 많은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우리네 부모님의 마음을 읽게 되었으며 ‘정말 밤농사가 자식농사 그대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핸드폰으로 찍어 올린 세 장의 사진을 차례대로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 첫 번째가 세톨박이입니다. 밤톨 세 개가 모두 고만고만하게 잘 자라 여문 것입니다. 밤톨이 크건 작건 어느 하나가 축나지 않고 골고루 잘 자란 것인데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당연히 전체 비율로 따지자면 20% 아래일 겁니다. 햇볕이 적당히 들고 땅이 두터우면서 배수가 잘 되는 곳에 자리 잡은 나무일수록 이런 밤송이의 비율이 높습니다.
2. 두 번째가 두톨박이입니다. 밤톨 두 개가 마치 쌍둥이처럼 비슷한 보양으로 굵게 잘 자라 여문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쭉정이 밤톨이 하나 끼어 있습니다. 반드시 가운데는 아니고 한쪽 끝에 쭉정이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체 비율로 보자면 거의 50~60%일 겁니다.
3. 세 번째가 외톨박이입니다. 가장 굵은 밤톨입니다. 어느 한 쪽도 납작한 면이 없어 거의 동그란 원형에 가깝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당연히 두 개의 쭉정이가 있습니다. 양쪽 끝에 하나씩 밀려나 있거나 두 개가 나란히 붙어 뒤쪽으로 밀려난 것도 간혹 보입니다. 전체 비율로 보자면 이 또한 20%를 조금 웃돌거나 밑돌 겁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느냐’ 는 우리 속담처럼 세상의 모든 부모의 자식 사랑은 한결같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에 많은 자식들을 건사하려니 그 중 싹수가 있는 자식에게 좀 더 정성을 기울이는 '선택과 집중' 이라는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 고 했으니 똑똑한 놈 하나라도 잘 키워 나머지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그 덕을 보자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쭉정이들의 희생에 의해 그 잘난 두톨박이나 외톨박이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대부분의 두톨박이와 외톨박이는 지가 잘나서 많이 배우고 출세한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단 말입니까? 친탁(親拓)을 하든 외탁(外拓)을 하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DNA야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는지요? 멀쩡하던 형이 왜 고등학교엘 가더니 연애에 빠져 공부를 내팽개치고 그 총명하던 동생이 소아마비에 걸려 절름발이가 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말하자면 이 모두가 세종(世宗)이라는 성군(聖君)을 낳기 위해 어느 날 양녕대군이 담을 넘어 기방에 드나들고 효령대군이 마침내 출가를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세상 이치이지요.
어느 집안인들 조금 모자란 지체아나 선천적 또는 후천적 장애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그렇게 태어날 수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어려운 시절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신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 집안의 DNA 속에는 그런 가능성이 상존하고, 우리 집안의 ‘공동 운명’ 속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확률 - 경우의 수가 늘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이런 이치를 모르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저렇게 태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우찌 저런 게 우리 집안에 태어나서는 부모 형제 속을 썩이는지…’ 라고 생각할 뿐, ‘저 놈이 우리 형제들이 나누어 져야 할 짐을 지 혼자서 지고서는 저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형제들은 정말 드물 것입니다.
자, 다시 알밤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과연 어느 밤이 가장 맛있을까요? 대개가 가장 크고 잘 생긴 외톨박이일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사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제일 맛있는 밤은 싸락밤이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세 가지 중에서는 세톨박이가 가장 맛있고 그 중에서도 가운데 끼인 납작밤이 가장 연하고 답니다. 이는 제삿날 아버지와 숙부들과 생률을 치면서 알게 된 저의 경험치 그대로입니다.
세상에는 밤은 밤인데 고구마보다 못한 밤도 있으니 그가 바로 그 크고 잘생긴 외톨박이입니다. 사실 외톨박이는 ‘물 없이는 못 먹는다’ 는 '팍신 고구마' 보다 맛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 중에는 속속들이 알고 보니 그 인격과 사람됨이 형편없는 자들이 많음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이들은 지 잘난 줄만 알 뿐, 자기가 올라서 있는 지금의 그 자리가 무수한 못난이들과 무지랭이들과 쭉정이들이 받쳐주고 있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사실 두톨박이나 외톨박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밤송이 다 커질 때까지 그 쭉정이들은 밤톨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꼬옥 감싸고 있으며, 나중에 밤송이가 익어 벌어지고 마침내 터질 때에는 멀리까지 가라고 밤톨을 튕겨 주는 역할까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밤톨들은 쭉정이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쭉정이들의 그 거룩한 양보와 희생을……
이번에 닷새 넘게 밤을 주우면서 선배의 어머니인 송금자 여사와 점백짜리 고스톱도 치고 밤과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큰집 당숙의 말씀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저는 쌍동밤만 올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사상에 외톨밤은 절대 올리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형제간 우애가 없는 지밖에 모르는 놈은 결국 집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맞아 맞아! 밤나무 뿌리에는 종자(씨앗)가 달려 있거든. 그걸 숱하게 보면서도 그냥 예사로 여겼지 뭐야, 왜 그런가는 생각해 보지 못했네.
아하, 그래서 그런가? 옛날 어른들은 외톨밤은 제사상에 절대 올리지 않았거든…
80을 훨씬 넘긴 연세에도 여전히 예쁘고 고운 우리의 '친절한 금자씨' 가 저의 말에 맞장구를 치시는 정감 어린 장면입니다.
저는 5녀1남의 셋째인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지극한 보살핌과 굄을 받았고 아버지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우대 속에서 자랐으니, 말하자면 외톨박이인 셈입니다. ‘불면 꺼질까, 쥐면 터질까’ 하는 말 그대로 애지중지하며 키운 외동아들이지요.
내 나이 여섯 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대청마루 선반 위에 있는 토종꿀을 매일 한 숟가락씩 당신과 나만 떠먹었습니다. 누나들은 꿀이 먹고 싶어서 배가 아파야 했으니, ‘할아버지 배 아파요’ - ‘으응, 그래. 너도 한 숟가락 먹거라’
저는 배가 아프지 않아도 매일 꿀을 먹는데 누나들은 배가 아프다고 해야 꿀을 얻어먹었으니 누나들은 하루건너 또는 사흘거리로 배가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는 단 한 번도 누나들에게 거짓말한다고 야단치지는 않으셨으니 매번 속아 주신 할아버지의 손녀 사랑도 나름 대단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밤을 주우면서 가만히 나 자신을 돌이켜보니 나라는 인생은 모든 것을 독차지해 온 외톨박이인데 굵고 잘생긴 외톨박이가 아니라 겉만 멀쩡한 속속들이 구멍이 나 있는 ‘벌레 먹은 외톨박이’ 임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대로 살다가는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정말 제 인생에 있어 회심(回心)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아, 이럴 어쩌나! 벌레 먹은 외톨박이여!
회광반조(回光返照)라 ! -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다
이번 추석 한가위 저 휘영청 밝은 달빛에 나 자신을 비추어 볼 수밖에…
사랑과 인정은 나눌수록 더욱 커집니다. 이번 추석에는 스스로 가장 낮은 곳에 처한 세상의 모든 쭉정이들을 기억하며, 부모 형제와 이웃들에게 더욱 넉넉한 마음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한가위가 되시길 빕니다.
-도무지 허섭 올림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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