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49) 그랬다 - 황삼연

이광 승인 2022.09.21 10:49 | 최종 수정 2022.09.23 16:49 의견 0

그랬다

                          황삼연

바람이 그랬다
씨 하나 맺으려고

강물이 그랬다
돌 하나 다듬으려고

세월도
무장 그랬다
사람 하나 세우려고


황삼연 시인의 <그랬다>를 읽는다. ‘그랬다’는 ‘그렇게 하였다’의 준말로 평상시 자주 쓰는 입말이다. 작품은 초, 중, 종장이 같은 형태로 반복되는 단순한 구조로 짜여 있다. 단순하다는 건 명료하다는 것과 통한다. 하여 작가의 의도는 있는 그대로 전달되어, 독자는 한 줄기 바람의 기운을 느끼며 감성의 옷깃을 여미고 잠시 명상에 잠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자연현상을 목격하고 사물의 다양한 변화를 경험한다. 이러한 현상과 변화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과정에서 시인은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 만물을 재현한다. 바람은 세상 만물에 빠짐없이 개입하고 영향을 끼치는 대표적인 자연현상이다. 그 덕분에 꽃가루가 날아가 먼 곳으로 씨를 맺게 하고, 씨앗을 날려 보내 널리 퍼뜨리기도 한다. 중장에서도 바람의 역할이 깃들어 있다. 강물은 바람과 더불어 풍화작용으로 주변의 돌들을 다듬는다. 종장의 세월 속에도 바람이 간여하고 있는데 소위 말하는 풍파가 그것이다. 

종장에선 사람을 세우는 일이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임을 ‘무장‘이란 부사를 통해 잘 전달하고 있다. 아기가 부모의 품을 딛고 걸음마를 배우듯 한 사람으로 서기 위해선 세상의 품을 딛고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야 한다. 한 줄기 바람이 일으킨 시상이 단시조 한 편에 대자연의 순환을 담아내고 있다. 사람도 그 속에서 자신을 세워야 하는 대자연의 한 부분이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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