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48) 머리를 감으며 - 류미야

이광 승인 2022.09.13 11:35 | 최종 수정 2022.09.16 10:03 의견 0

머리를 감으며

                          류미야

 

 

풀고 또 풀어도 엉켜드는 낮꿈의
가닥을 잡아보는 
시린 새벽의 의식儀式

너에게 
세례를 주노니
잘 더럽히는 
나여


류미야 시인의 <머리를 감으며>를 읽는다. 머리를 감는 일상행위를 영적인 세례의식으로 승화시킨 시인의 내면을 살펴본다. 초장 ‘풀고 또 풀어도 엉켜드는 낮꿈’은 뭔가 일이 꼬여버린 상황인데, 그가 마주한 세상과 갈등하는 자아의 현실을 낮꿈이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가닥을 잡아보는’ 결자해지의 노력이 요구된다.

갈등의 근원이 세상에 오염되는 자아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아의 대립인 것을 화자는 이미 파악하고 있다. 아마 이전에도 낮꿈에서 깨어나 자기성찰을 꾀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밤을 보내고 새벽을 맞는 화자는 머리를 감기 전 의식을 행하듯 주문을 외운다. ‘너에게/세례를 주노니/잘 더럽히는/나여’ 여기서 나를 ’너‘로 호칭하는 나는 대자적對自的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보다 향상된 의식 수준을 지향하며 사유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화자는 머리를 감으며 자정능력을 갖춘다. 이는 물로써 죄를 씻어내는 세례와 함께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는 목욕재계와도 상통한다.

초장과 중장이 바로 이어지는 보법을 취하고 있다. 시조 정형의 관점에서 보면 초장 후구에서 한걸음 멈춘 다음 중장을 펼치는 게 정석이나 긴박한 흐름으로 집중을 유도하려는 연출로 여겨진다. 종장은 한 음보씩 행갈이를 하여 대자적 존재와 그를 수긍하는 자아 쌍방이 일치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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