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34) 반전 - 공란영
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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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15:42 | 최종 수정 2022.06.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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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공란영
얇다고
가볍다고
한 손으로 다루었지
찢기고
구겨진다고
아래로만 바라봤지
종이에
손을 베이고
칼 있는 줄 알았지
공란영 시인의 <반전>을 읽는다. 초장은 얇고 가벼운 약체를 다루는 화자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정체가 드러나 있진 않다. 중장에서도 약체의 쉽게 손상되는 물성을 하찮게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이어진다. ‘찢기고//구겨진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손상된 사물의 실체가 짐작이 가긴 하는데 이는 종장에서 바로 밝혀진다.
처음부터 정체를 밝혔다면 독자는 얇고 가볍고 찢기고 구겨지는 물성을 지닌 종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정체를 감추었기에 초장과 중장을 거치는 사이 존재감 없는 약자의 표정이나 상처 입고 버림받은 사람의 모습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한데 여기서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약자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를 만만하게 여긴 화자는 손을 베이는 상처를 얻고서야 약자에게도 칼이 있음을 깨닫는다. 칼은 식물의 가시처럼 공격이 아닌 방어용이지만 더러 피를 보기도 한다.
하나의 순간이 뇌리에 남는 것은 그것이 의식 속이든 무의식 속이든 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사건에서 시가 탄생하는 것 또한 시인이 이를 놓치지 않고 시심에 저장한 덕분이다. 짧은 단시조 속에서 비교적 넓게 쓰고 있는 행간은 일상의 순간적인 일이 한 사람의 생을 관통하는 반전이 될 수도 있음을 사유하게 한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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