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오늘의 詩」 ... 동요 '섬 집 아기'와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해외입양아 드니 성호가 연주한 '섬 집 아기'
뼛속까지 사무친 그리움의 사모곡에 무한 감동

허섭 승인 2020.01.10 21:10 | 최종 수정 2020.01.10 22:00 의견 0

섬 집 아기 - 한인현 작사 / 이홍렬 작곡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읽어 보자.

7·5조의 정형시이며 2연 8행인 동시를 가사로 하여 쓰인 전형적인 두도막형식, A(aa') B(bc)의 동요이다. 바장조의 음계를 사용하고 8분의 6박자이며 느린 두 박자 계열의 리듬으로 자장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1절과 2절이 각 16마디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절은 두도막형식인 네 개의 작은 악절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작은 악절의 앞부분은 같은 리듬으로 이루어져 총 네 번 반복된다. 각 동기의 두 번째 마디는 한 음을 길게 끄는 것으로 작곡되어 전체 16마디 중 8마디는 길게 끄는 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복되는 리듬과 읊조리는 듯한 선율이 가사의 잔잔한 분위기를 나타내 주는 서정적인 노래이다.

주요 3화음만을 사용한 화성진행으로 단순한 리듬과 화성을 가진 곡이다.

한인현(1921∼1969)의 동시 「섬 집 아기」는 1946년 발간된 동시집 『민들레』에 수록되었고 1950년 『소학생』 4월호에 실려 알려졌다. 『소학생』 지는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1946년 2월 윤석중, 조풍연 등이 편집하여 창간된 아동 잡지로 주간지로 시작하여 통권 제49호까지 발간하고 1947년 월간지로 바꾸어 1950년 5월호까지 발간되었다. 작곡가 이흥렬(1909∼1980)은 함경남도 원산 출생으로 1937년 동요집 『꽃동산』을 출간하였으며 가곡과 동요 400여 곡을 작곡하였다.

「섬 집 아기」는 밝고 희망적인 내용의 동요가 아님에도 집에 혼자 남겨져 잠드는 아기의 모습과 굴 바구니를 다 채우지 못하고 달려오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어려운 현실과 엄마의 애틋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표현하였다.

오늘 갑자기 「섬 집 아기」라는 한 동요를 불쑥 꺼내어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 예술가를 소개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문화적 유전자, 결코 후천적인 것이 아닌 우리들 뼛속 깊이 박혀있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선천적인 DNA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생후 9개월에 벨기에에 입양되어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되어 엄마를 찾아 고국을 찾아온 드니 성호(Denis Sungho Janssens 신성호)가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섬 집 아기> 를 연주했을 때, 그의 기타 선율에 빠져 들며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 는 흔하디 흔한 말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살아남아 반드시 꽃을 피우는 ‘유전자의 승리’ 그것이었다.

생후 4일 만에 부산의 어느 골목길에 버려진 생명으로 9개월 뒤 이 땅을 떠나 파란 눈의 양부모 품에 안겼던 그가 어찌 이 동요를 알겠는가? 그러나 그날 그가 연주한 「섬 집 아기」 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한 어린 영혼의 울림 그 자체였다. 정말 무서운 것은 DNA이다.

