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36) 질경이 - 배우식

이광 승인 2022.06.22 08:44 | 최종 수정 2022.06.24 08:06 의견 0

질경이
                           배우식

 

 

밟히고 밟힐 때마다

온 몸에 멍이 든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렇게

참고 견디면

큰 상처도 꽃이 핀다.


배우식 시인의 <질경이>를 읽는다. 사람이 다니는 길 주변에 많이 자라는 풀이다. 짓밟혀도 멍든 채 살아가는 질긴 생명력이 질경이란 이름과 어울리는 것 같다. 쉽게 읽히면서 머리에 쏙 들어오는 이 작품은 그만큼 쉽사리 써졌을까 생각해본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쉬운 시는 복잡다단을 겪고 난 단순함이 깊이를 가질 때 쓸 수 있는 것이다. 

시가 전하는 말은 독자의 성향이나 여건에 따라 공감 가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조금만,/조금만 더//참아야지,/참아야지’하며 참고 견디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위안을 받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참고 견디면//큰 상처도 꽃이 핀다’는 메시지에서 용기를 얻을 것이다. 시조는 초, 중, 종장의 미학적 구조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메시지를 독자에게 건넨다. 물론 예측 가능한 결말을 차단하고 그 속에 비의를 숨긴 채 독자에게 넘기는 경향으로 주목받는 작품도 있다. 하지만 시조는 완성도 높은 결구로 독자와 소통하며 발전한 장르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배행이 자유스러운 가운데 음수율을 잘 맞춘 작품이다. 한 행으로 처리한 종장의 첫 음보 ‘그렇게’는 단순한 접속사가 아니다. 그간의 숱한 고초가 내장된 하나의 압축파일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우리나라는 어느덧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지천에 깔린 질경이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익명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큰 상처를 딛고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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