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홀(white hole)은 엄연히 물리학적·수학적 근원을 가진 천체물리학적 개념이다. 공상과학소설·영화에만 존재하는 허구적 개념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다만 그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최근 화이트홀 연구가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다. 화이트홀을 연구하다보면 그동안 물리학자들의 골머리를 썩여온 암흑물질과 빅뱅에 관련된 의문점을 말끔하게 해소할 수도 있다고 한다. 과학전문매체 '천문학(Astronomy)' 최근호는 화이트홀에 관한 해설기사 '화이트홀 : 블랙홀은 거울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White holes: Do black holes have mirror images?)'를 게재했다. 그 전문을 번역해 소개한다.
아이작 뉴턴은 '모든 작용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을 가진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벽을 밀면 벽도 우리를 민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우주에는 화이트홀(white hole)이 존재할 것 같다. 아니,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우리는 빛을 비롯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존재를 아는가? 블랙홀과 반대로, 물질과 에너지를 방출하기만 하고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화이트홀’이 있을까?
우리는 가끔 2원론에 근거해 무엇인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안다. OFF 스위치가 있다면 아마 어딘가 ON 스위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화이트홀은 블랙홀과 최종적인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존재일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빨아들인 물질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화이트홀의 실존 여부에 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만약 화이트홀이 존재한다면,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에 대해 여전히 연구하고 있다. 어떤 이론들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인 암흑물질(dark matter)에서부터 우주 그 자체의 특징들을 밝혀내는 데 화이트홀이 필요하다고 암시한다.
화이트홀의 기원도 블랙홀처럼 일방상대성이론
화이트홀의 기원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론의 복잡한 수식들의 어떤 해(解)는 블랙홀을 만들고 어떤 해는 화이트홀을 만든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둘은 적어도 수학적으로는 존재할 확률이 같다.
게다가 블랙홀과 화이트홀은 이름이 말해주듯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NASA의 천체물리학자들은 화이트홀을 ‘블랙홀의 시간 역전’이라고 불러왔다. 블랙홀이 담긴 장면을 되감기하면 화이트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좋다. 그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떤 해석들은 글자 그대로를 말한다. 화이트홀은 단순히 블랙홀 끝의 반대편에 존재하며, 웜홀이라 부르는 이론적인 시공간 터널에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블랙홀로 빠진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결국 이 우주 혹은 다른 우주의 화이트홀로 발사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먼 곳으로 여행 갈 생각에 블랙홀로 뛰어들지는 말자. 아마 엄청난 중력에 우리와 우리의 짐 가방이 짓이겨져 부서진 채로 반대편의 화이트홀로 나오게 될 것이다.
블랙홀의 재탄생
2014년 물리학자들은 화이트홀이 수명이 다한 블랙홀에서 생겨난다는 주장을 발표했다. 현재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블랙홀이 복사를 하면서 천천히 증발하면, 결국에는 점점 작아지다 갑자기 사라질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정확한 우주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블랙홀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빛과 물질이 한 덩어리로 묶여서 양자화되어 있는 것처럼, 시공간 자체도 역시 명확한 한 단위로 양자화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블랙홀은 가장 작은 한 단위가 될 때까지만 줄어들 수 있다. 이 때가 바로 블랙홀이 밖으로 다시 튀어나오는 ‘양자 바운스(quantum bounce)’이 일어나는 시점, 즉 줄어드는 블랙홀이 팽창하는 화이트홀로 바뀌는 시점이다. 환상적인 시나리오처럼 보이지만, 수학적으로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물리학을 괴롭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먼저, 블랙홀 정보 역설(blackhole information paradox)이 거의 확실하게 해결될 수 있다. 여기서 역설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블랙홀로 들어간 정보들이 블랙홀의 증발, 소멸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의하면 정보의 양은 보존되어야 하고 완전하게 파괴될 수 없다. 양자 바운스를 이용하면 블랙홀에 저장된 모든 정보가 블랙홀이 화이트홀로 변할 때 다시 퍼지면서 이 역설을 적절히 해결할 수 있다.
화이트홀은 이론물리학자들의 골머리를 썩이는 또 다른 존재인 암흑물질의 정체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여기서 암흑물질 문제는 우주의 일부를 무엇인가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전혀 관측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현재 그 물질을 암흑물질이라 부른다. 암흑물질은 중력을 제외한 자연계에 알려진 다른 힘들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물론 빛과도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 우주 모든 물질의 84%를 구성하는 이 물질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2018년의 논문에 따르면 관측하기 어렵고 알 수 없는 물질들로 만들어진 화이트홀이 암흑물질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큰 부분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우주의 탄생
긴 토론을 끝낼 마지막 해석이다. 천체 물리학자 에스겔 트라이스터(Ezequiel Treister)는 2011년 NASA 채팅에서 “우리는 빅뱅을 가장 큰 화이트홀로 생각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이상한 소리는 아닌 것이, 빅뱅의 생성과 화이트홀의 복사를 다루기 위한 수학은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 두 현상의 근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무엇이 빅뱅을 일으켰고,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상상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블랙홀의 탄생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비해 화이트홀의 탄생은 거의 알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화이트홀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만 말해줄 뿐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물리학자들이 화이트홀과 빅뱅이 하나이며 같은 것임을 주장할 만한 둘의 유사점들은 충분히 많다. 트라이스터는 “정의에 따르면, 화이트홀은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 그래서 유일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방법은 우주와 같이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우리와 나머지 우주는 138억년 전 화이트홀이 바깥으로 방출한 물질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렇게 화이트홀이 우주를 낳았다는 해석이 아마도 화이트홀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살펴본 해석들 중 일부 또는 모든 해석이 맞는다고 해도, 우리는 먼저 화이트홀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해석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해석들은 단지 블랙홀의 거울상을 설명할 방법에 추가되는 것이며, 잘 정리되고 ‘거의 확실하게 우주에 존재하는 화이트홀’에 지나지 않는다.
천체물리학자 케빈 샤빈스키는 트라이스터와 함께한 NASA 채팅에서 “화이트홀은 추측에 근거한 것이며 존재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많은 터무니없는 개념들처럼,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이트홀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 기사 출처 : Astronomy, White holes: Do black holes have mirror images?
<이정훈 객원기자·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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