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44) 협객을 기다리다 - 김덕남

이광 승인 2022.08.16 17:38 | 최종 수정 2022.08.18 09:26 의견 0

협객을 기다리다
                          김덕남

 

 

아슬한 물방울이 암반에 홈을 파듯

적벽의 소나무가 바위를 쪼개내듯

결박된 봉두난발이 한 시대를 깨우듯


김덕남 시인의 <협객을 기다리다>를 읽는다. 과거 세상이 어수선할 때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서던 의협심 강한 사람을 협객이라 칭했다. 시인이 말하는 협객은 거기서 더 나아가 거대한 조직과 맨몸으로 맞서는 열사의 면모를 지닌다. 초장의 ‘아슬한 물방울’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갑거나 아찔하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결의에 찬 힘이 지층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예고한다.

중장에 나오는 ‘적벽’은 전남 화순에 소재한 적벽으로 보인다. 시인은 적벽의 절경에서 소나무가 바위를 쪼갠 형상을 목격한 모양이다. 물방울이 수없이 되풀이하여 암반에 홈을 파듯 바위틈에 솔씨가 뿌리내려 수많은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균열이 이루어지니 인내 또한 시인이 말하는 협객이 지녀야 할 덕목인가 보다. 마침내 시인은 역사 속의 한 인물을 불러낸다. 종장에 들어서자 봉두난발에 결박된 몸을 한 사내가 나타난다. 한 시대의 정신을 깨우며 교수대로 끌려가는 그 비장한 눈빛이 행간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

협객을 기다린다는 게 마치 길고긴 수련과정 같다. 나다니엘 호돈의 소설 ‘큰바위얼굴’이 생각난다. 주인공이 기다리며 바라보던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은 결국 오랜 세월 바위의 얼굴을 지켜보던 주인공 자신이었다는 내용이다. 시인의 내면에 부조된 협객은 시인이 희원하는, 작가정신으로 충일한 자신의 또 다른 모습 아닐까. 시인은 한 시대를 깨울 절창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