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오늘의 詩」 ... 守歲(수세) / 孫必大(손필대)
守歲(수세) : 섣달 그믐날 제야(除夜)에 등촉을 밝히고 온 밤을 지새우는 풍속
"수세하며 남은 해를 보내는 마음이 노을 비낀 정자에서 님을 보내듯 하여라"
허섭
승인
2020.01.23 14:10 | 최종 수정 2020.01.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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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면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심경을 잘 드러낸 한시 한 편을 소개한다.
한 해를 보내는 섣달 그믐날 밤은 묵은해를 지키며 보낸다고 잠을 자지 않고 지새우곤 했다. 아이들에게는 만약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하며 겁을 주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믿고 졸린 눈을 비비며 안간힘을 쓰다가 지쳐 잠이 들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썹에 밀가루를 묻혀놓고서는 아침에 눈썹이 하얗게 세었다고 놀리곤 했다.
섣달 그믐날에 집안에 불이란 불은 다 켜놓게 하시고 꼿꼿이 앉아 밤을 보내시던 옛 어른들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참으로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작자는 수세(守歲)를 하면서 지난해를 보내는 것이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마음이 애틋하다고 하였다. 아마도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더 적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느끼는 애잔함이었을 것이다.
守歲(수세) - 孫必大(손필대)
寒齋孤燈坐侵晨 (한재고등좌침신) 차가운 방 외로운 촛불 앉아 지새워
餞罷殘年暗傷神 (전파잔년암상신) 남은 해를 보내려니 마음 아파라
恰似江南爲客日 (흡사강남위객일) 그 옛날 강남땅 나그네 시절
夕陽亭畔送佳人 (석양정반송가인) 노을 비낀 정자에서 님을 보내듯
※ ‘守歲(수세)’ 라는 제목은 ‘섣달 그믐날 제야(除夜)에 등촉을 밝히고 온 밤을 지새우는 풍속’ 을 말한다.
寒齋(한재) : 찬 서재. 또는 작가의 당호(堂號)인 세한재(歲寒齋)를 뜻함. 어떤 자료에는 ‘寒齎’ 로 되어 있어 ‘찬물에 목욕재계(沐浴齋戒)’ 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조금 지난친 해석이다. 齋와 齎는 같은 뜻으로 쓴다.
侵晨(침신) : 이른 새벽, 조조(早朝).
坐侵晨(좌침신) : 새벽까지 앉아서 날을 샌다는 뜻.
餞罷(전파) : 전송(餞送)을 마침.
暗傷神(암상신) : 남몰래(그윽히) 마음이 아픔. 뭔가 애잔함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恰似(흡사) : 마치 ~와 같다.
江南爲客日(강남위객일) : 강남에서 나그네로 지내던 시절(나날들).
夕陽亭(석양정) : 정자의 이름으로 고유명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노을이 내린 정자’ 로 ‘해질녘에 임을 보내는 애틋한 마음’ 에 더 비중을 두고자 한다.
亭畔(정반) : 정자 가에서. 畔은 그 근처, 언저리를 뜻함.
佳人(가인) : 아름다운 여인, 또는 다정한 친구. 임(님)이라고 시어가 가장 적절할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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