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37) 방충망 갈아주는 사람 - 손영희
이광
승인
2022.06.28 21:37 | 최종 수정 2022.07.27 09:32
의견
0
방충망 갈아주는 사람
손영희
꿈속이었나
누가
잠깐
다녀간 것 같다
나락으로
비 들이쳐
발치께가
흥건하다
누군가
내 몸을 뜯어내고
거미줄을 치고 있다
손영희 시인의 <방충망 갈아주는 사람>을 읽는다. 방충망은 찢어지거나 구멍이 뚫리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모기가 기승부리는 철을 앞두고 방충망 갈아준다는 가두방송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시인은 헌 방충망을 걷고 새 것으로 갈아 넣는 작업을 목격한 적이 있는 모양이다. 뇌리에 잠재되어 있던 그 광경은 어느 순간 한 편의 시로 발화한다.
‘꿈속이었나’ 하며 단정 짓지 않은 시인의 의도대로 독자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출발을 함께한다. 짧은 시임에도 4연으로 처리한 초장은 다소 긴 호흡으로 초반의 몽롱한 분위기를 잘 이끌고 간다. 중장을 보면 화자의 내면 상황이라 할 수 있는 비가 들이친다. ‘발치께가 흥건하다’는 것은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락’이라 표현한 그 자리는 불가피하게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삶이 처한 국면이다. 하지만 나락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화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한 시도를 감행한다. 종장의 ‘누군가’는 방충망 갈아주는 사람처럼 외부의 영향력을 의인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초장의 ‘누가’와 같이 무의식 속의 자아일 수도 있다. ‘내 몸을 뜯어내는’ 변화가 가져다줄 새로운 면모를 거미줄로 인식하는 화자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변신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의지 또한 그 안에 깔려 있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