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46) 순대 - 이애자

이광 승인 2022.08.30 18:25 | 최종 수정 2022.09.01 09:56 의견 0

순대
                     
이애자

 

 

퇴근길 골목골목 옆구리 터지고
윗대가리 씹으며 어느새 동지 되고
곱씹어 되새겨보면 다 창자 채운 일이고

 

이애자 시인의 <순대>를 읽는다. 길거리 음식이면서 전문 식당도 있는 순대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부담 없는 술안주로도 그저 그만이라 퇴근길 골목 한군데쯤 순대집이 있을 법하다. 시인이 사는 제주 지역에도 순대는 재래의 제조법을 지닌 향토음식에 속한다. 그러한 순대를 놓고 우리 사는 이야기를 45자 내외의 틀 속에서 어떻게 풀어내는지 살펴본다.

초장에서 옆구리 터진 순대 모습은 바로 떠오르는데 ‘퇴근길 골목골목 옆구리 터’진 모습은 영상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한 번 더 되새기니 대로변에서 벗어난 골목,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문을 여는 술집이 생각나고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에 속이 터진 직장인들이 술집에 들어서는 모습까지 연상된다. 그리하여 시인이 언급하지 않아도 중장에선 직장 동료들끼리 합석한 술자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윗대가리 씹으며 어느새 동지 되’는 시간 속에서 스트레스는 말끔하게 날아가고 마음가짐도 한결 대범해진다.

순대는 돼지 창자에 다양한 재료를 섞어 속을 채우고 삶은 것이다. 종장에선 보다 여유를 가지고 삶을 ‘곱씹어 되새겨보면’서 사는 게 ‘다 창자 채운 일’이란 현실을 소화한다. 윗대가리 또한 다 같이 먹고 살자고 성화를 부린 것으로 받아들인다. 작가의 의도인지 초장부터 종장까지 행간을 띄우지 않은 게 마치 대야에 차곡차곡 포개진 순대 모양이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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