한국인의 뛰어난 예술적 재능에 대해 많은 이들이 나름의 근거를 제시한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라는 자연지리적인 환경과 손가락의 감각을 극대화 시키는 젓가락 문화 등을 이야기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 따라 달리 펼쳐지는 자연의 풍광과 그 색채,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는 민감한 촉감, 산과 들 바다에서 나오는 풍부한 물산과 다양한 먹을거리, 그리고 이를 먹고 즐기며 발달한 미각과 후각, 이 모든 것이 한국인의 특유의 정서와 감각을 형성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류는 네 발로 기던 유인원에서 벗어나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비약적으로 진화하게 되었으니,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앞발이 이제는 손이 되어 도구를 사용하면서 마침내 문명의 세계로 접어든 것이다. 이처럼 손의 움직임은 지능의 발달과 직결되는 것으로 손은 곧 기술이며 예술가-장인(匠人)의 작업은 대개가 손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한국인들의 젓가락 문화는 이러한 손의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일상적인 훈련인 셈이다. 오죽하면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려 쫓겨난 황우석 박사도 이를 두고 ‘원천 기술’ 이라 뻥을 쳤을까? (이어령 박사의 책을 통해 이미 많이 알려진 한중일 동양 3국의 같고도 다른 젓가락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위의 지론들에 대해 나도 당연히 공감하는 바이지만, 나는 평소에 한국어라는 모국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말해 왔다. 조사와 어미가 발달한 교착어의 특징이 한국인의 사고와 사유를 가장 섬세하게 다듬어 주기 때문이다. 동일한 문장에서도 조사를 달리함으로써 미묘한 의미 차이가 생기며, 용언(동사/형용사)의 수많은 활용형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의미가 발생하기 때문에 세계 어느 언어도 한국어의 이런 의미의 다양성을 따라 올 수 없는 것이다.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장 배우기 쉬운 문자가 한글이면서, 제대로 말하기 가장 어려운 말이 한국어라는 데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일찍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높임의 단계는 또한 얼마나 복잡한가?)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출처 : 유튜브 Sens korea  

자, 이제 다시 드니 성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성호는 생후 9개월 만에 해외로 입양되어 서양인 부모님에게서 자랐으니, 당연히 한국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으며 한국말도 하지 못한다. 생모(生母)를 찾아 돌아온 고국에서(과연 그에게 한국이 고국일 수 있는가?) 우연히 얻은 무대에서 연주한 「섬 집 아기」, 아무리 엄마를 찾는 간절한 마음에서 연주했다고 할지라도 그 단순한 선율의 짧은 동요 한 곡에 어찌 그토록 짙고 깊은 감성을 드리울 수 있을까? 그 연주를 들으며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언젠가 초등학교 저학년을 둔 얘기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차살림 강좌에서 「섬 집 아기」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농담이지만) 모두들 이 노래를 두고 ‘유아 학대’ 의 괴담 수준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섬찟 놀란 적이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요즘 세대들의 감수성이다.

최근에 확인한 근황으로는, 성호는 띠동갑인 우리나라 여성을 아내로 맞아 자주 고국 무대를 찾으며 자신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천재 예술가들을 세상에 알리는 공연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 엄마를 찾지 못했지만 엄마가 자식을 버린 죄책감에서 벗어나 어디에 있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며, 이젠 우리말도 제법 익숙하게 하며 자신의 고향을 부산이라고 밝히는 반쯤은 무뚝뚝한 부산 사내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런데 피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골수(骨髓), 바로 뼛속이다.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유전자, 그놈의 DNA는 어찌할래야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것이 게놈(지놈), DNA인 것이다.

* 한국인의 노래와 시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3음보와 7.5조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젊은 세대들이 트롯트 가요를 뽕짝이라고 폄하하면서도 어쩐지 나이가 들수록 자기도 모르게 트롯트 한두 소절을 흥얼거리게 되는 것인지, 언더그라운드 가수 한영애가 40대 중반을 넘기면서 트롯트를 재발견하고 리메이크 음반을 내게 된 사연에 대해서도, 지난 백년 동안 소월素月이 한국인의 애송 시인 그 첫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 )

* 동요 「섬 집 아기」를 부른 유명가수로는 박인희 씨와 정목 스님의 목소리를 추천합니다. 젊은 시절의 박인희, 은희의 하늘로 퍼져 오르는 듯한 맑고 청아한 목소리도 좋지만 나는 동요는 정목 스님의 것을 가장 좋아하니 이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누님처럼 언제 보아도 곱고 이쁘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fXxTvkfvDo (Denis Sungho X COAST 82, Live in Belgium, Huy. Island Baby 섬 집 아기)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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