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41) 그대는 - 조영자
이광
승인
2022.07.27 09:24 | 최종 수정 2022.07.29 09:19
의견
0
그대는
조영자
앉다 앉다
앉을 데 없어
빚더미에 앉아보고
되다 되다
될 게 없어
내 낭군 되어보고
이 세상
더 할 게 없어
서천꽃밭 꽃 따러 간
조영자 시인의 <그대는>을 읽는다. 시조의 운율이 가락을 타고 귓전으로 흘러드는 듯하다. 초장에서 빚더미란 말에 웃음을 머금는다. 하지만 빚더미에 앉아본 사람이라면 이는 곧 쓴웃음으로 바뀔 것이다. 땅이 꺼질 것 같은 불안과 눈앞이 막막하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라도 하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말 것이다.
‘앉다 앉다/앉을 데 없어/빚더미에 앉’은 그대에게 초점을 맞추려던 시선은 중장에 들어서자 화자에게로 옮겨진다. ‘되다 되다/될 게 없어‘라며 늘품 없는 사내 모습을 계속 들추어내는가 싶더니 그게 아니다. ‘내 낭군 되어’준 필생의 인연을 소중히 품고 있는 화자의 속내를 내비치는 것이다. 낭군’이란 말은 젊은 아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남편을 대하는 호칭이다. 화자는 젊은 날 자신 앞에 짠! 하고 나타난 그대를 떠올리고 있다. 빚더미에 주저앉게 만들었던 날들은 이미 다 지나가버렸고 그 여파마저 물러나버린 자리엔 ‘내 낭군’에 대한 그리움만 오롯이 남아 있다.
종장으로 가면 시선을 서천 먼 하늘로 향하게 한다. 독자 또한 저 세상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멍하니 허공을 머물던 시선은 서서히 화자에게로 돌아온다. 화자 역시 서천을 바라보는 눈을 거두지 않고 있다. 보고 싶을 때 꺼내 펼쳐보다가 그리움을 꾹 눌러 덮어두곤 하는 사진첩 속의 사진 같은 시 한 편이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