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정치적 후폭풍 휩싸여…트럼프 "미래 위한 것" 진화 나섰으나 논란 확산
민주·공화 일제 비판…'親트럼프 폭스까지' 언론도 "저자세 굴욕"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장 "러시아 美대선개입 분명"
(워싱턴=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권혜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정치적 코너에 몰린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개입 의혹을 거듭 부정하는 푸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과 관련해 회의론이 나오는 미국 내에서는 진영을 떠나 푸틴 대통령을 만난 그의 '저자세 외교'를 혹평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미 정보당국의 조사 결과를 불신하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두고 국가 지도자로서 부적절했다는 비난이 쏠렸다.
비난이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더 밝은 미래를 만들려면 과거에만 집중할 순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반발이 워낙 거세 후폭풍이 쉽게 잦아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양대 핵 강대국 '수장'의 단독회동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는 상대적으로 퇴색하고, 러시아의 미국 대선개입 의혹이 전면에 부각한 셈이다. 결과적으론 지난 13일 러시아군 정보요원 12명을 대거 기소한 로버트 뮬러 특검의 '한 수'가 직격탄을 던진 꼴이 됐다.
야당인 민주당은 즉각 공격에 들어갔다.
민주당 척 슈머(뉴욕) 상원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보다 러시아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면서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고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한 백악관 안보팀의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다.
슈머 대표는 "미 역사상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한 것처럼 미국의 적을 옹호한 대통령은 없다"며 "미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러시아가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재정적으로, 정치적으로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3년 모스크바 방문 당시 성관계 영상을 러시아 당국이 갖고 있다는 이른바 '트럼프 X파일' 의혹을 우회적으로 부각한 발언으로 읽힌다.
마크 워너(버지니아) 상원 정보위 부위원장은 트위터에 "미 대통령이 자국 정보기관 관료들 대신 푸틴 대통령 편을 들고, 민주주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두고 자국 탓을 하다니 이는 완전한 수치다"라고 말해.
엘리자베스 워런(메사추세츠) 상원의원도 "다시 한번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망신시키고, 우리의 기관을 폄훼하는가 하면 우리의 동맹을 약화시키고, 독재자를 끌어안았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민주당 측은 사실상 "격노"했다고 CNN은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공화당도 싸늘한 표정이다.
공화당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리의 동맹이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의 기본적 가치와 이상에 적대적인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는 도덕적 등가성이 성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라이언 의장은 이어 "러시아가 우리 선거에 개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들은 여전히 미국과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해하려 한다"고 말했다.
미치 매코널(켄터키) 상원 원내대표도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으며 이번에 또다시 말하는 것이지만, 러시아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며 나는 (러시아가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우리 정보기관의 평가를 믿는다"고 강조했다.
리처드 버 상원 정보위원장도 성명에서 "미국 정보기관의 조사 결과에 반하는 푸틴 대통령의 어떠한 주장도 거짓말이며,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거짓말로 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진인 존 매케인 상원 의원도 성명을 내고 "미국 대통령으로선 가장 수치스러운 실적", "비극적 실수'라고 맹비난했다.
밥 코커(테네시) 상원 외교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우리를 만만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며 "그가 미 정보기관과 푸틴 대통령을 말을 등가에 뒀다는 사실이 실망스럽고 슬프다"고 말했다.
미 정보당국 역시 황당하다는 기류다. 최고 통치권자가 자국의 정보요원들보다 오히려 상대 국가의 반박을 뒷받침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 개입했다는 우리의 평가는 분명하다"면서 "러시아는 지속해서 우리의 민주주의에 침투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트윗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헬싱키 기자회견은 '중범죄와 비행'의 문턱을 넘어섰다"면서 "반역적인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푸틴의 호주머니' 속에 있었다"고 덧붙였다.
언론들도 혹평 일색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폭스뉴스마저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폭스비즈니스 진행자인 네일 카부토는 "유감스럽지만 제 느낌을 말씀드리자면, 이는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잘못된 것"이라며 "미국 대통령이 우리의 가장 큰 적, 상대국, 경쟁자에게 최소한의 가벼운 비판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폭스뉴스 패널 가이 벤슨은 "쉽게 말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최악의 하루"라고 촌평했다.
보수성향 인터넷매체 '드러지 리포트'는 "푸틴 대통령이 헬싱키에서 군림했다"는 제목을 홈페이지 메인에 올렸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과 날을 세운 매체들은 맹공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 정보기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함으로써 푸틴에게 진정한 외교적 승리를 안겼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푸틴을 감싸는 따뜻한 미사여구는 세계 '핵 강대국' 수장 간의 첫 공식 회담에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고 비꼬았다.
WP는 사설과 칼럼을 통해서도 공격을 이어나갔다.
'트럼프가 러시아와 공모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라는 제목의 사설에선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행동에 대한 분명한 사실마저 인정하길 거부하고, 자기 나리의 법체계는 던져버린 채 러시아와 공모는 없었다고 재차 강조했다"면서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적국의 범죄 지도자와 공개적으로 공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루스 마커스 WP 사설란 부편집장은 칼럼에서 "극단적인 시대에는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은 가장 극단적인 시기"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만둬라. 당신들의 명예와 영혼, 평판을 지켜라"라고 촉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트럼프의 첫번째 독트린'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트럼프의 외교정책이라는 것은 개인적이며 충동과 본능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그는 다른 정상을 얼마나 자신을 칭송하는지에 따라 대우한다.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해 충격을 줘놓고는 역풍이 일어나면 부인한다. 헤드라인을 붙잡으려고 정책과 기관을 비판하고, 결과가 어떻든 간에 승리했다고 주장한다"고 이번 순방 기간의 성과에 대해 혹평했다.
특히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모두 망신이었고, 선거에 개입해 자신의 대통령직에 큰 손해를 끼친 독재자에게 자신의 정보당국자를 믿는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트럼프·푸틴 대(對) 미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오늘 트럼프 대통령은 미합중국의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취임 선서를 버렸다"고 비판했다. NYT는 관련 기사에서 외국 대통령 편을 들면서 정작 자국 정보기관을 깎아내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의 그 어떤 대통령도 외국 영토에서 하지 내뱉지 않았던 말들"이라고 지적했다.
CNN 앵커 앤더슨 쿠퍼는 현지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 가운데 하나를 지켜보셨다"고 말했다. 같은 방송사 앵커인 존 킹도 이번 회담을 트럼프 대통령의 "항복 회담"이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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